"키워드 : 여진정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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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전기 장연현령, 영주방어사 등을 역임한 무신.
민영 (閔瑛)
고려전기 장연현령, 영주방어사 등을 역임한 무신.
김의원은 고려 전기 여진 정벌에서 활약한 문신이다. 문벌 출신으로 과거에 합격한 후에 수령을 거쳐 여진 정벌에 참여하였다. 여진이 길주(吉州)를 포위했을 때 방어에 성공하였으며, 이후 요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다. 이자겸의 가문인 인주이씨 가문과 혼인 관계로 밀접하다.
김의원 (金義元)
김의원은 고려 전기 여진 정벌에서 활약한 문신이다. 문벌 출신으로 과거에 합격한 후에 수령을 거쳐 여진 정벌에 참여하였다. 여진이 길주(吉州)를 포위했을 때 방어에 성공하였으며, 이후 요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다. 이자겸의 가문인 인주이씨 가문과 혼인 관계로 밀접하다.
고려 전기에, 수사공 참지정사판상서형부사, 중서시랑평장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강증 (康拯)
고려 전기에, 수사공 참지정사판상서형부사, 중서시랑평장사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 전기에, 참지정사, 상서우복야 서경유수사 겸 태자소부 등을 역임한 문신.
김정순 (金正純)
고려 전기에, 참지정사, 상서우복야 서경유수사 겸 태자소부 등을 역임한 문신.
박경인은 고려 전기에 서북면병마사·상서좌복야·참지정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본관은 평산(平山), 초명은 박경작이며, 아버지는 참지정사를 지낸 박인량이다. 어려서부터 학문에 힘써 경적에 두루 통달하였으며, 과거에 급제한 뒤에 주로 간쟁과 문한의 직을 맡아 이름을 떨쳤다. 시호는 장간(章簡)이다.
박경인 (朴景仁)
박경인은 고려 전기에 서북면병마사·상서좌복야·참지정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본관은 평산(平山), 초명은 박경작이며, 아버지는 참지정사를 지낸 박인량이다. 어려서부터 학문에 힘써 경적에 두루 통달하였으며, 과거에 급제한 뒤에 주로 간쟁과 문한의 직을 맡아 이름을 떨쳤다. 시호는 장간(章簡)이다.
고려 전기에, 수사도 판예부사, 문하시랑평장사 등을 역임한 문신.
김준 (金晙)
고려 전기에, 수사도 판예부사, 문하시랑평장사 등을 역임한 문신.
별무반은 고려 전기 여진정벌을 위해 설치된 임시 군사 조직이다. 1104년(숙종 9) 동북면행영병마도통(東北面行營兵馬都統)으로서 여진정벌에 나섰다가 패하고 돌아온 윤관(尹瓘)의 건의에 따라 설치되었다. 여진족에 대항하기 위해 설치되었으며 강력한 기병대의 편제를 갖춘 부대이다. 별무반은 기병인 신기군(神騎軍), 보병인 신보군(神步軍), 승려들로 이루어진 항마군(降魔軍) 등으로 구성되었다.
별무반 (別武班)
별무반은 고려 전기 여진정벌을 위해 설치된 임시 군사 조직이다. 1104년(숙종 9) 동북면행영병마도통(東北面行營兵馬都統)으로서 여진정벌에 나섰다가 패하고 돌아온 윤관(尹瓘)의 건의에 따라 설치되었다. 여진족에 대항하기 위해 설치되었으며 강력한 기병대의 편제를 갖춘 부대이다. 별무반은 기병인 신기군(神騎軍), 보병인 신보군(神步軍), 승려들로 이루어진 항마군(降魔軍) 등으로 구성되었다.
고려 전기에, 중군병마사, 추밀원사, 상서좌복야 등을 역임한 문신.
김한충 (金漢忠)
고려 전기에, 중군병마사, 추밀원사, 상서좌복야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 전기에, 문하시중, 수태부 판상서이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김경용 (金景庸)
고려 전기에, 문하시중, 수태부 판상서이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 전기에, 병부상서 겸 삼사사, 우군병마사병부상서 등을 역임한 문신.
김덕진 (金德珍)
고려 전기에, 병부상서 겸 삼사사, 우군병마사병부상서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 전기에, 병마판관 등을 역임한 문신.
김부필 (金富弼)
고려 전기에, 병마판관 등을 역임한 문신.
