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영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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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내섬시제조, 오위도총부도총관 등을 역임한 문신. 서예가.
심익현 (沈翼顯)
조선후기 내섬시제조, 오위도총부도총관 등을 역임한 문신. 서예가.
조선전기 제4대 세종의 왕비.
소헌왕후 (昭憲王后)
조선전기 제4대 세종의 왕비.
현도군은 중국 한나라가 설치한 군으로서 한사군의 하나이다. 위만조선이 멸망한 이후에 낙랑군·진번군·임둔군과 함께 설치되었다가 임둔군·진번군이 폐지될 때 진번군의 일부로 흡수되었다. 압록강 중류에 있던 군치(郡治)가 요동 혼하(渾河) 상류로 이동하였는데, 한인의 압박정치에 대한 토착인의 반발이 심해졌기 때문이라고 해석된다. 현도군의 강역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대체로 넓은 충적지대가 펼쳐져 있는 압록강 중·상류 일대로 추정된다. 최근에는 현도군은 물론 한사군 모두가 요하(遼河) 서쪽 지역에 있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현도군 (玄菟郡)
현도군은 중국 한나라가 설치한 군으로서 한사군의 하나이다. 위만조선이 멸망한 이후에 낙랑군·진번군·임둔군과 함께 설치되었다가 임둔군·진번군이 폐지될 때 진번군의 일부로 흡수되었다. 압록강 중류에 있던 군치(郡治)가 요동 혼하(渾河) 상류로 이동하였는데, 한인의 압박정치에 대한 토착인의 반발이 심해졌기 때문이라고 해석된다. 현도군의 강역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대체로 넓은 충적지대가 펼쳐져 있는 압록강 중·상류 일대로 추정된다. 최근에는 현도군은 물론 한사군 모두가 요하(遼河) 서쪽 지역에 있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조선후기 제17대 효종의 왕비.
인선왕후 (仁宣王后)
조선후기 제17대 효종의 왕비.
여주영릉(驪州寧陵)은 조선 제17대 국왕인 효종과 인선왕후 덕수장씨의 능이다. 여주영릉은 1659년 구리 동구릉에 조성되었으나 1673년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현재 여주영릉은 인종 효릉을 모방해 제작하여 16세기의 돌거리 도상(圖像)에 17세기 양식이 혼합되어 있다. 1674년 인선왕후의 능을 효종릉 아래에 조성하여 동원상하릉이라는 보기 드문 형식이 만들어졌다. 현재 사적 '여주 영릉과 영릉(驪州 英陵과 寧陵)'으로 지정되어 있다.
여주 영릉 (驪州 寧陵)
여주영릉(驪州寧陵)은 조선 제17대 국왕인 효종과 인선왕후 덕수장씨의 능이다. 여주영릉은 1659년 구리 동구릉에 조성되었으나 1673년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현재 여주영릉은 인종 효릉을 모방해 제작하여 16세기의 돌거리 도상(圖像)에 17세기 양식이 혼합되어 있다. 1674년 인선왕후의 능을 효종릉 아래에 조성하여 동원상하릉이라는 보기 드문 형식이 만들어졌다. 현재 사적 '여주 영릉과 영릉(驪州 英陵과 寧陵)'으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 영조 때, 왕세자로 책봉되었으나, 10세에 요절한 후 정조에 의해 추존된 왕.
진종 (眞宗)
조선 영조 때, 왕세자로 책봉되었으나, 10세에 요절한 후 정조에 의해 추존된 왕.
조선후기 제20대 경종의 왕비.
단의왕후 (端懿王后)
조선후기 제20대 경종의 왕비.
원릉(元陵)은 조선 제21대 국왕인 영조와 계비 정순왕후 경주김씨의 쌍릉 합장릉이다. 영조의 수릉(壽陵)은 고양 서오릉 정성왕후 홍릉에 조성되었으나, 영조 승하 후 현재의 위치에 새롭게 조성되었다. 원릉은 효종 옛 영릉의 자리에 조성되어 지대석 등 일부 돌거리는 재사용되었다. 원릉은 사적 ‘구리 동구릉’ 내에 있다.
