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조선어학회_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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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10·12·14대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박일 (朴一)
제8·9·10·12·14대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김도연은 일제강점기 2·8독립운동, 조선어학회사건 등과 관련된 독립운동가, 정치인이다. 1894년 경기도 양천군 출생으로 1919년 게이오 대학 이재학부를 수료했다. 유학 시절 2·8독립운동을 주도하다 9개월 간 옥고를 치렀다. 1922년 미국 유학 후 1931년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한인사회의 발전과 해외동포 구제를 위해 노력하였다. 1942년 조선어학회사건에 연루되어 약 2년간 옥고를 치렀다. 1946년 이후 다수의 의원직을 역임하였으며, 1967년 숙환으로 사망하였다. 1991년 독립운동의 공로를 인정해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 받았다.
김도연 (金度演)
김도연은 일제강점기 2·8독립운동, 조선어학회사건 등과 관련된 독립운동가, 정치인이다. 1894년 경기도 양천군 출생으로 1919년 게이오 대학 이재학부를 수료했다. 유학 시절 2·8독립운동을 주도하다 9개월 간 옥고를 치렀다. 1922년 미국 유학 후 1931년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한인사회의 발전과 해외동포 구제를 위해 노력하였다. 1942년 조선어학회사건에 연루되어 약 2년간 옥고를 치렀다. 1946년 이후 다수의 의원직을 역임하였으며, 1967년 숙환으로 사망하였다. 1991년 독립운동의 공로를 인정해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 받았다.
김석형은 해방 이후 「리조병제사」, 「조선통사」, 「초기 조일관계 연구」 등을 저술한 역사학자이다. 1915년에 대구에서 태어나 1996년에 사망했다. 1940년 경성제국대학 조선사학과를 졸업했다.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수감되었다가 석방되었다. 해방 후 서울대학교 역사교육과 조교수를 역임했다. 공산당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1946년 월북하여 김일성종합대학 역사학부 교수로 취임했다. 북한에서 한국고대사 연구에 전념하며 북한 역사학 정립에 기여했다. 특히 주체사관에 입각하여 역사를 체계화하는 작업을 주도하였다.
김석형 (金錫亨)
김석형은 해방 이후 「리조병제사」, 「조선통사」, 「초기 조일관계 연구」 등을 저술한 역사학자이다. 1915년에 대구에서 태어나 1996년에 사망했다. 1940년 경성제국대학 조선사학과를 졸업했다.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수감되었다가 석방되었다. 해방 후 서울대학교 역사교육과 조교수를 역임했다. 공산당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1946년 월북하여 김일성종합대학 역사학부 교수로 취임했다. 북한에서 한국고대사 연구에 전념하며 북한 역사학 정립에 기여했다. 특히 주체사관에 입각하여 역사를 체계화하는 작업을 주도하였다.
안재홍은 해방 이후 민정장관,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자 사학자이다. 1891년(고종 28)에 태어나 1965년에 사망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유학중 대한민국청년외교단에 가담하여 활동하다 옥고를 치렀다. 귀국 후 언론인으로 활동하며 신간회사건, 조선어학회사건, 임시정부 활동 등으로 여러 차례 옥고를 겪었다. 광복 후 조선건국준비위원회 부위원장이 되었으나 결별하고 국민당을 결성하여 당수가 되었다. 독립촉성중앙협의회에 참가하여 이승만을 회장으로 추대했고 과도입법의원, 미군정청 민정장관을 역임했다. 1950년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나 납북되었다.
안재홍 (安在鴻)
안재홍은 해방 이후 민정장관,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자 사학자이다. 1891년(고종 28)에 태어나 1965년에 사망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유학중 대한민국청년외교단에 가담하여 활동하다 옥고를 치렀다. 귀국 후 언론인으로 활동하며 신간회사건, 조선어학회사건, 임시정부 활동 등으로 여러 차례 옥고를 겪었다. 광복 후 조선건국준비위원회 부위원장이 되었으나 결별하고 국민당을 결성하여 당수가 되었다. 독립촉성중앙협의회에 참가하여 이승만을 회장으로 추대했고 과도입법의원, 미군정청 민정장관을 역임했다. 1950년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나 납북되었다.
조지훈(趙芝薰)은 해방 이후 『청록집』, 『풀잎단장』, 『역사앞에서』 등을 저술한 시인이자 국문학자이다. 1939년 잡지 『문장(文章)』에 추천을 받아 「고풍의상」, 「승무」 등을 발표하며 시인으로 등단하였고, 1942년에 조선어학회 『큰사전』 편찬위원이 되었으며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검거되어 심문을 받고 해방이 될 때까지 고향에서 지냈다. 또한 1947년부터 고려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초대 소장으로 『한국문화사대계(韓國文化史大系)』 제6권을 기획 및 출간하는 등 한국학의 기틀을 마련한 국문학자이다.
조지훈 (趙芝薰)
조지훈(趙芝薰)은 해방 이후 『청록집』, 『풀잎단장』, 『역사앞에서』 등을 저술한 시인이자 국문학자이다. 1939년 잡지 『문장(文章)』에 추천을 받아 「고풍의상」, 「승무」 등을 발표하며 시인으로 등단하였고, 1942년에 조선어학회 『큰사전』 편찬위원이 되었으며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검거되어 심문을 받고 해방이 될 때까지 고향에서 지냈다. 또한 1947년부터 고려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초대 소장으로 『한국문화사대계(韓國文化史大系)』 제6권을 기획 및 출간하는 등 한국학의 기틀을 마련한 국문학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