문정은 고려 전기, 동여진을 정벌한 공신이자 사학 십이도의 하나인 정헌공도를 세운 문신이다. 고려 전기에 추충찬화탕구정새공신에 책록된 공신으로, 형부상서·참지정사를 역임하였고 중서시랑평장사를 거쳐 수태위 문하시중으로 치사하였다. 사학(私學)을 일으켜서 십이도(十二徒)의 하나인 정헌공도(貞獻公徒)를 세웠다. 선종 묘정에 배향되었으며, 시호는 정헌(貞獻)이다.
문정 (文正)
문정은 고려 전기, 동여진을 정벌한 공신이자 사학 십이도의 하나인 정헌공도를 세운 문신이다. 고려 전기에 추충찬화탕구정새공신에 책록된 공신으로, 형부상서·참지정사를 역임하였고 중서시랑평장사를 거쳐 수태위 문하시중으로 치사하였다. 사학(私學)을 일으켜서 십이도(十二徒)의 하나인 정헌공도(貞獻公徒)를 세웠다. 선종 묘정에 배향되었으며, 시호는 정헌(貞獻)이다.
윤관은 고려전기 동지추밀원사, 지추밀원사, 한림학사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출생일은 미상이며 1111년(예종 6)에 사망했다. 문종·숙종 시기 고려는 여진 정벌을 도모하다가 오히려 크게 참패당했을 정도로 여진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윤관은 패전 경험을 토대로 여진의 기병에 대항할 별무반을 창설하여 대비했고 예종 때 정벌을 개시하여 9성을 축조하고 남도지방 사람들을 이주시켜 살게 했다. 그러나 조정에서 여진의 적극적인 강화 요청과 9성 관리의 어려움을 들어 반환을 결정하면서 윤관은 문신들의 시기와 모함 속에 관직에서 물러났다.
윤관 (尹瓘)
윤관은 고려전기 동지추밀원사, 지추밀원사, 한림학사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출생일은 미상이며 1111년(예종 6)에 사망했다. 문종·숙종 시기 고려는 여진 정벌을 도모하다가 오히려 크게 참패당했을 정도로 여진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윤관은 패전 경험을 토대로 여진의 기병에 대항할 별무반을 창설하여 대비했고 예종 때 정벌을 개시하여 9성을 축조하고 남도지방 사람들을 이주시켜 살게 했다. 그러나 조정에서 여진의 적극적인 강화 요청과 9성 관리의 어려움을 들어 반환을 결정하면서 윤관은 문신들의 시기와 모함 속에 관직에서 물러났다.
예종은 고려 전기 제16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1105~1122년이며, 숙종의 맏아들이다. 즉위한 뒤 군법을 정비하고 여진정벌에 힘썼다. 윤관·오연총 등으로 하여금 여진을 쳐서 대파하게 하고, 정복 지역에 구성을 설치했다가 1년 만에 구성을 철폐하고 여진족에게 돌려주었다. 이후 여진의 금나라, 거란의 요나라 사이에서는 대체로 중립 외교를 펼쳤다. 국학에 학과별 전문 강좌인 칠재를 설치하고 양현고라는 장학재단을 두었으며, 이름난 선비를 뽑아 학관으로 삼아 가르치게 하여 유학을 크게 일으켰다. 송의 궁중에서 쓰던 대성악을 들여왔다.
예종 (睿宗)
예종은 고려 전기 제16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1105~1122년이며, 숙종의 맏아들이다. 즉위한 뒤 군법을 정비하고 여진정벌에 힘썼다. 윤관·오연총 등으로 하여금 여진을 쳐서 대파하게 하고, 정복 지역에 구성을 설치했다가 1년 만에 구성을 철폐하고 여진족에게 돌려주었다. 이후 여진의 금나라, 거란의 요나라 사이에서는 대체로 중립 외교를 펼쳤다. 국학에 학과별 전문 강좌인 칠재를 설치하고 양현고라는 장학재단을 두었으며, 이름난 선비를 뽑아 학관으로 삼아 가르치게 하여 유학을 크게 일으켰다. 송의 궁중에서 쓰던 대성악을 들여왔다.
오연총은 고려 전기 중서사인, 어사대부, 문하시랑평장사, 추충공신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그는 숙종 때 송에 사신으로 가서 『태평어람』과 『신의보구방』을 얻어서 돌아왔으며, 상서좌승·추밀원부사·한림학사 등을 지냈다. 예종 때는 지추밀원사·어사대부·동북면병마사 등을 지내고, 윤관과 함께 여진을 정벌하여 구성(九城)을 쌓고 협모동덕치원공신과 양구진국공신에 책봉되었다. 그 뒤 여진에 패하고 구성을 반환하면서 관직과 공신 자격을 박탈당했지만, 다시 중서시랑평장사·판삼사사, 지공거, 문하시랑·동중서문하평장사, 추충공신 등에 올랐다.
