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조반"
검색결과 총 8건
북한에서 개인 농민의 토지와 농기구를 그대로 두면서 영농 작업만을 공동으로 협조하는 조합.
노력협조반 (努力協助班)
북한에서 개인 농민의 토지와 농기구를 그대로 두면서 영농 작업만을 공동으로 협조하는 조합.
고려 후기에, 대간, 대언, 동지공거 등을 역임한 문신.
박형 (朴形)
고려 후기에, 대간, 대언, 동지공거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후기 밀직부사, 문하찬성사 등을 역임한 관리.
반복해 (潘福海)
고려후기 밀직부사, 문하찬성사 등을 역임한 관리.
고려 후기에, 문하평리, 우시중 등을 역임한 문신.
반익순 (潘益淳)
고려 후기에, 문하평리, 우시중 등을 역임한 문신.
염흥방은 고려 후기 좌대언, 밀직부사, 도병마사, 삼사좌사 등을 역임하며 2등 공신에 책록된 공신이자 문신이다. 1357년(공민왕 6)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좌대언, 지신사, 밀직부사, 밀직지신사, 밀직제학, 도병마사, 서성군, 삼사좌사를 역임하였다. 1387년(우왕 13)에는 염흥방의 종 이광이 전 밀직부사 조반의 토지를 강탈한 사건을 계기로 1388년(우왕 14)에 최영·이성계 등에게 지윤·임견미 등과 함께 살해되었다.
염흥방 (廉興邦)
염흥방은 고려 후기 좌대언, 밀직부사, 도병마사, 삼사좌사 등을 역임하며 2등 공신에 책록된 공신이자 문신이다. 1357년(공민왕 6)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좌대언, 지신사, 밀직부사, 밀직지신사, 밀직제학, 도병마사, 서성군, 삼사좌사를 역임하였다. 1387년(우왕 13)에는 염흥방의 종 이광이 전 밀직부사 조반의 토지를 강탈한 사건을 계기로 1388년(우왕 14)에 최영·이성계 등에게 지윤·임견미 등과 함께 살해되었다.
속명사(續命寺)는 북한 황해북도 서흥군 오운산(五雲山)에 있는 13세기 초 기록에 보이는 사찰이다. 고려시대 기록에서 보이며, 조선 초기 명나라 사신으로 다녀온 조반이 중창하였다는 설화가 전하는 사찰이다. 19세기 읍지에서도 속명사가 확인되므로 폐사되지 않고 존속되어 온 사찰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북한에 있어서 그 현황을 파악하기 어렵다.
오운산 속명사 (五雲山 續命寺)
속명사(續命寺)는 북한 황해북도 서흥군 오운산(五雲山)에 있는 13세기 초 기록에 보이는 사찰이다. 고려시대 기록에서 보이며, 조선 초기 명나라 사신으로 다녀온 조반이 중창하였다는 설화가 전하는 사찰이다. 19세기 읍지에서도 속명사가 확인되므로 폐사되지 않고 존속되어 온 사찰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북한에 있어서 그 현황을 파악하기 어렵다.
조서로는 조선 전기 태종~세종 대 이조좌랑, 사헌부 지평, 지신사 등을 지낸 문신이다. 개국공신이었던 부흥군 조반의 아들로, 태종 대 문과에 급제하면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병권 회수에 관한 상소를 올렸다가 창원으로 유배되었다가 다음 해 복직되었다. 세종 대 승정원 지신사에 임명되었으나, 강상(綱常)의 죄를 지은 사건을 일으켜 파직되어 영일에 유배되었다. 개국공신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추가 형벌을 받지는 않았다.
조서로 (趙瑞老)
조서로는 조선 전기 태종~세종 대 이조좌랑, 사헌부 지평, 지신사 등을 지낸 문신이다. 개국공신이었던 부흥군 조반의 아들로, 태종 대 문과에 급제하면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병권 회수에 관한 상소를 올렸다가 창원으로 유배되었다가 다음 해 복직되었다. 세종 대 승정원 지신사에 임명되었으나, 강상(綱常)의 죄를 지은 사건을 일으켜 파직되어 영일에 유배되었다. 개국공신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추가 형벌을 받지는 않았다.
조서안은 조선 전기 세종~세조 대 병조참판, 황해도관찰사, 개성부 유수, 지중추원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개국공신 조반의 아들이다. 세종 대 문과에 급제해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세종 대 대간으로 있으면서 양녕대군을 멀리해야 한다는 내용의 상소를 자주 올렸고, 승지 직에 제수되었다. 명나라에 사은사로 파견되었으며, 문종과 단종 즉위 후에도 도관찰사 직과 개성부유수 등에 임명되었다. 생활이 검소하였고, 사대부의 풍모를 지녔던 인물로 주변의 높은 평가를 받았던 인물이다.
조서안 (趙瑞安)
조서안은 조선 전기 세종~세조 대 병조참판, 황해도관찰사, 개성부 유수, 지중추원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개국공신 조반의 아들이다. 세종 대 문과에 급제해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세종 대 대간으로 있으면서 양녕대군을 멀리해야 한다는 내용의 상소를 자주 올렸고, 승지 직에 제수되었다. 명나라에 사은사로 파견되었으며, 문종과 단종 즉위 후에도 도관찰사 직과 개성부유수 등에 임명되었다. 생활이 검소하였고, 사대부의 풍모를 지녔던 인물로 주변의 높은 평가를 받았던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