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매당왕신 도당굿 ( 굿)

민간신앙 /민속·인류
의례·행사
10월 상달 남한산성 청량당에서 이회장군을 주신으로 모시고 행하는 마을굿. 무속의례.
정의
10월 상달 남한산성 청량당에서 이회장군을 주신으로 모시고 행하는 마을굿. 무속의례.
개설

남한산성은 통일신라시대에 축성된 이후 도성(都城) 인근에 위치한 요새(要塞)이며, 청량당에 모셔진 이회(李晦)장군은 ‘매당왕신[鷹堂王神]’으로 남한산성을 대표하는 수호신이다. 청량당(淸凉堂)은 수어장대 좌측에 있으며, 이회장군을 모셔놓은 신당(神堂)이다.

이회장군은 조선 인조 2년(1624) 남한산성 축성 때에 동남쪽의 축성공사를 맡았으나, 축성 경비를 탕진하고 공사에 힘쓰지 않아 기일 내에 마치지 못하였다는 모략을 받고 사형을 당했는데, 그의 처첩도 남편의 성 쌓는 일을 돕기 위해 삼남지방에서 축성자금을 마련하여 돌아오는 길에 남편이 처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한강에 투신 자살하였다. 그 후 그가 이룬 공사를 재조사 해보니 견고하고 충실하게 축조되어 있어 그의 죄가 없음이 밝혀져 서장대 옆에 사당을 지어 그의 넋을 달래게 되었다.

연원 및 변천

예로부터 청량당은 서울에 있는 ‘국사당’과 같은 곳으로 이곳 주민들과 무속인들이 대대로 ‘대감땅’으로 섬겨왔다. 과거에는 청량당 옆에 오두막집이 하나 있어 당지기 무당이 거주하며 매년 행하는 당굿을 주관하고, 무속인들에게 일정한 이용료를 받고 당에서 굿을 할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하였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청량당 50여 미터 앞에 당주집이 있었는데, 주위에는 향나무와 전나무가 있었으며, 초가집으로 안방과 건너방 두 칸 그리고 안방 앞에 부엌이 있었다고 한다. 그곳에서 배씨무당은 당을 관리하며 굿을 주관했으며, 산성리의 주민 일부가 이 곳에서 일을 도와주며 함께 거주하기도 하였다.

한국전쟁 무렵에 청량당에서 배씨무당을 도우며 일을 하였던 이충녀에 따르면, 배씨무당이 있을 때 칠석과 초파일에 청량당에서 치성을 올리고 10월 상달에 굿을 했으며, 굿을 할 때 배씨는 갓을 쓰고 청룡포를 입고 대감만 놀고 나머지는 다른 무당들이 했다고 한다. 또한 당시 굿을 할 때 성남 사기막골의 곰보만신과 송파에서도 만신들이 왔다고 한 점으로 보아, 청량당에서 산이굿과 강신무의 굿이 함께 행해진 것으로 보인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산성리에 거주하는 김보살이 청량당을 관리했는데 그는 굿을 잘하고 제자가 많았으며 남편은 굿판에서 장구·호적·피리 등을 반주했다고 주민들은 전한다. 10월에 김보살이 날을 받아 청량당에서 굿을 하면 일부 주민들은 돈이나 쌀 한 말씩을 거두어 굿에 참석했다고 한다. 이 굿은 김보살이 옛날부터 청량당에서 행해진 도당굿의 전통을 이어받아 자신의 ‘진적굿’을 겸한 것으로 보인다.

김보살이 작고한 이후에는 남한산성 관리사무소에서 무당들의 청량당 출입을 막아 그 곳에서 굿하는 것은 한동안 볼 수 없었지만, 1990년대 중반부터 남한산성 도당굿보존회가 주관하여 산성리 주차장에서 청량당을 보며 도당굿을 하고 있다.

현황

청량당에서 행해진 굿은 현재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부천의 ‘장말도당굿’과도 유사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당시 송파 몽촌에 거주하며 경기도에서 세습무로 이름을 떨친 이충선의 조카 이명옥(서울시문화재 ‘남이장군당굿’ 기능보유자)에 의하면, ‘이충선 일행이 남한산성으로도 굿을 하러 다녔다’는 말을 참고해 볼 때 산성에서도 ‘산이굿’이 행해진 것으로 보여진다.

의의와 평가

고대시대부터 산성에는 신당이 있었다는 점에서 신당은 산성문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특히, 이 도당굿은 2014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남한산성에서 무속신앙과 신당의 역할을 밝히는 문화자원이라고 하겠다.

참고문헌

『전국의 기도터와 굿당』-서울경기강원지역편-(김덕묵, 한국민속기록보존소, 2003)
집필자
김덕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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