오연총 (吳延寵)
오연총은 고려 전기 중서사인, 어사대부, 문하시랑평장사, 추충공신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그는 숙종 때 송에 사신으로 가서 『태평어람』과 『신의보구방』을 얻어서 돌아왔으며, 상서좌승·추밀원부사·한림학사 등을 지냈다. 예종 때는 지추밀원사·어사대부·동북면병마사 등을 지내고, 윤관과 함께 여진을 정벌하여 구성(九城)을 쌓고 협모동덕치원공신과 양구진국공신에 책봉되었다. 그 뒤 여진에 패하고 구성을 반환하면서 관직과 공신 자격을 박탈당했지만, 다시 중서시랑평장사·판삼사사, 지공거, 문하시랑·동중서문하평장사, 추충공신 등에 올랐다.
여진은 만주에 살던 퉁구스 계통의 민족이다. 여진의 명칭은 시대에 따라 숙신, 읍루, 물길, 말갈, 만주족 등으로 불렸다. 발해 멸망 후 요나라의 지배를 받기도 하였으며, 고려에 조공을 바치며 복속하였다. 1115년 아구타[阿骨打]가 완안부를 중심으로 여진을 통일하고 금나라를 세웠다. 16∼17세기, 누르하치[奴爾哈齊]가 만주 지역의 여진을 통합하고 1616년 후금을 건국하였다.
여진 (女眞)
여진은 만주에 살던 퉁구스 계통의 민족이다. 여진의 명칭은 시대에 따라 숙신, 읍루, 물길, 말갈, 만주족 등으로 불렸다. 발해 멸망 후 요나라의 지배를 받기도 하였으며, 고려에 조공을 바치며 복속하였다. 1115년 아구타[阿骨打]가 완안부를 중심으로 여진을 통일하고 금나라를 세웠다. 16∼17세기, 누르하치[奴爾哈齊]가 만주 지역의 여진을 통합하고 1616년 후금을 건국하였다.
척준경은 고려 전기에 이부상서 참지정사, 문하시랑평장사 등을 역임한 관리이다. 가난하여 학문을 닦지 못하고 무뢰배들과 교유하다가 후에 숙종으로 즉위한 계림군을 추종하는 자가 되어 무관의 길을 걸었다. 윤관을 따라 동여진정벌에 참여하여 공을 세웠다. 인종의 묵인 아래 이자겸 제거 거사가 일어나자 이자겸과 함께 난을 일으켜 궁궐을 불사르고 진압하였다. 이후 인종의 설득으로 이자겸 제거에 앞장섰고, 정지상의 탄핵을 받아 유배되었다. 인종이 그의 왕실에 대한 공로를 인정하여 복권시켰으나 얼마 후 사망하였다.
척준경 (拓俊京)
척준경은 고려 전기에 이부상서 참지정사, 문하시랑평장사 등을 역임한 관리이다. 가난하여 학문을 닦지 못하고 무뢰배들과 교유하다가 후에 숙종으로 즉위한 계림군을 추종하는 자가 되어 무관의 길을 걸었다. 윤관을 따라 동여진정벌에 참여하여 공을 세웠다. 인종의 묵인 아래 이자겸 제거 거사가 일어나자 이자겸과 함께 난을 일으켜 궁궐을 불사르고 진압하였다. 이후 인종의 설득으로 이자겸 제거에 앞장섰고, 정지상의 탄핵을 받아 유배되었다. 인종이 그의 왕실에 대한 공로를 인정하여 복권시켰으나 얼마 후 사망하였다.
최홍정은 고려 전기 윤관의 여진정벌에 참여한 관료이다. 1107년(예종 2)에 윤관과 오연총이 여진을 정벌할 때 병마판관의 직책으로 참전하여 동음성 및 가한촌 전투에서 활약하였다. 1108년(예종 3)에 여진족의 공격으로부터 웅주를 방어하였다.
최홍정 (崔弘正)
최홍정은 고려 전기 윤관의 여진정벌에 참여한 관료이다. 1107년(예종 2)에 윤관과 오연총이 여진을 정벌할 때 병마판관의 직책으로 참전하여 동음성 및 가한촌 전투에서 활약하였다. 1108년(예종 3)에 여진족의 공격으로부터 웅주를 방어하였다.
고려 전기에, 병마판관, 시랑 등을 역임한 문신.
황군상 (黃君裳)
고려 전기에, 병마판관, 시랑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 전기에, 선병별감 이부원외랑 등을 역임한 문신.
양유송 (梁惟竦)
고려 전기에, 선병별감 이부원외랑 등을 역임한 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