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육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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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물전은 조선시대, 육주비전 가운데 수산물을 취급하던 시전이다. 조선 초기에는 도성 안에 하나의 어물전이 설치되었으나, 조선 후기에는 도성 밖에 외어물전이 신설되면서 내전과 외전이 분쟁을 겪었다. 또한 사상들이 어물전을 배제한 채 도성 안팎의 어물 유통을 장악해 나가기 시작하면서 어물전은 이들과도 분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어물전 (魚物廛)
어물전은 조선시대, 육주비전 가운데 수산물을 취급하던 시전이다. 조선 초기에는 도성 안에 하나의 어물전이 설치되었으나, 조선 후기에는 도성 밖에 외어물전이 신설되면서 내전과 외전이 분쟁을 겪었다. 또한 사상들이 어물전을 배제한 채 도성 안팎의 어물 유통을 장악해 나가기 시작하면서 어물전은 이들과도 분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시대 한양과 개성 등의 시전(市廛) 도중(都中)의 우두머리.
대행수 (大行首)
조선시대 한양과 개성 등의 시전(市廛) 도중(都中)의 우두머리.
조선시대 육주비전(六注比廛)의 하나로 포(布)를 취급하던 전.
포전 (布廛)
조선시대 육주비전(六注比廛)의 하나로 포(布)를 취급하던 전.
조선 중기 이후 서울 육의전(六矣廛) 상인의 동업자 단체.
도중 (都中)
조선 중기 이후 서울 육의전(六矣廛) 상인의 동업자 단체.
갑인통공은 1794년(정조 18), ‘신해통공’ 시행에 대해 이정(釐正)하고 보완한 후속 정책이다. 육의전에 포함되었던 물종(物種)에 대한 이정 정책이었으며, 일반 시전 상인들의 요구인 원전삭세를 감세해 주고 원전수세 조치로 이어졌다. 즉 어물전에서 육의전을 빼내어 통공화매(通共和賣)하는 사안이었다. 갑인통공의 결과, 육의전은 입전(立廛)·면포전(綿布廛)·면주전(綿紬廛)·지전(紙廛)·저전(紵廛)·포전(布廛)으로 정해졌다.
갑인통공 (甲寅通共)
갑인통공은 1794년(정조 18), ‘신해통공’ 시행에 대해 이정(釐正)하고 보완한 후속 정책이다. 육의전에 포함되었던 물종(物種)에 대한 이정 정책이었으며, 일반 시전 상인들의 요구인 원전삭세를 감세해 주고 원전수세 조치로 이어졌다. 즉 어물전에서 육의전을 빼내어 통공화매(通共和賣)하는 사안이었다. 갑인통공의 결과, 육의전은 입전(立廛)·면포전(綿布廛)·면주전(綿紬廛)·지전(紙廛)·저전(紵廛)·포전(布廛)으로 정해졌다.
도가(都家)는 조선시대에 시전(市廛)의 사무실 겸 창고로 운영되던 상업 공간이다. 도가는 도중(都中)이라는 시전 조직이 운영하였으며, 도중의 최고 수장인 대행수(大行首)를 중심으로 도가에서 각종 사안을 논의하고 시전을 운영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도가는 창고로도 사용되었는데, 각각의 시전들은 도난 발생을 염려하여 야간에 도가를 지키기도 하였다.
도가 (都家)
도가(都家)는 조선시대에 시전(市廛)의 사무실 겸 창고로 운영되던 상업 공간이다. 도가는 도중(都中)이라는 시전 조직이 운영하였으며, 도중의 최고 수장인 대행수(大行首)를 중심으로 도가에서 각종 사안을 논의하고 시전을 운영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도가는 창고로도 사용되었는데, 각각의 시전들은 도난 발생을 염려하여 야간에 도가를 지키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의 시전(市廛) 중 국역(國役)부담의 의무가 없던 전.
무분전 (無分廛)
조선시대의 시전(市廛) 중 국역(國役)부담의 의무가 없던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