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왕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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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비(大妃)는 조선시대 선왕의 왕비이다. 부군이었던 선왕(先王)이 사망하고 후사왕(後嗣王)이 즉위한 후 왕대비(王大妃)로 존숭되며, 현왕(現王)이 사망하고 다시 후사왕이 즉위하면 대왕대비(大王大妃)로 존숭되었다. 대비는 선왕의 정비(正妃)라는 관계에서 존숭된다. 대개 현왕의 어머니가 대비가 되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대비는 자전(慈殿), 자성(慈聖), 동조(東朝)라 호칭하였다.
대비 (大妃)
대비(大妃)는 조선시대 선왕의 왕비이다. 부군이었던 선왕(先王)이 사망하고 후사왕(後嗣王)이 즉위한 후 왕대비(王大妃)로 존숭되며, 현왕(現王)이 사망하고 다시 후사왕이 즉위하면 대왕대비(大王大妃)로 존숭되었다. 대비는 선왕의 정비(正妃)라는 관계에서 존숭된다. 대개 현왕의 어머니가 대비가 되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대비는 자전(慈殿), 자성(慈聖), 동조(東朝)라 호칭하였다.
인성왕후(仁聖王后)는 조선시대, 제12대 왕 인종의 비이다. 본관은 나주(羅州)이고, 금성부원군(錦城府院君) 박용(朴墉)과 문소부부인 김씨의 딸이다. 소생은 없다. 11세에 세자빈이 되고 31세에 왕비가 되었으나 인종이 승하하자 왕대비가 되었고 64세까지 살았다. 능호는 효릉(孝陵)이다.
인성왕후 (仁聖王后)
인성왕후(仁聖王后)는 조선시대, 제12대 왕 인종의 비이다. 본관은 나주(羅州)이고, 금성부원군(錦城府院君) 박용(朴墉)과 문소부부인 김씨의 딸이다. 소생은 없다. 11세에 세자빈이 되고 31세에 왕비가 되었으나 인종이 승하하자 왕대비가 되었고 64세까지 살았다. 능호는 효릉(孝陵)이다.
인원왕후(仁元王后)는 조선시대, 제19대 왕 숙종의 계비이다. 본관은 경주이고, 이조판서 김남중(金南重)의 3대손이며, 경은부원군(慶恩府院君) 김주신(金柱臣)과 가림부부인(嘉林府夫人) 임천 조씨(林川 趙氏)의 딸이다. 1702년 16세에 숙종의 세 번째 간택 왕비가 되었다. 소생은 없었고 연잉군을 자신의 아들로 입양하여 세제(世弟)가 된 후 왕위에 오르게 하였다. 71세에 사망하였다.
인원왕후 (仁元王后)
인원왕후(仁元王后)는 조선시대, 제19대 왕 숙종의 계비이다. 본관은 경주이고, 이조판서 김남중(金南重)의 3대손이며, 경은부원군(慶恩府院君) 김주신(金柱臣)과 가림부부인(嘉林府夫人) 임천 조씨(林川 趙氏)의 딸이다. 1702년 16세에 숙종의 세 번째 간택 왕비가 되었다. 소생은 없었고 연잉군을 자신의 아들로 입양하여 세제(世弟)가 된 후 왕위에 오르게 하였다. 71세에 사망하였다.
조선전기 세조의 비 정희왕후가 세종과 세조 등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1474년에 간행한 의례서. 불교의례서.
예념미타도량참법 권6~10 (禮念彌陀道場懺法 卷六~十)
조선전기 세조의 비 정희왕후가 세종과 세조 등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1474년에 간행한 의례서. 불교의례서.
조선전기 세조의 비 정희왕후가 세종과 세조 등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1474년에 간행한 의례서. 불교의례서.
예념미타도량참법 권3~4, 7~8 (禮念彌陀道場懺法 卷三~四|七~八)
조선전기 세조의 비 정희왕후가 세종과 세조 등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1474년에 간행한 의례서. 불교의례서.
조선전기 세조의 비 정희왕후가 세종과 세조 등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1503년에 간행한 의례서. 불교의례서.
예념미타도량참법 권6~10 (禮念彌陀道場懺法 卷六~十)
조선전기 세조의 비 정희왕후가 세종과 세조 등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1503년에 간행한 의례서. 불교의례서.
조선전기 세조의 비 정희왕후가 세종과 세조 등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1474년에 간행한 의례서. 불교의례서.
예념미타도량참법 (禮念彌陀道場懺法)
조선전기 세조의 비 정희왕후가 세종과 세조 등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1474년에 간행한 의례서. 불교의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