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친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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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일본 동경에서 조직되었던 유학생 단체.
낙동친목회 (洛東親睦會)
1906년 일본 동경에서 조직되었던 유학생 단체.
1895년 일본 동경에서 조직되었던 유학생 단체.
대조선인일본유학생친목회 (大朝鮮人日本留學生親睦會)
1895년 일본 동경에서 조직되었던 유학생 단체.
대한흥학회는 1909년 1월 일본에서 설립된 유학생 단체이다. 1905년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는 한국 유학생 수가 급증하면서 태극학회(太極學會), 공수학회(共修學會), 낙동친목회(洛東親睦會), 유학생구락부(留學生俱樂部), 호남학회(湖南學會), 광무학회(光武學會) 등 다수의 유학생 단체가 설립되었다. 이들 단체 중 일부가 통합하여 1908년에 대한학회(大韓學會), 다시 1909년 1월에 대한학회, 태극학회, 공수학회가 통합하여 설립된 단체이다.
대한흥학회 (大韓興學會)
대한흥학회는 1909년 1월 일본에서 설립된 유학생 단체이다. 1905년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는 한국 유학생 수가 급증하면서 태극학회(太極學會), 공수학회(共修學會), 낙동친목회(洛東親睦會), 유학생구락부(留學生俱樂部), 호남학회(湖南學會), 광무학회(光武學會) 등 다수의 유학생 단체가 설립되었다. 이들 단체 중 일부가 통합하여 1908년에 대한학회(大韓學會), 다시 1909년 1월에 대한학회, 태극학회, 공수학회가 통합하여 설립된 단체이다.
일제강점기의 친일단체.
각파유지연맹 (各派有志聯盟)
일제강점기의 친일단체.
공진회는 1906년 12월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조직된 계몽 단체이다. 1906년 12월 2일 민찬호가 이내수, 임준호, 임정수 등과 함께 하와이 동포의 자치, 민족의식 고취, 생활 개선, 조선 문화 수호 등을 목적으로 조직하였으며, 기관지 『공진회보』를 발행하였다.
공진회 (共進會)
공진회는 1906년 12월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조직된 계몽 단체이다. 1906년 12월 2일 민찬호가 이내수, 임준호, 임정수 등과 함께 하와이 동포의 자치, 민족의식 고취, 생활 개선, 조선 문화 수호 등을 목적으로 조직하였으며, 기관지 『공진회보』를 발행하였다.
상해대한인거류민단은 1920년 중국 상하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산하에 조직된 한인의 자치기관이다. 1918년에 결성된 상해고려교민친목회(上海高麗僑民親睦會)가 임시정부의 산하 조직으로 편제되면서 상해대한인민단(上海大韓人民團)으로 개칭하였으며, 1920년 1월 다시 상해대한인거류민단(上海大韓人居留民團)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임시정부의 외곽 단체로 상하이 교민의 생활을 보호하고 임시정부의 기반 조직으로서 기능을 수행하였다. 의경대(義警隊)를 조직하여 운영하였고, 인성학교(仁成學校)를 맡아 운영하여 독립운동가 자제들을 교육시켰다.
상해대한인거류민단 (上海大韓人居留民團)
상해대한인거류민단은 1920년 중국 상하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산하에 조직된 한인의 자치기관이다. 1918년에 결성된 상해고려교민친목회(上海高麗僑民親睦會)가 임시정부의 산하 조직으로 편제되면서 상해대한인민단(上海大韓人民團)으로 개칭하였으며, 1920년 1월 다시 상해대한인거류민단(上海大韓人居留民團)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임시정부의 외곽 단체로 상하이 교민의 생활을 보호하고 임시정부의 기반 조직으로서 기능을 수행하였다. 의경대(義警隊)를 조직하여 운영하였고, 인성학교(仁成學校)를 맡아 운영하여 독립운동가 자제들을 교육시켰다.
1920년에, 조선일보사에서 신문명 진보주의의 선전을 목적으로 창간한 일간 신문.
