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에 주민이 식목하기 위해 구덩이를 파던 중 움무덤의 뚜껑돌[蓋石]이 드러나면서 알려졌고 이에 대한 수습과 함께 1988년 전주대학교박물관에 의해 추가 조사되었다. 이 유적에서 집자리[住居址] 1기, 돌뚜껑움무덤[石蓋土壙墓] 3기, 유물포함층이 발굴되었다. 그 밖에 백제시대의 돌방무덤도 일부 확인되었다.
움무덤은 모두 3기가 조사되었다. 1호는 해발 50.1m의 구릉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다. 매장주체부(埋葬主體部)는 2단의 움을 파고 축조하였는데, 길이 295㎝, 너비 255㎝의 말각장방형 움을 파 내려간 다음 이와는 대각선이 되도록 다시 동서방향으로 길이 287㎝, 너비 115㎝의 내광을 약 40㎝까지 굴착하여 무덤구덩을 설치하였다. 무덤방[墓室]은 길이 218㎝, 너비 47㎝, 깊이 40㎝의 크기이고 말각장방형을 띤다. 덮개돌[蓋石]은 외광의 윤곽에 맞추어 내광을 덮고 있는데, 모두 2매로 구성되어 있다.
신고된 유물은 여러꼭지거친무늬거울[多瞿粗文鏡] 2점, 청동도끼[銅斧] 1점, 청동끌[銅鑿] 1점이며, 추가 조사시에 검은간토기[黑色磨硏土器] 1점이 출토되었다. 여러꼭지거울 1점은 전체길이 15.3㎝로 주연(周緣)은 다소 정연하지 않은 반원형 단면을 이룬다. 문양은 2구(二區)로 나누어 장식하였다. 외구(外區)는 폭 1.5㎝의 방사상거치문대(放射狀鋸齒文帶)를 두르고, 내구(內區)는 3조의 종선(縱線)으로 5열 종구(縱區)로 나누고 각각 톱니무늬[鋸齒文]를 새겼는데, 내외구 각각 삼각톱니무늬를 기본단위로 한다. 다른 거울 1점은 보다 소형으로 지름 13.2㎝이며, 주연부는 사다리꼴 단면을 이룬다. 문양은 이른바 별모양무늬거울[星形文鏡]로 중심에 5각형 내구를 설정하고, 외구에는 각변을 따라서 삼각형을 방사상으로 그려 별모양을 만들었다. 그리고 외구와 내구 사이를 평행집선문으로 메웠다. 청동도끼는 흑색 광택이 뚜렷한 소형 부채모양도끼[扇形銅斧]로 길이가 5.8㎝ 정도이며 자루구멍부분[柄部]은 2조의 돌대를 두르고, 한쪽 면 한가운데에 구멍이 있다. 환부는 부채모양으로 외반을 이룬다. 청동끌은 세장형으로 자루구멍부분에 2중 돌대가 있고 날 끝 부분이 결실되었으며 근부(根部)에 공구(尻口)가 뚫려 있다. 현재길이는 6.8㎝이다.
2호는 1호에서 서북쪽으로 42m 떨어진 능선상에 위치한다. 표토층에서 70㎝ 정도의 아래에서 자연판돌[自然板石]5매를 이용한 뚜껑돌이 노출되었다. 장축이 서남 240˚ 방향이며 동서 양측의 단벽을 둥글게 굴착하였다. 바닥면의 크기는 길이 170㎝, 너비 840㎝, 높이 60㎝이다. 현 지면으로부터의 바닥까지의 깊이는 95㎝이며, 무덤구덩 바닥면의 폭은 70㎝로 넓게 조성되었다. 바닥에는 민무늬토기편을 깔았으며 내부에서 간돌검[磨製石劍]1점이 출토되었다.
3호는 2호에서 북쪽으로 4m의 간격을 두고 위치한다. 상부가 대부분 유실되었으며 무덤구덩은 생토층을 굴착하고 조성되어 있는데, 장축 서남 230° 방향이며 크기는 길이 173㎝, 너비 60㎝, 깊이 20㎝이다. 바닥에는 편평한 잡석을 깔았다.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이들 움무덤 중 1호와 2호는 이단돌뚜껑움무덤[二段石蓋土壙墓], 3호는 일단돌뚜껑움무덤으로 구분하여 부르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유물포함층에서는 붉은간토기[丹塗磨硏土器]와 민무늬토기가 다량 출토되었으며, 간돌검, 돌화살촉[石鏃], 대팻날도끼[扁平偏刃石斧], 돌끌[石鑿], 삼각형돌칼[三角形石刀]등 송국리형문화와 밀접한 다양한 석기류가 출토되었다. 또한 다양한 뗀석기[打製石器]가 다수 확인되었는데, 주로 밭농사 연모의 조합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가래모양 석기(石嵩形石器) 3점, 갈판[碾石] 3점, 갈돌[耉石棒] 1점, 긁개[搔器] 4점, 숫돌[砥石] 2점 등이다.
집자리는 1호 움무덤에서 동북쪽으로 200m 떨어진 지점인 해발 50.1m의 동남향한 대지상에서 확인되었다. 평면 타원형이며 크기는 길이 680㎝, 너비 637㎝, 깊이 26㎝이다. 내부 중앙에 타원형구덩이[娥圓形竪穴]와 그 바깥쪽에 4개의 기둥구멍[柱穴]이 거의 정방형으로 배치된 송국리형(松菊里型)이다. 동남벽 벽선에서 약 60㎝ 안으로 작은 4개의 기둥구멍이 확인되었고, 일부 벽면에는 길이가 약 300㎝에 이르는 벽도랑[壁溝]이 있다. 바닥은 불다짐처리 하였다. 유물은 민무늬토기[無文土器]편과 갈판[碾石] 1점, 자귀[手斧] 1점 등이 출토되었다.
움무덤은 구조나 유물의 성격에 있어서 대전 괴정동 유적과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고 있다. 첫째, 움무덤을 비교해 보면 지표 하에 먼저 타원형 움을 파고 다시 장방형 무덤구덩을 설치한 점, 무덤구덩 벽면에 깬돌[割石]을 축석하지 않고 때려붙이는 이른바 ‘장착(張着)’수법을 쓴 점, 그리고 규모가 비슷한 점 등 여러 측면에서 유사한 성격을 띠고 있다. 둘째로 주목되는 유물은 검은간토기이다. 이 토기는 괴정동 뿐만 아니라 청원 비하리, 아산 남성리, 부여 구봉리 등에서 출토된 바 있다. 셋째, 두 유적이 모두 거친무늬거울의 범주에 속하는 여러꼭지거울 2면씩이 공반하고 있는 점도 동일한데, 등면 문양에 있어서도 같은 계열에 속한다. 마지막으로 소형 부채모양동도끼와 청동끌은 괴정동에서는 볼 수 없었으나 아산 남성리, 예산 동서리, 부여 구봉리 등에서 같은 형태의 청동도끼가 나왔고, 청동끌도 부여 구봉리, 대전 탄방동 등 금강유역권에서 볼 수 있는 유형이다. 이와 달리 2호에서는 부여 송국리 유적의 돌널무덤[石棺墓]에서 출토된 간돌검과 민무늬토기를 포함하고 있어 동일지역에서 서로 대조적인 성격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