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유가종"
검색결과 총 8건
고려전기 왕사, 국사 등을 역임한 승려.
법경 (法鏡)
고려전기 왕사, 국사 등을 역임한 승려.
동화사는 남북국시대, 심지(心地)가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八公山)에 창건한 사찰이다. 고려시대 법상종 소속 사찰이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사명대사가 동화사에서 의승군을 이끌었다. 18세기 전반에는 염불수행자 기성 쾌선이 머물렀고, 18세기 후반에는 화엄학의 대가였던 인악 의첨이 머물며 후학을 가르쳤다. 일제 강점기에는 30본산의 하나였으며 동화사 지방 학림의 스님들이 3·1 만세운동에 적극 가담하였다.
팔공산 동화사 (八公山 桐華寺)
동화사는 남북국시대, 심지(心地)가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八公山)에 창건한 사찰이다. 고려시대 법상종 소속 사찰이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사명대사가 동화사에서 의승군을 이끌었다. 18세기 전반에는 염불수행자 기성 쾌선이 머물렀고, 18세기 후반에는 화엄학의 대가였던 인악 의첨이 머물며 후학을 가르쳤다. 일제 강점기에는 30본산의 하나였으며 동화사 지방 학림의 스님들이 3·1 만세운동에 적극 가담하였다.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흥륜사에 머물렀던 유가종의 승려.
영수 (永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흥륜사에 머물렀던 유가종의 승려.
태현(太賢)은 경덕왕 때 남산 용장사에서 주석하였던 유식학을 전공한 승려이다. 경덕왕의 명으로 가뭄을 해소하기 위해 궁에서 『금광명경』을 강론하기도 하였다. 용장사에 있던 미륵장육상을 돌며 수행하였다. 『성유식론학기』, 『대승기신론내의약탐기』, 『범망경고적기』, 『약사본원경고적기』 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원효에 버금가는 신라의 대저작가이다.
태현 (太賢)
태현(太賢)은 경덕왕 때 남산 용장사에서 주석하였던 유식학을 전공한 승려이다. 경덕왕의 명으로 가뭄을 해소하기 위해 궁에서 『금광명경』을 강론하기도 하였다. 용장사에 있던 미륵장육상을 돌며 수행하였다. 『성유식론학기』, 『대승기신론내의약탐기』, 『범망경고적기』, 『약사본원경고적기』 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원효에 버금가는 신라의 대저작가이다.
고려후기 오교도승통, 동화사 주지 등을 역임한 승려.
혜영 (惠永)
고려후기 오교도승통, 동화사 주지 등을 역임한 승려.
해원은 몽골 황제인 무제의 원찰인 숭은복원사 주지를 지낸 유가종 승려이다. 유가종은 무신정권기에 침체되었으나, 원 간섭기에 몽골제국의 요청에 따라 사경승을 파견하고 유가종의 학승들이 활약하면서 다시 부각되었다. 해원은 원 간섭기의 대표적인 유가종 승려로 만년에 대도의 대숭은복원사 주지로 머물렀다.
해원 (海圓)
해원은 몽골 황제인 무제의 원찰인 숭은복원사 주지를 지낸 유가종 승려이다. 유가종은 무신정권기에 침체되었으나, 원 간섭기에 몽골제국의 요청에 따라 사경승을 파견하고 유가종의 학승들이 활약하면서 다시 부각되었다. 해원은 원 간섭기의 대표적인 유가종 승려로 만년에 대도의 대숭은복원사 주지로 머물렀다.
『화엄경고적기』는 남북국시대에 통일신라 승려 태현이 『화엄경』에 대한 주석들을 모아 자신의 견해를 덧붙인 주석서이다. 태현은 원효(元曉), 경흥(憬興)과 함께 신라의 3대 저술가로 꼽힌다. 유가종(瑜伽宗)의 승려로서 유식사상과 불교 논리학인 인명(因明)에 관한 저술을 주로 남겼다. 태현의 저술은 총 43부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지며 그중에는 ‘고적기(古迹記)’라는 제목이 붙은 저서들이 다수 보인다. 이 가운데 현존하는 것은 5부이다. 그러나 『화엄경고적기(華嚴經古迹記)』는 전하지 않아 그 내용을 알 수 없다.
화엄경고적기 (華嚴經古迹記)
『화엄경고적기』는 남북국시대에 통일신라 승려 태현이 『화엄경』에 대한 주석들을 모아 자신의 견해를 덧붙인 주석서이다. 태현은 원효(元曉), 경흥(憬興)과 함께 신라의 3대 저술가로 꼽힌다. 유가종(瑜伽宗)의 승려로서 유식사상과 불교 논리학인 인명(因明)에 관한 저술을 주로 남겼다. 태현의 저술은 총 43부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지며 그중에는 ‘고적기(古迹記)’라는 제목이 붙은 저서들이 다수 보인다. 이 가운데 현존하는 것은 5부이다. 그러나 『화엄경고적기(華嚴經古迹記)』는 전하지 않아 그 내용을 알 수 없다.
현화사는 1021년 고려 현종이 부모의 명복을 빌기 위해 황해북도 장풍군에 창건한 절이다. 현화사 앞의 ‘대자은’은 자은종, 즉 유가종 소속의 사찰이었음을 명시한 것이다. 현종이 적극적으로 지원하여 창건되었으며, 이후에도 여러 왕들이 이 절을 찾았다. 고려 중기 유가종의 중심인물들이 현화사의 주지를 지내는 등 유가종의 중심 사찰로 자리매김하였다. 17세기 초까지는 사찰이 유지되었던 것 같으나, 이후 언제 어떤 연유로 폐사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현화사 (玄化寺)
현화사는 1021년 고려 현종이 부모의 명복을 빌기 위해 황해북도 장풍군에 창건한 절이다. 현화사 앞의 ‘대자은’은 자은종, 즉 유가종 소속의 사찰이었음을 명시한 것이다. 현종이 적극적으로 지원하여 창건되었으며, 이후에도 여러 왕들이 이 절을 찾았다. 고려 중기 유가종의 중심인물들이 현화사의 주지를 지내는 등 유가종의 중심 사찰로 자리매김하였다. 17세기 초까지는 사찰이 유지되었던 것 같으나, 이후 언제 어떤 연유로 폐사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