조선일보 (朝鮮日報)
1920년에, 조선일보사에서 신문명 진보주의의 선전을 목적으로 창간한 일간 신문.
서울특별시 중구 태평로 1가에 있는 일간신문사.
조선일보사 (朝鮮日報社)
서울특별시 중구 태평로 1가에 있는 일간신문사.
조소앙은 일제강점기 대한독립의군부 부주석, 임시정부 국무위원, 한국독립당 부위원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사상가이다. 1887년(고종 24)에 태어나 1958년에 사망했다. 성균관 수료 후 일본에 유학했다. 1913년 중국으로 망명한 뒤 대한독립의군부를 조직하여 부주석에 취임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했고, 김구 등과 한국독립당을 창당했다. 정치·경제·교육의 균등을 골자로 한 삼균주의를 제창하여 임시정부 정강정책의 바탕으로 삼았다. 광복 후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주장했고 1950년 총선에서 전국최다득표자로 선출되었으나 한국전쟁 중 납북되었다.
조소앙 (趙素昻)
조소앙은 일제강점기 대한독립의군부 부주석, 임시정부 국무위원, 한국독립당 부위원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사상가이다. 1887년(고종 24)에 태어나 1958년에 사망했다. 성균관 수료 후 일본에 유학했다. 1913년 중국으로 망명한 뒤 대한독립의군부를 조직하여 부주석에 취임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했고, 김구 등과 한국독립당을 창당했다. 정치·경제·교육의 균등을 골자로 한 삼균주의를 제창하여 임시정부 정강정책의 바탕으로 삼았다. 광복 후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주장했고 1950년 총선에서 전국최다득표자로 선출되었으나 한국전쟁 중 납북되었다.
한중호조사(韓中互助社)는 1921년 중국 한커우[漢口], 창사[長沙], 안후이[安徽], 충칭[重慶], 윈난[雲南], 상하이[上海] 등지에서 조직된 독립운동 지원단체이다. 일명 중한호조사(中韓互助社)라고도 하며, 지역 언론 등을 통한 항일선전 활동과 워싱턴회의에서 일본의 주장에 문제제기를 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한중호조사 (韓中互助社)
한중호조사(韓中互助社)는 1921년 중국 한커우[漢口], 창사[長沙], 안후이[安徽], 충칭[重慶], 윈난[雲南], 상하이[上海] 등지에서 조직된 독립운동 지원단체이다. 일명 중한호조사(中韓互助社)라고도 하며, 지역 언론 등을 통한 항일선전 활동과 워싱턴회의에서 일본의 주장에 문제제기를 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제국청년회는 1898년 일본에 파견된 관비 유학생을 중심으로 조직된 친목 단체이다. 1895년 4월 조직되었던 대조선인일본유학생친목회가 1898년 9월 제국청년회로 재결성된 것이다. 연설회, 토론회를 개최하였고, 『제국청년회회보』를 발간하였다. 회원 상호간의 친목과 상호부조를 도모하는 활동을 하다 1903년 2월 정부의 일본 관비유학생 소환령으로 대부분의 회원이 귀국한 뒤 해산하였다.
제국청년회 (第國靑年會)
제국청년회는 1898년 일본에 파견된 관비 유학생을 중심으로 조직된 친목 단체이다. 1895년 4월 조직되었던 대조선인일본유학생친목회가 1898년 9월 제국청년회로 재결성된 것이다. 연설회, 토론회를 개최하였고, 『제국청년회회보』를 발간하였다. 회원 상호간의 친목과 상호부조를 도모하는 활동을 하다 1903년 2월 정부의 일본 관비유학생 소환령으로 대부분의 회원이 귀국한 뒤 해산하였다.
1909년 10월 경상남도 동래에서 조직되어 만주까지 확대된 항일 비밀결사조직.
대동청년당 (大東靑年黨)
1909년 10월 경상남도 동래에서 조직되어 만주까지 확대된 항일 비밀결사조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