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패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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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비·패좌의 난은 1202년(신종 5) 경주에서 이비·패좌가 주동이 되어 일어난 반란이다. 이 난은 경주 관내 농민이 신라부흥 운동을 표방하며 일으킨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최충헌의 강력한 진압책에 대항하고자 일어났다. 이비(利備)는 경주토호로 신라부흥의지가 있었던 사람이고, 패좌(?佐)는 최충헌정권의 수탈체제에 저항한 농민군 지도자였다. 이들은 3군을 편성해 스스로 나라를 바로잡는 군대인 정국병마(正國兵馬)라 칭하면서 관군에 대항했으나 실패하였다. 이 난은 일관된 계획하에 조직적으로 편성되어 뚜렷한 목적의식을 지닌 정치적 반란이라는 점에 큰 의의가 있다.
이비·패좌의 난 (利備·孛佐의 亂)
이비·패좌의 난은 1202년(신종 5) 경주에서 이비·패좌가 주동이 되어 일어난 반란이다. 이 난은 경주 관내 농민이 신라부흥 운동을 표방하며 일으킨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최충헌의 강력한 진압책에 대항하고자 일어났다. 이비(利備)는 경주토호로 신라부흥의지가 있었던 사람이고, 패좌(?佐)는 최충헌정권의 수탈체제에 저항한 농민군 지도자였다. 이들은 3군을 편성해 스스로 나라를 바로잡는 군대인 정국병마(正國兵馬)라 칭하면서 관군에 대항했으나 실패하였다. 이 난은 일관된 계획하에 조직적으로 편성되어 뚜렷한 목적의식을 지닌 정치적 반란이라는 점에 큰 의의가 있다.
동경민란은 1190년(명종 20) 이후 동경(東京, 지금의 경상북도 경주)을 중심으로 일어난 저항이다. 이 저항 이후에도 동경에서는 여러 차례의 저항이 일어났고, 그 영향은 경상도 전역으로 확장되었다. 그 가운데 저항 세력의 연대감을 끌어내기 위해 ‘신라부흥운동(新羅復興運動)’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이들 저항은 최충헌 정권의 적극적인 진압으로 비록 실패했지만, 무신정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남아 있게 되었다.
동경민란 (東京民亂)
동경민란은 1190년(명종 20) 이후 동경(東京, 지금의 경상북도 경주)을 중심으로 일어난 저항이다. 이 저항 이후에도 동경에서는 여러 차례의 저항이 일어났고, 그 영향은 경상도 전역으로 확장되었다. 그 가운데 저항 세력의 연대감을 끌어내기 위해 ‘신라부흥운동(新羅復興運動)’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이들 저항은 최충헌 정권의 적극적인 진압으로 비록 실패했지만, 무신정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남아 있게 되었다.
고려후기 대장군, 지문하성사 등을 역임한 관리. 무신.
정언진 (丁彦眞)
고려후기 대장군, 지문하성사 등을 역임한 관리. 무신.
고려후기 대장군으로 초토처치병마좌도사를 역임한 관리. 무신.
최광의 (崔匡義)
고려후기 대장군으로 초토처치병마좌도사를 역임한 관리. 무신.
고려 후기에, 장군, 대장군, 초토처치병마중도사 등을 역임한 문신.
김척후 (金陟侯)
고려 후기에, 장군, 대장군, 초토처치병마중도사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 후기에, 어사중승, 섭대장군, 초토처치병마우도사 등을 역임한 무신.
강순의 (康純義)
고려 후기에, 어사중승, 섭대장군, 초토처치병마우도사 등을 역임한 무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