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영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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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쌍수산(雙樹山) 공산성(公山城)에 있는 조선전기 제7대 세조의 명으로 창건한 사찰.
쌍수산 영은사 (雙樹山 靈隱寺)
충청남도 공주시 쌍수산(雙樹山) 공산성(公山城)에 있는 조선전기 제7대 세조의 명으로 창건한 사찰.
삼척 영은사 범일국사 진영은 1788년에 제작된 통일신라시대의 승려 범일의 진영이다. 월정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788년에 화승 신겸이 사굴산문의 개창주 범일을 그린 초상화로, 의자에 앉아 있는 전신교의좌상 형식이다. 화면 속 범일국사는 상체는 과장되고 두 다리는 빈약하게 표현되었다. 화면 하단에는 완전하지 않지만 화기(畵記)가 있다. 그림틀은 액자형으로 화면 가장자리를 흰색과 녹색으로 마무리하는 조선 후기 장황 방식이다. 이 진영은 통일신라 이후 영동 지역에서 지속된 범일국사 숭배 신앙을 보여 주는 자료이다.
삼척 영은사 범일국사 진영 (三陟 靈隱寺 梵日國師 眞影)
삼척 영은사 범일국사 진영은 1788년에 제작된 통일신라시대의 승려 범일의 진영이다. 월정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788년에 화승 신겸이 사굴산문의 개창주 범일을 그린 초상화로, 의자에 앉아 있는 전신교의좌상 형식이다. 화면 속 범일국사는 상체는 과장되고 두 다리는 빈약하게 표현되었다. 화면 하단에는 완전하지 않지만 화기(畵記)가 있다. 그림틀은 액자형으로 화면 가장자리를 흰색과 녹색으로 마무리하는 조선 후기 장황 방식이다. 이 진영은 통일신라 이후 영동 지역에서 지속된 범일국사 숭배 신앙을 보여 주는 자료이다.
삼척 영은사 사명당 대선사 진영은 1788년에 제작된 사명당 유정의 진영이다. 2001년 강원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비단 바탕에 채색된 것으로 세로 95.5㎝, 가로 65㎝이다. 의자에 앉아 있는 전신교의좌상 형식으로, 청색 장삼과 붉은 가사, 짙은 눈썹과 풍성하고 긴 수염이 잘 표현되어 있다. 화기는 없으나 진영 형식과 화풍으로 보아 1788년에 신겸이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사명당은 임진왜란 시 승병장으로 활동하였다. 현전하는 조선 후기 사명대사 진영 가운데 승병장의 기세와 수행자의 면모를 살려 표현한 수작이다.
삼척 영은사 사명당 대선사 진영 (三陟 靈隱寺 四溟堂 大禪師 眞影)
삼척 영은사 사명당 대선사 진영은 1788년에 제작된 사명당 유정의 진영이다. 2001년 강원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비단 바탕에 채색된 것으로 세로 95.5㎝, 가로 65㎝이다. 의자에 앉아 있는 전신교의좌상 형식으로, 청색 장삼과 붉은 가사, 짙은 눈썹과 풍성하고 긴 수염이 잘 표현되어 있다. 화기는 없으나 진영 형식과 화풍으로 보아 1788년에 신겸이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사명당은 임진왜란 시 승병장으로 활동하였다. 현전하는 조선 후기 사명대사 진영 가운데 승병장의 기세와 수행자의 면모를 살려 표현한 수작이다.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영은사 관련 연못.
공주 공산성 연지 (公州 公山城 蓮池)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영은사 관련 연못.
함양 백운암 목조 아미타여래 좌상은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 백운암에 있는 조선 후기 성조 등 7명의 조각승들이 조성한 목조불상이다. 2010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크기는 높이 113㎝, 무릎 폭 80.8㎝이다. 발원문에 따르면 1674년 아미타삼존상으로 조성하였다고 하는데, 현재는 본존 아미타여래만이 남아 있다. 머리와 육계의 구분이 없고, 두 손을 모두 무릎 위에 올리고 엄지와 중지를 맞댄 하품중생인의 수인을 결하였다. 이 불상은 굴곡과 윤곽까지는 세밀하게 표현하지 않았다. 이는 조선 후기에 추구한 평담한 미의식이 반영된 결과이다.
함양 백운암 목조 아미타여래 좌상 (咸陽 白雲庵 木造 阿彌陀如來 坐像)
함양 백운암 목조 아미타여래 좌상은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 백운암에 있는 조선 후기 성조 등 7명의 조각승들이 조성한 목조불상이다. 2010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크기는 높이 113㎝, 무릎 폭 80.8㎝이다. 발원문에 따르면 1674년 아미타삼존상으로 조성하였다고 하는데, 현재는 본존 아미타여래만이 남아 있다. 머리와 육계의 구분이 없고, 두 손을 모두 무릎 위에 올리고 엄지와 중지를 맞댄 하품중생인의 수인을 결하였다. 이 불상은 굴곡과 윤곽까지는 세밀하게 표현하지 않았다. 이는 조선 후기에 추구한 평담한 미의식이 반영된 결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