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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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동재사는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문단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김담(金淡)의 묘역 인근에 건립된 재사이다. 초창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김당의 8세손인 김이만(金履萬)의 문집에 수록된 「중건빈동재사기(重建賓洞齋舍記)」를 통해 1753년(영조 29)에 중건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재사는 정면과 측면이 모두 5칸인 ㅁ자형 건물 1동인데, 지붕 가구는 모두 3량이다. 비교적 경사가 급한 대지에 자리잡았는데, 이러한 입지를 활용해 부분적으로 2층 공간을 두었다.
빈동재사 (賓洞齋舍)
빈동재사는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문단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김담(金淡)의 묘역 인근에 건립된 재사이다. 초창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김당의 8세손인 김이만(金履萬)의 문집에 수록된 「중건빈동재사기(重建賓洞齋舍記)」를 통해 1753년(영조 29)에 중건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재사는 정면과 측면이 모두 5칸인 ㅁ자형 건물 1동인데, 지붕 가구는 모두 3량이다. 비교적 경사가 급한 대지에 자리잡았는데, 이러한 입지를 활용해 부분적으로 2층 공간을 두었다.
종릉재사는 1606년에 조선시대 문신 류영순이 선조인 조선 개국원종공신 류빈의 묘소를 수호하고자 지은 영주시 문수면 승문리에 있는 재사이다. 유릉산 기슭 경사지에 건물들이 튼ㅁ자로 안마당 주위에 모여 있고 그중 왼쪽의 추원재를 큰 누마루가 있는 다락집으로 꾸몄다. ㅁ자집 또는 튼ㅁ자집으로 꾸미고 큰 누마루를 설치한 경상북도 재사 건축의 사례 중 하나로 가치가 있다. 전체적으로는 소박하지만 강하게 모접기한 팔각기둥, 마루의 큰 재목 사용 등 세부 특징은 류영순이 경상도관찰사로서 관 소속 대목들을 동원했을 가능성을 보여 준다.
종릉재사 (鍾陵齋舍)
종릉재사는 1606년에 조선시대 문신 류영순이 선조인 조선 개국원종공신 류빈의 묘소를 수호하고자 지은 영주시 문수면 승문리에 있는 재사이다. 유릉산 기슭 경사지에 건물들이 튼ㅁ자로 안마당 주위에 모여 있고 그중 왼쪽의 추원재를 큰 누마루가 있는 다락집으로 꾸몄다. ㅁ자집 또는 튼ㅁ자집으로 꾸미고 큰 누마루를 설치한 경상북도 재사 건축의 사례 중 하나로 가치가 있다. 전체적으로는 소박하지만 강하게 모접기한 팔각기둥, 마루의 큰 재목 사용 등 세부 특징은 류영순이 경상도관찰사로서 관 소속 대목들을 동원했을 가능성을 보여 준다.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에 있는 조선후기 에 중창된 안동권씨의 재실. 목조건축.
안동권씨 송파재사 (安東權氏 松坡齋舍)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에 있는 조선후기 에 중창된 안동권씨의 재실. 목조건축.
효곡재사는 1685년(숙종 11) 송영이 조선시대 문신이자 증조인 우곡 송량을 향사하기 위하여 상주시 공성면 효곡리에 창건한 재실이다. 효곡1리에서 약간 남쪽으로 떨어진 재실마의 뒷산 기슭에 강당인 백원당과 사당이 있다. 효곡재사의 배치와 백원당의 세부는 조선 중기 경상북도 지역의 소규모 재실, 강당 건물 형식이 잘 보존된 사례이며, 인접한 송량일가 정려각, 효곡서원 등 우곡 관련 문화유산들과 연계하여 지역 인물의 업적을 전승한 방식을 살펴볼 수 있다.
효곡재사 (孝谷齋舍)
효곡재사는 1685년(숙종 11) 송영이 조선시대 문신이자 증조인 우곡 송량을 향사하기 위하여 상주시 공성면 효곡리에 창건한 재실이다. 효곡1리에서 약간 남쪽으로 떨어진 재실마의 뒷산 기슭에 강당인 백원당과 사당이 있다. 효곡재사의 배치와 백원당의 세부는 조선 중기 경상북도 지역의 소규모 재실, 강당 건물 형식이 잘 보존된 사례이며, 인접한 송량일가 정려각, 효곡서원 등 우곡 관련 문화유산들과 연계하여 지역 인물의 업적을 전승한 방식을 살펴볼 수 있다.
서울특별시 강북구에 있는 조선후기 복온공주와 부마 창녕위 김병주의 재실. 재사(齋舍).
서울 창녕위궁 재사 (서울 昌寧尉宮 齋舍)
서울특별시 강북구에 있는 조선후기 복온공주와 부마 창녕위 김병주의 재실. 재사(齋舍).
광산김씨 재사 및 사당(光山金氏 齋舍 및 祠堂)은 조선 중기에 경상북도 안동시 오천면 외내마을에 지어졌다가 안동댐 건설로 인근의 와룡면 오천리로 옮겨진 광산김씨의 재사 및 사당이다. 이 사당은 입향조로 알려진 농수(聾叟) 김효로(金孝盧)의 위패를 봉안하기 위해 1536년(중종 31)에 지어진 이후 김효로의 증손자 근시재(近始齋) 김해(金垓)를 합향한 것이다. 재사는 2동의 ㅡ자형 건물과 1동의 고사(庫舍)로 구성된다. 이 건물들은 함께 옮겨진 후조당(後彫堂)의 부속 건물들로 알려져 있는데, 이건하기 전의 배치는 확인되지 않았다.
