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토광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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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황해남도 연안군에 있는 초기국가시대 고조선의 세형동검·좁은놋창끝 등이 출토된 널무덤. 토광묘.
오현리 토광묘 (梧峴里 土壙墓)
북한 황해남도 연안군에 있는 초기국가시대 고조선의 세형동검·좁은놋창끝 등이 출토된 널무덤. 토광묘.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아산면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널무덤·독무덤·돌널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고창 중월리 고분군 (高敞 中月里 古墳群)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아산면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널무덤·독무덤·돌널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충청남도 공주시 장기면에 있는 철기시대 이후 널무덤·독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공주 하봉리 유적 (公州 下鳳里 遺蹟)
충청남도 공주시 장기면에 있는 철기시대 이후 널무덤·독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금동제환·철제도자조각 등이 출토된 널무덤. 토광묘.
부여 신리 고분 (扶餘 新里 古墳)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금동제환·철제도자조각 등이 출토된 널무덤. 토광묘.
고분은 사람의 시신을 매장한 시설물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후기 구석기시대에 인간의 지능 발달과 함께 무덤의 기념물화가 시작되면서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양한 형식의 무덤들이 만들어졌다. 무덤 중에서도 고대국가 형성 이후의 무덤을 고분이라 하여 역사를 연구하고 재구성하는 학술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고분에 대한 연구는 묘지와 그 분포, 봉토 및 묘역 시설, 매장주체시설 및 매장법, 껴묻거리(부장품) 등 4가지 요소로 나누어 진행되고 있다.
고분 (古墳)
고분은 사람의 시신을 매장한 시설물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후기 구석기시대에 인간의 지능 발달과 함께 무덤의 기념물화가 시작되면서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양한 형식의 무덤들이 만들어졌다. 무덤 중에서도 고대국가 형성 이후의 무덤을 고분이라 하여 역사를 연구하고 재구성하는 학술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고분에 대한 연구는 묘지와 그 분포, 봉토 및 묘역 시설, 매장주체시설 및 매장법, 껴묻거리(부장품) 등 4가지 요소로 나누어 진행되고 있다.
요령 정가와자 유적은 중국 요령성 심양시 정가와자에 있는 청동기시대 청동단검·쌍뉴경 등이 출토된 널무덤이다. 이 유적은 정씨 성을 가진 사람이 오래전부터 살았다고 하여 붙여진 정가와자 마을에 위치한다. 무덤 규모나 출토 유물로 보아 무덤의 주인공은 선양 일대 요양 평원 지역을 관할하던 고조선의 최고지배자 또는 예맥계 정치집단 지배층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유적과 관련하여 중요한 유물은 비파형 동검이다. 고인돌 분포지역과의 일치 및 서북한 세형동검 문화와의 연계성으로 고조선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요령 정가와자 유적 (遼寧 鄭家窪子 遺蹟)