원릉 (元陵)
원릉(元陵)은 조선 제21대 국왕인 영조와 계비 정순왕후 경주김씨의 쌍릉 합장릉이다. 영조의 수릉(壽陵)은 고양 서오릉 정성왕후 홍릉에 조성되었으나, 영조 승하 후 현재의 위치에 새롭게 조성되었다. 원릉은 효종 옛 영릉의 자리에 조성되어 지대석 등 일부 돌거리는 재사용되었다. 원릉은 사적 ‘구리 동구릉’ 내에 있다.
효순왕후는 조선 후기, 제21대 영조의 장남 효장세자(孝章世子)의 비이다. 본관은 풍양, 아버지는 풍양 조씨 좌의정 조문명(趙文命), 어머니는 완흥부부인(完興府夫人) 전주 이씨이다. 1727년(영조 3) 13세에 효장세자(孝章世子)와 가례를 올리고 세자빈이 되었다. 1735년(영조 11)에 현빈(賢嬪)에 봉해졌고 1751년(영조 27)에 37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소생은 없었다.
효순왕후 (孝純王后)
효순왕후는 조선 후기, 제21대 영조의 장남 효장세자(孝章世子)의 비이다. 본관은 풍양, 아버지는 풍양 조씨 좌의정 조문명(趙文命), 어머니는 완흥부부인(完興府夫人) 전주 이씨이다. 1727년(영조 3) 13세에 효장세자(孝章世子)와 가례를 올리고 세자빈이 되었다. 1735년(영조 11)에 현빈(賢嬪)에 봉해졌고 1751년(영조 27)에 37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소생은 없었다.
영릉(英陵)과 영릉(寧陵)을 효율적으로 보존·관리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
세종전(세종대왕유적관리소) (世宗殿(世宗大王遺蹟管理所))
영릉(英陵)과 영릉(寧陵)을 효율적으로 보존·관리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
경기도 여주시 능서면 왕대리에 소재한 회양목.
여주 효종대왕릉 회양목 (驪州 孝宗大王陵 淮陽木)
경기도 여주시 능서면 왕대리에 소재한 회양목.
인릉(仁陵)은 조선 제23대 국왕인 순조와 순원왕후 안동김씨의 합장 단릉이다. 1834년 파주에 조성된 순조 인릉은 1856년 현재 자리로 천릉되었으며, 이 자리는 세종 옛 영릉 자리이다. 순조 인릉을 새로 조성하면서 옛 영릉과 인근의 장경왕후 옛 희릉 돌거리가 재사용되었다. 사적으로 서울 헌릉과 인릉 내에 있다.
인릉 (仁陵)
인릉(仁陵)은 조선 제23대 국왕인 순조와 순원왕후 안동김씨의 합장 단릉이다. 1834년 파주에 조성된 순조 인릉은 1856년 현재 자리로 천릉되었으며, 이 자리는 세종 옛 영릉 자리이다. 순조 인릉을 새로 조성하면서 옛 영릉과 인근의 장경왕후 옛 희릉 돌거리가 재사용되었다. 사적으로 서울 헌릉과 인릉 내에 있다.
숭릉(崇陵)은 북한 개성특별시 인근에 있었던 고려 전기 제15대 국왕 숙종의 비인 명의태후 유씨의 능이다. 1112년 8월 명의태후의 사후에 조영하였으며, 영정은 남편인 숙종의 영정과 함께 천수사에 모셨다. 고려왕후릉은 제릉서에서 관리하였는데, 인종 대에 위숙군제를 정비하면서 인종의 직계 증조부인 숙종의 영릉과 함께 명의왕후 숭릉은 4명의 산직당상이 관리하였다. 조선시대에 관리 소홀로 숭릉이 있는 곳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남편인 숙종 영릉 근처인 개성특별시 판문군에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숭릉 (崇陵)
숭릉(崇陵)은 북한 개성특별시 인근에 있었던 고려 전기 제15대 국왕 숙종의 비인 명의태후 유씨의 능이다. 1112년 8월 명의태후의 사후에 조영하였으며, 영정은 남편인 숙종의 영정과 함께 천수사에 모셨다. 고려왕후릉은 제릉서에서 관리하였는데, 인종 대에 위숙군제를 정비하면서 인종의 직계 증조부인 숙종의 영릉과 함께 명의왕후 숭릉은 4명의 산직당상이 관리하였다. 조선시대에 관리 소홀로 숭릉이 있는 곳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남편인 숙종 영릉 근처인 개성특별시 판문군에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