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호 ()

대중음악
인물
해방 이후 「돌아가는 삼각지」, 「안개 낀 장충단공원」, 「비내리는 명동」 등을 부른 가수.
이칭
이칭
첫 본명 배만금, 아명 배신웅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42년 4월 24일
사망 연도
1971년 11월 7일
출생지
중국 산둥성
정의
해방 이후 「돌아가는 삼각지」, 「안개 낀 장충단공원」, 「비내리는 명동」 등을 부른 가수.
개설

1960년대 전반 스탠더드 팝이 새로운 주류로 등극함으로써 쇠락했던 트로트가 1964년 이미자가 부른 「동백아가씨」로 새롭게 인기를 얻으면서 부활하였다. 이 흐름을 타고 1960년대 후반에 최고의 인기를 누린 남자 트로트 가수이자 요절 신드롬을 남긴 가수로도 유명하다.

생애와 활동사항

광복군 출신의 아버지 배국민과 어머니 김금순 밑에서 장남으로 태어나 해방 후 입국하여 동대문 밖 창신동에서 성장했다. 1955년 부친의 사망 이후 부산으로 내려가 모자원에서 생활했으나, 삼성중학교 2학년을 중퇴하고 1956년 상경하여 외삼촌 김광빈의 수하에서 대중음악을 시작하여 김광빈악단의 드럼 주자로 미8군 무대와 방송국 등에서 활동했다.

1964년에 「두메산골」, 「굿바이」로 음반을 내며 본격적으로 솔로 가수 활동을 시작했다. 1967년 신장염 발병으로 병상에서 노래한 「돌아가는 삼각지」가 히트하여 톱 가수 반열에 올랐고 「누가 울어」, 「안개 낀 장충단공원」 등이 연달아 히트하면서 1967년 방송사들이 수여하는 가수상을 휩쓸었다. 이로부터 타계 때까지 쉬지 않고 신곡을 냈고,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으며 심지어 휠체어에 의지해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1971년 「마지막 잎새」를 유작으로 남기고 타계했다.

그가 부른 초기의 대표곡은 「두메산골」이 트로트일 뿐, 「굿바이」, 「차디찬 키스」 등 초기의 작품은 재즈나 라틴음악 등이 섞인 스탠더드 팝 계열의 작품이었다. 그러나 이미자의 「동백아가씨」 이후 트로트가 부활한 흐름을 타고 트로트 곡인 「돌아가는 삼각지」가 히트하면서 그는 1960년대 후반 트로트를 대표하는 남성 가수로 자리 잡았다.

그의 가창은 일제강점기부터 1950년대까지의 트로트 가수들과 달리, 스탠더드 팝의 남자가수들이 보여준 중후한 저음을 그 특유의 바이브레이션으로 강조하고 절정부에서 애절한 고음을 구사하는 방식으로, 오기택과 남일해에서 시작하여, 남진으로 이어지는 1960년대식의 새로운 남성 트로트 창법의 중심에 서 있다. 또한 인기 절정이던 29세에 타계함으로써 요절 가수 신드롬을 불러일으키며, 오랫동안 그를 모창(模唱)한 가짜 배호 음반들이 판을 치는 등, 긴 인기를 누린 가수이다.

상훈과 추모

2003년 10월 옥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으며, 삼각지역에는 '돌아가는 삼각지 노래비', '배호 만남의 광장'이 만들어졌고, 근처 대구탕골목은 일명 '배호길'로 불리고 있다.

참고문헌

배호 공식 사이트(www.baeho.com)
집필자
이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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