요령 정가와자 유적은 중국 요령성 심양시 정가와자에 있는 청동기시대 청동단검·쌍뉴경 등이 출토된 널무덤이다. 이 유적은 정씨 성을 가진 사람이 오래전부터 살았다고 하여 붙여진 정가와자 마을에 위치한다. 무덤 규모나 출토 유물로 보아 무덤의 주인공은 선양 일대 요양 평원 지역을 관할하던 고조선의 최고지배자 또는 예맥계 정치집단 지배층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유적과 관련하여 중요한 유물은 비파형 동검이다. 고인돌 분포지역과의 일치 및 서북한 세형동검 문화와의 연계성으로 고조선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전주 여의동 유적은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덕진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움무덤[토광묘]이다. 집자리 1기, 돌뚜껑움무덤 3기, 유물포함층이 발굴되었으며 백제시대의 돌방무덤도 일부 확인되었다. 움무덤은 타원형 움을 파고 다시 장방형 무덤구덩을 설치하였고 무덤구덩 벽면에 깬돌을 축석하지 않고 때붙였다. 붉은간토기와 민무늬토기가 다량 출토되었으며, 간돌검, 돌화살촉, 대팻날도끼, 돌끌, 삼각형돌칼 등 다양한 석기류가 출토되었다. 여러꼭지거친무늬거울, 청동도끼, 청동끌도 출토되었다. 대전 괴정동 유적, 청원 비하리, 아산 남성리, 부여 구봉리 등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전주 여의동 유적 (全州 如意洞 遺蹟)
전주 여의동 유적은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덕진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움무덤[토광묘]이다. 집자리 1기, 돌뚜껑움무덤 3기, 유물포함층이 발굴되었으며 백제시대의 돌방무덤도 일부 확인되었다. 움무덤은 타원형 움을 파고 다시 장방형 무덤구덩을 설치하였고 무덤구덩 벽면에 깬돌을 축석하지 않고 때붙였다. 붉은간토기와 민무늬토기가 다량 출토되었으며, 간돌검, 돌화살촉, 대팻날도끼, 돌끌, 삼각형돌칼 등 다양한 석기류가 출토되었다. 여러꼭지거친무늬거울, 청동도끼, 청동끌도 출토되었다. 대전 괴정동 유적, 청원 비하리, 아산 남성리, 부여 구봉리 등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창원 덕천리 지석묘군은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에 있는 청동기시대 남방식 고인돌군이다. 동남향으로 경사져 내려오는 구릉의 사면에 지석묘 3기, 석관 또는 석곽묘 12기, 석개토광묘 5기 등이 확인되었다. 제1호 지석묘는 지금까지 발견된 청동기 분묘 가운데 가장 크고 ‘ㄱ’자 모양의 묘역이 조성되어 있다. 제2호와 제5호 지석묘는 외형이 봉분과 같이 불룩하게 성토되어 있거나 개석을 여러 겹으로 덮어져 있다. 석곽묘와 석개토광묘에서 화살촉, 대롱옥〔管玉〕, 석검, 단도마연토기(丹塗磨硏土器), 재가공한 비파형동검과 각종의 무문토기가 출토되었다.
창원 덕천리 지석묘군 (昌原 德川里 支石墓群)
창원 덕천리 지석묘군은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에 있는 청동기시대 남방식 고인돌군이다. 동남향으로 경사져 내려오는 구릉의 사면에 지석묘 3기, 석관 또는 석곽묘 12기, 석개토광묘 5기 등이 확인되었다. 제1호 지석묘는 지금까지 발견된 청동기 분묘 가운데 가장 크고 ‘ㄱ’자 모양의 묘역이 조성되어 있다. 제2호와 제5호 지석묘는 외형이 봉분과 같이 불룩하게 성토되어 있거나 개석을 여러 겹으로 덮어져 있다. 석곽묘와 석개토광묘에서 화살촉, 대롱옥〔管玉〕, 석검, 단도마연토기(丹塗磨硏土器), 재가공한 비파형동검과 각종의 무문토기가 출토되었다.
서산 부장리 고분군은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집터와 돌덧널무덤 관련 복합유적이다. 2004년 아파트 부지를 조성하기 위한 사전 문화재조사 과정에서 확인되었다. 청동시시대의 주거지와 백제시대의 분구묘를 비롯하여 조선시대 토광묘 등 260여 기가 출토되었다. 특히 백제의 분구묘와 주거지의 공간 배치가 구분되어 있어서 당시 묘장 풍습과 취락 구조를 연구할 수 있는 자료이다. 또한 5호 분구묘에서 출토된 금동관과 철제 초두는 최고 지배자의 무덤에서만 발굴되는 것으로 지방 세력과 중앙 세력의 정치적 관계 등 백제사 연구에 있어서 그 학술적 가치가 크다.
서산 부장리 고분군 (瑞山 副長里 古墳群)
서산 부장리 고분군은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집터와 돌덧널무덤 관련 복합유적이다. 2004년 아파트 부지를 조성하기 위한 사전 문화재조사 과정에서 확인되었다. 청동시시대의 주거지와 백제시대의 분구묘를 비롯하여 조선시대 토광묘 등 260여 기가 출토되었다. 특히 백제의 분구묘와 주거지의 공간 배치가 구분되어 있어서 당시 묘장 풍습과 취락 구조를 연구할 수 있는 자료이다. 또한 5호 분구묘에서 출토된 금동관과 철제 초두는 최고 지배자의 무덤에서만 발굴되는 것으로 지방 세력과 중앙 세력의 정치적 관계 등 백제사 연구에 있어서 그 학술적 가치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