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조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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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의미의 개항은 외국과 국교를 맺고 통상 관계를 갖는 일을 말하지만, 우리나라 역사에서의 개항은 근대 개항기인 1876년 2월 26일 조일수호조규(강화도조약)을 체결하여 문호를 개방하게 된 일을 말한다. 조선은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취하다가 1876년(고종 13) 2월 26일 강화도에서 체결된 조일수호조규, 이른바 강화도조약을 일본과 체결하고 개항하게 되었다.
개항 (開港)
일반적인 의미의 개항은 외국과 국교를 맺고 통상 관계를 갖는 일을 말하지만, 우리나라 역사에서의 개항은 근대 개항기인 1876년 2월 26일 조일수호조규(강화도조약)을 체결하여 문호를 개방하게 된 일을 말한다. 조선은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취하다가 1876년(고종 13) 2월 26일 강화도에서 체결된 조일수호조규, 이른바 강화도조약을 일본과 체결하고 개항하게 되었다.
수신사는 1876년, 조일수호조규 체결 이후부터 주일 조선공사가 파견되기 전까지 네 차례 일본에 파견한 사절단이다. 수신사란 ‘옛 우호를 닦고 신의를 두터이 하기 위해’ 파견된 사절을 의미한다. 처음에는 일본 사절 파견에 답례로 파견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통상 문제 협상, 정치적 사건 수습 등으로 사절 파견의 성격이 바뀌어 나갔다.
수신사 (修信使)
수신사는 1876년, 조일수호조규 체결 이후부터 주일 조선공사가 파견되기 전까지 네 차례 일본에 파견한 사절단이다. 수신사란 ‘옛 우호를 닦고 신의를 두터이 하기 위해’ 파견된 사절을 의미한다. 처음에는 일본 사절 파견에 답례로 파견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통상 문제 협상, 정치적 사건 수습 등으로 사절 파견의 성격이 바뀌어 나갔다.
개항장은 19세기 이후, 세계 자본주의 시장 체제 아래에서 조약을 체결하여 외국인의 내왕과 무역을 위하여 개방한 항구이다. 우리나라는 1876년, 강화도조약으로 알려진 조일수호조규 체결을 계기로 부산, 인천, 원산의 3개 항구가 개항장(開港場)이 되었으며, 이후 목포, 진남포(鎭南浦), 군산, 마산, 성진(城津), 용암포(龍巖浦) 등이 추가되었다. 개항장에는 관세를 징수하는 해관(海關)과 외국인 관련 사무를 처리하는 감리서(監理署) 등이 설치되었으며, 외국인이 거류하는 지역인 조계(租界)가 설정되었다.
개항장 (開港場)
개항장은 19세기 이후, 세계 자본주의 시장 체제 아래에서 조약을 체결하여 외국인의 내왕과 무역을 위하여 개방한 항구이다. 우리나라는 1876년, 강화도조약으로 알려진 조일수호조규 체결을 계기로 부산, 인천, 원산의 3개 항구가 개항장(開港場)이 되었으며, 이후 목포, 진남포(鎭南浦), 군산, 마산, 성진(城津), 용암포(龍巖浦) 등이 추가되었다. 개항장에는 관세를 징수하는 해관(海關)과 외국인 관련 사무를 처리하는 감리서(監理署) 등이 설치되었으며, 외국인이 거류하는 지역인 조계(租界)가 설정되었다.
1875년 9월 20일 일본군함 운요호(雲揚號)의 강화해협 불법침입으로 발생한 한일 간의 포격사건.
운요호사건 (雲揚號事件)
1875년 9월 20일 일본군함 운요호(雲揚號)의 강화해협 불법침입으로 발생한 한일 간의 포격사건.
신헌은 조선후기 금위대장, 훈련대장, 진무사 등을 역임한 무신이다. 1810년(순조 10)에 태어나 1884년(고종 21)에 사망했다. 전형적인 무관 가문 출신이지만 정약용과 김정희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강위·박규수 등 개화파 인물들과 폭넓게 교유하였다. 대원군의 신임을 받아 형조·병조·공조판서를 역임하였고, 1866년 병인양요 때에는 총융사(摠戎使)로 강화의 염창(鹽倉)을 수비하였다. 1876년 전권대관에 임명되어 강화도조약을 체결하였고, 1882년 조미수호조약을 체결하는 등 조선의 개항에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였다.
신헌 (申櫶)
신헌은 조선후기 금위대장, 훈련대장, 진무사 등을 역임한 무신이다. 1810년(순조 10)에 태어나 1884년(고종 21)에 사망했다. 전형적인 무관 가문 출신이지만 정약용과 김정희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강위·박규수 등 개화파 인물들과 폭넓게 교유하였다. 대원군의 신임을 받아 형조·병조·공조판서를 역임하였고, 1866년 병인양요 때에는 총융사(摠戎使)로 강화의 염창(鹽倉)을 수비하였다. 1876년 전권대관에 임명되어 강화도조약을 체결하였고, 1882년 조미수호조약을 체결하는 등 조선의 개항에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였다.
개항기 때, 경상도관찰사, 홍문관제학, 병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윤자승 (尹滋承)
개항기 때, 경상도관찰사, 홍문관제학, 병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학초정 및 정침은 1656년(효종 7)에 삼수당 조규가 영양군 영양읍 감천리에 지은 정자와 집이다. 원래 정자 이름은 삼수당이었으나, 소유자가 바뀌면서 학초정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지역 경관의 일부로 역사적 가치가 있다. 학초정 대청 창호의 중간 설주 등 조선 중기의 고식 기법이 남아 있고, 정침은 ㅁ자집 정면이 좌우로 돌출한 유형 중 규모가 큰 사례로 가치가 있다.
학초정 및 정침 (鶴樵亭 및 正寢)
학초정 및 정침은 1656년(효종 7)에 삼수당 조규가 영양군 영양읍 감천리에 지은 정자와 집이다. 원래 정자 이름은 삼수당이었으나, 소유자가 바뀌면서 학초정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지역 경관의 일부로 역사적 가치가 있다. 학초정 대청 창호의 중간 설주 등 조선 중기의 고식 기법이 남아 있고, 정침은 ㅁ자집 정면이 좌우로 돌출한 유형 중 규모가 큰 사례로 가치가 있다.
고려 후기에, 내시합문지후 등을 역임한 문신.
김존심 (金存心)
고려 후기에, 내시합문지후 등을 역임한 문신.
의정부에서 조선과 일본과의 외교 관계와 일본사행(使行)의 내왕을 날짜순으로 엮은 일지.
왜사일기 (倭使日記)
의정부에서 조선과 일본과의 외교 관계와 일본사행(使行)의 내왕을 날짜순으로 엮은 일지.
1892년 인천의 조선신보사 기자 아오야마 고헤이가 개항 초기 인천의 모습에 대하여 기록한 지방지.
인천사정 (仁川事情)
1892년 인천의 조선신보사 기자 아오야마 고헤이가 개항 초기 인천의 모습에 대하여 기록한 지방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