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에서는 한강 이북지역에서는 주로 강신무에 의한 도당굿이 나타나는 반면에 남부지역에서는 세습무에 의한 도당굿이 현저하게 드러난다. 따라서 남부지역의 세습무에 의한 도당굿만을 지칭할 때는 세습무인 산이들이 주로 경기남부인 수원, 오산, 소사, 인천, 시흥, 안산, 광주 등지를 단골판으로 활동하였기 때문에 경기 남부의 도당굿, 경기도 산이(화랭이)의 도당굿이라고 해야 한다.
경기도당굿을 하는 무당집단은 세습무 집안이 중심이 되며 남무인 화랭이와 여무인 ‘미지’로 구성된다. 1970년대에 조사된 바로는 한강 이남 지역에 세습무 집안이 10여 집이 남아 있었다고 하나 오늘날은 대부분 작고하거나 연로하여 겨우 명맥을 잇고 있다. 세습무들은 대를 이어서 기예능을 연마하여 그 음악과 무용 등에서 예술적 자질이 뛰어났다. 해방 전까지만 해도 도당굿에는 먼저 화랭이들이 줄을 타고, 기생의 소리와 춤들이 곁들여져서 축제분위기가 강하였다. 굿에도 많은 화랭이들이 참여해서 재담과 소리, 놀이를 하며 다채로웠다. 지금은 한두 명이 남아 겨우 명맥만 잇고 있다. 경기도당굿의 음악은 육자배기토리로 되어 있고, 장단도 호남지역에 가까우면서도 나름대로 다채로운 독자성을 가지고 있다. 춤은 제의성과 연희성을 내포하고 있는 화랭이 춤이 다채롭게 나타난다.
마을굿은 고대부족국가에서부터 유래를 찾을 수 있기에 그 연원은 매우 오래되었다. 경기도 도당굿은 한국전쟁과 새마을운동의 영향으로 한동안 단절되었다가, 1980년 11월 7일 사흘간의 일정으로 경기도 부천시 중동 장말에서 도당굿이 행해졌다. 서간난과 조한춘의 당골인 장말은 한동안 예산문제로 기대굿과 고사만을 지내오다가 조한춘 등 뜻있는 사람들의 노력과 굿에 대한 주민들의 기대가 있어 다시 하게 되었다. 이어 1982년 인천시 남구 동춘동 동막부락에서도 도당굿이 행해졌다. 1990년에 중요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로 지정(당시 기능보유자는 조한춘(趙漢春) · 오수복(吳壽福)) 되면서 매년 부천 장말에서는 도당굿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전통적인 마을공동체가 도시화되면서 점차 공연화되고 있다. 옛날에는 3일 이상 난장을 여는 큰 축제였으나, 지금은 오전에 시작해서 다음날 아침에 끝을 내는 1박2일의 행사가 되고 있다.
도당굿의 절차는 지역마다 약간씩 행위나 절차가 다르게 나타나며, 굿을 주관하는 무격에 따라서도 변화가 있다. 일반적인 순서를 보면, 굿을 하기 전날 당주(堂主)의 집에서 하는 당주굿을 시작으로 뒷전으로 마무리 된다. 일반적인 집굿과 같은 경기 남부지역 굿의 형태를 보이고 있으나 당맞이, 돌돌이, 터벌림 등과 같이 집굿에서 보이지 않는 거리가 있고, 집굿에서 보이는 산바라기굿이나 서낭굿이 없는 것이 도당굿의 특징이다.
도당굿은 굿을 하기 전날 당주(堂主)의 집에서 벌이는 ‘당주굿’으로 시작한다. 다음에는 당주집에서 굿당까지 올라가는 중간에 길거리에서 부정을 가시는 ‘거리부정’을 하고, 굿당에 도착해 주변의 잡귀잡신에게 시루를 먹이는 ‘안반고수레’, 굿을 벌일 장소를 정화하는 ‘부정굿’, 신대를 꺾어 든 마을의 대잡이에게 신이 내리면 당가리 앞으로 가 도당신을 모시고 굿청으로 되돌아 오는 ‘도당모시기’, 마을의 장승과 공동우물, 원하는 집을 돌며 마을과 집안의 평안을 비는 ‘돌돌이’, 굿당에서 군응마나님께 대취타연주를 올리는 ‘장문잡기’, 도당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굿을 잘 받으셨는지를 시루가 쉽게 들어 올려지는지로 확인하는 ‘시루말’ 이 있다.
제석청배와 바라춤을 추는 ‘제석굿’, 군웅조상과 도당조상, 본향조상을 모셔서 집안의 평안과 자손번창을 축원하는 ‘본향굿’, 화랭이들이 한 사람씩 나와 춤과 묘기를 보이는 ‘터벌림’, 손님인 마마신을 위한 ‘손굿’, 굿꾼과 무녀의 쌍군웅춤인 ‘군웅굿’, 날이 밝아 도당신을 당가리로 다시 좌정시키고 돌아오는 ‘도당보내기’, 고깔과 장삼 차림의 굿꾼이 놀며 동네축원과 중수비를 풀어주는 ‘중굿’, 굿에 따라든 잡귀들을 풀어 먹여 보내는 ‘뒷전’으로 굿은 끝난다.
경기도당굿은 화랭이(산이)가 중심을 이루는 굿이며, 군웅굿의 군웅노정기와 같은 무가는 판소리와 연관성이 강하며, 육자배기토리의 시나위 음악이나 다양한 탈놀이, 다채로운 무용 등은 한국민속예술의 보고(寶庫)이며 음악, 무용, 판소리, 탈놀이, 민속놀이 등과의 관계 및 파생, 발전 등 다양한 측면에서 연구할 수 있는 자료가 되기 때문에 학술적 · 문화적으로 가치가 매우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