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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문세족은 고려 후기 정치세력으로 고려 전기의 문벌귀족, 조선의 양반사대부와 비견되는 지배층이다. 권문세가라고도 한다. 무신란을 계기로 고려 전기의 문벌귀족 사회가 붕괴한 뒤 무신집권기라는 새로운 정치·사회적 배경 위에서 성장하여 원간섭기인 13세기 후반 무렵에 완성된 지배세력이다. 전통 문벌귀족 일부와 무신집권기에 부역한 관인층 또는 무신으로서 등장한 가문, 그리고 대원관계 속에서 신흥세력으로 새로이 등장한 가문 등이 포함된다. 고려 전기의 문벌귀족에 비해 관료적 성격이 강하여, 귀족 사회에서 관료 사회로 발전하는 중간 단계의 지배세력이었다.
권문세족 (權門世族)
권문세족은 고려 후기 정치세력으로 고려 전기의 문벌귀족, 조선의 양반사대부와 비견되는 지배층이다. 권문세가라고도 한다. 무신란을 계기로 고려 전기의 문벌귀족 사회가 붕괴한 뒤 무신집권기라는 새로운 정치·사회적 배경 위에서 성장하여 원간섭기인 13세기 후반 무렵에 완성된 지배세력이다. 전통 문벌귀족 일부와 무신집권기에 부역한 관인층 또는 무신으로서 등장한 가문, 그리고 대원관계 속에서 신흥세력으로 새로이 등장한 가문 등이 포함된다. 고려 전기의 문벌귀족에 비해 관료적 성격이 강하여, 귀족 사회에서 관료 사회로 발전하는 중간 단계의 지배세력이었다.
원종은 고려 후기 제24대(1259~1274) 왕이다. 친몽 정책(親蒙政策)을 추진하여 김준, 임연 등 무신 집정자들과 갈등을 빚었다. 임연을 사주해 김준을 제거하였지만 임연과의 갈등으로 폐위되었다가 몽골의 개입으로 복위되기도 하였다. 몽골에서 귀국하면서 1270년(원종 11) 전격적으로 개경 환도(開京還都)와 삼별초 해산을 명하였고, 이로 인하여 삼별초의 난이 촉발되었다. 몽골에 대한 복속과 타협으로 원 간섭기(元干涉期)의 출발을 가져왔지만, 오랜 전란을 종식시키고 고려 국체의 유지, 보존이라는 현실적 선택을 했던 왕이다.
원종 (元宗)
원종은 고려 후기 제24대(1259~1274) 왕이다. 친몽 정책(親蒙政策)을 추진하여 김준, 임연 등 무신 집정자들과 갈등을 빚었다. 임연을 사주해 김준을 제거하였지만 임연과의 갈등으로 폐위되었다가 몽골의 개입으로 복위되기도 하였다. 몽골에서 귀국하면서 1270년(원종 11) 전격적으로 개경 환도(開京還都)와 삼별초 해산을 명하였고, 이로 인하여 삼별초의 난이 촉발되었다. 몽골에 대한 복속과 타협으로 원 간섭기(元干涉期)의 출발을 가져왔지만, 오랜 전란을 종식시키고 고려 국체의 유지, 보존이라는 현실적 선택을 했던 왕이다.
다루가치는 고려 후기에 몽골제국에서 정복지의 총독, 감독관으로 두었다가 지방장관으로도 사용된 직명이다. 고려에는 1232년(고종 19)에 처음 설치되었다. 고려가 몽골에 항복하여 개경으로 환도한 후인 1270년부터 1278년까지 개경에 상주하였다.
다루가치 (達魯花赤)
다루가치는 고려 후기에 몽골제국에서 정복지의 총독, 감독관으로 두었다가 지방장관으로도 사용된 직명이다. 고려에는 1232년(고종 19)에 처음 설치되었다. 고려가 몽골에 항복하여 개경으로 환도한 후인 1270년부터 1278년까지 개경에 상주하였다.
겁령구는 고려후기에 몽골의 공주를 따라온 사속인(私屬人)이다. 제국대장공주(齊國大長公主)를 따라온 인후(印侯), 장순룡(張舜龍), 차신(車信)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공주의 심복이면서 충렬왕의 측근으로 활동하여 재상에까지 올라 정치적으로 위세를 떨쳤다. 고려와 몽골 관계에서 고려의 사신으로 외교 활동도 많이 하였다.
겁령구 (怯怜口)
겁령구는 고려후기에 몽골의 공주를 따라온 사속인(私屬人)이다. 제국대장공주(齊國大長公主)를 따라온 인후(印侯), 장순룡(張舜龍), 차신(車信)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공주의 심복이면서 충렬왕의 측근으로 활동하여 재상에까지 올라 정치적으로 위세를 떨쳤다. 고려와 몽골 관계에서 고려의 사신으로 외교 활동도 많이 하였다.
고려후기 호군, 지언부사, 판중문사 등을 역임한 관리. 무신.
이인기 (李仁琪)
고려후기 호군, 지언부사, 판중문사 등을 역임한 관리. 무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