광산김씨 재사 및 사당 (光山金氏 齋舍 및 祠堂)
광산김씨 재사 및 사당(光山金氏 齋舍 및 祠堂)은 조선 중기에 경상북도 안동시 오천면 외내마을에 지어졌다가 안동댐 건설로 인근의 와룡면 오천리로 옮겨진 광산김씨의 재사 및 사당이다. 이 사당은 입향조로 알려진 농수(聾叟) 김효로(金孝盧)의 위패를 봉안하기 위해 1536년(중종 31)에 지어진 이후 김효로의 증손자 근시재(近始齋) 김해(金垓)를 합향한 것이다. 재사는 2동의 ㅡ자형 건물과 1동의 고사(庫舍)로 구성된다. 이 건물들은 함께 옮겨진 후조당(後彫堂)의 부속 건물들로 알려져 있는데, 이건하기 전의 배치는 확인되지 않았다.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에 있는 조선시대 무신 박의장의 재실.
덕후루 (德厚樓)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에 있는 조선시대 무신 박의장의 재실.
갱생보호제도는 자유형을 마치고 교도소를 막 출소한 사람들의 사회복귀를 위한 국가의 보호 제도이다. 1961년 「갱생보호법」으로 시작한 이 제도는 1995년 「보호관찰 등에 관한 법률」에 그 내용이 흡수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갱생보호의 방법으로는 숙식 제공, 주거 지원, 창업 지원, 직업훈련 및 취업 지원 등이 있고,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또는 그 밖에 갱생보호사업의 허가를 받은 사람이 갱생보호시설을 설치·운영할 수 있다.
갱생보호제도 (更生保護制度)
갱생보호제도는 자유형을 마치고 교도소를 막 출소한 사람들의 사회복귀를 위한 국가의 보호 제도이다. 1961년 「갱생보호법」으로 시작한 이 제도는 1995년 「보호관찰 등에 관한 법률」에 그 내용이 흡수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갱생보호의 방법으로는 숙식 제공, 주거 지원, 창업 지원, 직업훈련 및 취업 지원 등이 있고,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또는 그 밖에 갱생보호사업의 허가를 받은 사람이 갱생보호시설을 설치·운영할 수 있다.
조선 전기에, 대사간, 대사헌, 한성우윤 등을 역임한 문신.
나세찬 (羅世纘)
조선 전기에, 대사간, 대사헌, 한성우윤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태안군수, 울산부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양기재유고』, 『양기재산고』 등을 저술한 문신.
안서우 (安瑞羽)
조선 후기에, 태안군수, 울산부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양기재유고』, 『양기재산고』 등을 저술한 문신.
태조왕은 삼국시대 고구려의 제6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53~146년으로 국조왕 또는 태조대왕이라고도 한다. 모본왕 살해 후 여러 관리들이 그의 아버지 재사를 왕으로 추대했는데 재사가 나이가 많다 하여 사양하면서 왕위에 올랐다. 재위하는 동안 후한의 압력을 차단하고 서방진출을 시도하여 고구려의 국가발전의 기틀을 마련했다. 주변 소국의 지배세력들을 관료로 흡수하여 전제왕권적 지배체제의 토대를 갖추었다. 동생 수성이 점차 권력을 장악하고 왕위까지 노리자 그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별궁에서 은거하다가 165년 11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태조왕 (太祖王)
태조왕은 삼국시대 고구려의 제6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53~146년으로 국조왕 또는 태조대왕이라고도 한다. 모본왕 살해 후 여러 관리들이 그의 아버지 재사를 왕으로 추대했는데 재사가 나이가 많다 하여 사양하면서 왕위에 올랐다. 재위하는 동안 후한의 압력을 차단하고 서방진출을 시도하여 고구려의 국가발전의 기틀을 마련했다. 주변 소국의 지배세력들을 관료로 흡수하여 전제왕권적 지배체제의 토대를 갖추었다. 동생 수성이 점차 권력을 장악하고 왕위까지 노리자 그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별궁에서 은거하다가 165년 11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보만재잉간』은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서명응이 『보만재총서』를 편찬하고 남은 저작을 1784년에 편집한 문집이다. 서명응은 1780년(정조 4) 퇴임 후에 그동안의 저술을 모아 『보만재총서』를 완성하였다. 『보만재잉간』은 그 책에 수록하지 못한 『홍범오전』, 『주역사전』, 『자치통감강목삼편』, 『시사팔전』, 『도덕지귀』, 『참동직전』, 『시악집정』, 『방언집석』 등 8종의 서적으로 구성되었다. 특히 『시악화성』은 조선시대 음악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며, 『방언집석』은 동아시아 언어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서명응의 저작 과정과 폭을 보여주는 거작이다.
보만재잉간 (保晩齋剩簡)
『보만재잉간』은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서명응이 『보만재총서』를 편찬하고 남은 저작을 1784년에 편집한 문집이다. 서명응은 1780년(정조 4) 퇴임 후에 그동안의 저술을 모아 『보만재총서』를 완성하였다. 『보만재잉간』은 그 책에 수록하지 못한 『홍범오전』, 『주역사전』, 『자치통감강목삼편』, 『시사팔전』, 『도덕지귀』, 『참동직전』, 『시악집정』, 『방언집석』 등 8종의 서적으로 구성되었다. 특히 『시악화성』은 조선시대 음악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며, 『방언집석』은 동아시아 언어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서명응의 저작 과정과 폭을 보여주는 거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