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왕신"
검색결과 총 7건
조선후기 제21대 왕 영조의 아들 사도세자에게 부여한 무속신격. 왕신.
뒤주대왕신 (뒤주大王神)
조선후기 제21대 왕 영조의 아들 사도세자에게 부여한 무속신격. 왕신.
조선전기 제7대 왕 세조에게 부여한 무속신격. 왕신.
세조대왕신 (世祖大王神)
조선전기 제7대 왕 세조에게 부여한 무속신격. 왕신.
남한산성 매당왕신 도당굿은 10월 상달 남한산성 청량당에서 이회 장군을 주신으로 모시고 행하는 마을굿이다. 이회(李晦) 장군은 남한산성을 대표하는 수호신으로 산성 내 청량당에 모셔져 있다. 1624년 남한산성 축성을 맡은 이회 장군은 모략을 받고 사형을 당했다. 훗날 죄가 없음이 밝혀져 서장대 옆에 사당을 지어 그의 넋을 달래게 되었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배씨무당이, 이후에는 김보살이 당을 관리하였다. 1990년대 중반부터 남한산성 도당굿보존회 주관하에 도당굿을 행하고 있다. 이 도당굿은 남한산성의 무속신앙과 신당의 역할을 밝히는 문화자원이라고 할 수 있다.
남한산성 매당왕신 도당굿 (南漢山城 鷹堂王神 都堂굿)
남한산성 매당왕신 도당굿은 10월 상달 남한산성 청량당에서 이회 장군을 주신으로 모시고 행하는 마을굿이다. 이회(李晦) 장군은 남한산성을 대표하는 수호신으로 산성 내 청량당에 모셔져 있다. 1624년 남한산성 축성을 맡은 이회 장군은 모략을 받고 사형을 당했다. 훗날 죄가 없음이 밝혀져 서장대 옆에 사당을 지어 그의 넋을 달래게 되었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배씨무당이, 이후에는 김보살이 당을 관리하였다. 1990년대 중반부터 남한산성 도당굿보존회 주관하에 도당굿을 행하고 있다. 이 도당굿은 남한산성의 무속신앙과 신당의 역할을 밝히는 문화자원이라고 할 수 있다.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도당산(都堂山)에 있는 조선시대 신라 장수 김유신의 영정을 봉안한 사당.
길상사 (吉祥祠)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도당산(都堂山)에 있는 조선시대 신라 장수 김유신의 영정을 봉안한 사당.
남북국시대 후백제 견훤의 조카로 고려에 볼모로 파견된 귀족.
진호 (眞虎)
남북국시대 후백제 견훤의 조카로 고려에 볼모로 파견된 귀족.
조물성전투는 후삼국 통일과정에서 고려와 후백제 사이에 있었던 싸움이다. 왕건이 즉위한 후 경북 내륙지역이 고려에 복속되자 후백제는 경상북도 죽령 부근의 조물성을 공격해 주도권을 잡고자 했다. 이 전투는 2차례에 걸쳐 이뤄졌는데, 1차는 924년 후백제가 먼저 공격하였으나 고려에 참패했다. 그 후 견훤이 직접 병력을 이끌고 2차 전투에 나섰고, 고려와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화의를 맺었다. 화의는 백제에 유리하게 진행되었고 이 전투의 결과 경상 지역에서 후백제의 영향력이 강화되었다.
조물성전투 (曹物城戰鬪)
조물성전투는 후삼국 통일과정에서 고려와 후백제 사이에 있었던 싸움이다. 왕건이 즉위한 후 경북 내륙지역이 고려에 복속되자 후백제는 경상북도 죽령 부근의 조물성을 공격해 주도권을 잡고자 했다. 이 전투는 2차례에 걸쳐 이뤄졌는데, 1차는 924년 후백제가 먼저 공격하였으나 고려에 참패했다. 그 후 견훤이 직접 병력을 이끌고 2차 전투에 나섰고, 고려와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화의를 맺었다. 화의는 백제에 유리하게 진행되었고 이 전투의 결과 경상 지역에서 후백제의 영향력이 강화되었다.
김종선은 일제강점기 때, 조선식산신탁회사 부사장, 서울 천도교 홍제소년군 단장 등을 역임하며 사회운동과 빈민구제활동에 참여한 정치인·기업인이다. 해방 이후 제헌국회의원, 세브란스의약품주식회사 대표 등을 역임하였다. 1900년 출생으로, 일본에서 학업을 마친 후 조선식산신탁회사 부사장을 역임하며 대자산가이자 전라도 대지주가 되었다. 사회운동에도 적극 참여해 교육운동과 소년운동을 이끌었으며, 다양한 구제 활동을 벌였다. 1948년 제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어 국회 산업노동위원으로 활동했다. 1950년 한국전쟁 중 피살되었다.
김종선 (金鍾善)
김종선은 일제강점기 때, 조선식산신탁회사 부사장, 서울 천도교 홍제소년군 단장 등을 역임하며 사회운동과 빈민구제활동에 참여한 정치인·기업인이다. 해방 이후 제헌국회의원, 세브란스의약품주식회사 대표 등을 역임하였다. 1900년 출생으로, 일본에서 학업을 마친 후 조선식산신탁회사 부사장을 역임하며 대자산가이자 전라도 대지주가 되었다. 사회운동에도 적극 참여해 교육운동과 소년운동을 이끌었으며, 다양한 구제 활동을 벌였다. 1948년 제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어 국회 산업노동위원으로 활동했다. 1950년 한국전쟁 중 피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