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청년회는 1898년 일본에 파견된 관비 유학생을 중심으로 조직된 친목 단체이다. 1895년 4월 조직되었던 대조선인일본유학생친목회가 1898년 9월 제국청년회로 재결성된 것이다. 연설회, 토론회를 개최하였고, 『제국청년회회보』를 발간하였다. 회원 상호간의 친목과 상호부조를 도모하는 활동을 하다 1903년 2월 정부의 일본 관비유학생 소환령으로 대부분의 회원이 귀국한 뒤 해산하였다.
해외 유학은 선진 문명과 문화를 수용하는 방안이었다. 한국 정부는 1895년에 일본에 관비유학생을 파견하여 게이오의숙 등에 입학하게 했다. 1915년 7월에 유학생학우회에서 발행했던 『 학지광』 6호에 따르면 유학의 목적은 “문명을 수입하여 인민을 발천(發闡)하는 것”에 있었다. 그리고 이를 위해 1895년 4월에 재일 조선인 유학생 단체인 대조선인일본유학생친목회가 조직되었다. 이 단체가 회원 상호간의 불화로 인해 1898년 9월에 제국청년회로 재결성되었다.
『학지광』 6호에 따르면, 기존의 유학생 단체가 1898년 2월경 “사소한 감정으로 분쟁을 일으켜 탈퇴자가 많아 거의 해산한 지경에” 이르렀다고 보았다. 그리고 김기장(金基璋) 등이 주도하여 같은 해 9월 10일에 유학생 일동이 동경청년회관에 모여 제국청년회가 조직되었다.
김기장은 대한제국 중심의 근대화 정책을 추진했던 이용익의 ‘심복’과 같은 존재였다. 그는 1905년에 설립된 보성전문학교 설립과정에 참여했으며, 1909년 4월 대한흥학회 주최 운동회에 내빈으로 참석하였다.
제국청년회는 연설회 · 토론회를 개최하였고, 잡지 『제국청년회회보(帝國淸年會會報)』를 발간하였다. 제국청년회의 조직제도를 보면 총무, 회계, 문부(文部), 교섭의 4부로 설립되었다. 회장의 명칭은 사용하지 않다가, 1899년 8월 17일 총회에서 신구제도를 참작하여 회장, 부회장을 두었다.
이 단체는 회원 상호간의 친목과 상호부조를 도모하는 활동을 하다가, 1903년 2월 정부의 일본 관비 유학생 소환령으로 대부분의 회원이 귀국한 뒤 해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