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백제왕 견훤(甄萱)의 외생(外甥: 처의 형제 혹은 시집간 여동생이 낳은 사내아이)인데, 고려에 볼모로 갔다. 925년 10월 견훤은 기병(騎兵) 3,000을 이끌고 조물성(曹物城)에서 고려 왕건(王建)의 군대와 대적하였다.
이 때 사세가 불리함을 느낀 왕건은 후백제와 화친을 청하면서 사촌 동생 왕신(王信)을 볼모로 보냈다. 그리하여 같은 해 11월 진호는 견훤의 명을 받고 고려에 볼모로 파견되었으나 이듬해 4월 갑자기 죽었다. 그의 죽음은 후백제와 고려 사이에 커다란 변화를 초래하였다.
즉, 견훤은 그의 죽음을 고려인의 고의적인 살해로 간주하여, 고려측의 볼모인 왕신을 처형하는 한편, 고려에 선물로 보냈던 총마(驄馬)를 되돌려 받았다. 아울러 군사를 일으켜 지금의 공주지역을 공격하였는데, 이 후 후백제와 고려는 본격적인 전쟁상황으로 접어들게 되었다.
그의 죽음에 견훤이 이처럼 민감하게 반응한 이유는, 견훤과 연결된 가계(家系)의 호족적 비중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