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한인애국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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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애국단원 편지·이력서 및 봉투는 1932년 작성한 한인애국단 단원들의 편지 및 이력서이다. 일제 요인의 암살을 목적으로 비밀리에 조직한 한인애국단 단원들의 편지 및 이력서인데, 편지는 1932년의 조선 총독과 일본 관동군 사령관 등의 암살 거사 준비 과정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력서는 단원 3인의 신상 정보가 수록되어 있다. 비밀리에 전개되었던 한인애국단의 의거 추진 실태와 단원의 신상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라는 점에서 독립운동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한인애국단원 편지·이력서 및 봉투 (韓人愛國團員 便紙·履歷書 및 封套)
한인애국단원 편지·이력서 및 봉투는 1932년 작성한 한인애국단 단원들의 편지 및 이력서이다. 일제 요인의 암살을 목적으로 비밀리에 조직한 한인애국단 단원들의 편지 및 이력서인데, 편지는 1932년의 조선 총독과 일본 관동군 사령관 등의 암살 거사 준비 과정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력서는 단원 3인의 신상 정보가 수록되어 있다. 비밀리에 전개되었던 한인애국단의 의거 추진 실태와 단원의 신상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라는 점에서 독립운동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1919년부터 1945년까지 27년간 중국에서 민주공화제의 독립 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주권 자치를 실현하였던 임시정부이다.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하이에 수립된 이후 1945년 11월 김구 등이 환국할 때까지 민주공화제의 독립 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주권 자치를 실현하였다. 임시정부 수립일은 기념일 제정 시에는 4월 13일이라고 여겨 왔으나 근거 자료의 확대와 이에 대한 역사학적 분석에 따라 2019년부터 4월 11일로 바로잡게 되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大韓民國 臨時政府)
대한민국임시정부는 1919년부터 1945년까지 27년간 중국에서 민주공화제의 독립 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주권 자치를 실현하였던 임시정부이다.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하이에 수립된 이후 1945년 11월 김구 등이 환국할 때까지 민주공화제의 독립 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주권 자치를 실현하였다. 임시정부 수립일은 기념일 제정 시에는 4월 13일이라고 여겨 왔으나 근거 자료의 확대와 이에 대한 역사학적 분석에 따라 2019년부터 4월 11일로 바로잡게 되었다.
노종균은 일제강점기 한인애국단원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 경무국장인 김구 휘하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비서장인 김립을 처단하고, 한인애국단 결성과 운영에 참여하는 등 활발한 특무 활동을 전개하였다. 중국육군군관학교 낙양분교에 설치된 한인특별반 학생들의 관리를 맡았다.
노종균 (盧鍾均)
노종균은 일제강점기 한인애국단원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 경무국장인 김구 휘하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비서장인 김립을 처단하고, 한인애국단 결성과 운영에 참여하는 등 활발한 특무 활동을 전개하였다. 중국육군군관학교 낙양분교에 설치된 한인특별반 학생들의 관리를 맡았다.
김홍일은 일제강점기 1·8 일왕저격, 4·29 상해의거 당시의 독립운동가이다. 군인이자 정치인이다. 1898년에 태어나 1980년에 사망했다. 신천경신학교 교사 재직 중 항일단체 가담 혐의로 심한 고문을 받고 풀려난 뒤 중국으로 망명했다. 1920년 중국 육군강무학교를 졸업하고 한국독립군에 가담하여 항일활동을 벌였다. 김구의 요청으로 1932년 이봉창의 1·8 일왕저격 및 윤봉길의 4·29 상해의거용 폭탄을 제작했다. 해방 후 귀국하여 육군사관학교 교장으로서 한국군 초기 설립에 공을 세웠고, 이후 국회의원, 정당 당수 등 정치가로 활동했다.
김홍일 (金弘壹)
김홍일은 일제강점기 1·8 일왕저격, 4·29 상해의거 당시의 독립운동가이다. 군인이자 정치인이다. 1898년에 태어나 1980년에 사망했다. 신천경신학교 교사 재직 중 항일단체 가담 혐의로 심한 고문을 받고 풀려난 뒤 중국으로 망명했다. 1920년 중국 육군강무학교를 졸업하고 한국독립군에 가담하여 항일활동을 벌였다. 김구의 요청으로 1932년 이봉창의 1·8 일왕저격 및 윤봉길의 4·29 상해의거용 폭탄을 제작했다. 해방 후 귀국하여 육군사관학교 교장으로서 한국군 초기 설립에 공을 세웠고, 이후 국회의원, 정당 당수 등 정치가로 활동했다.
한중항일대동맹은 1932년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중국의 실지 회복과 한국의 독립을 목적으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이다. 김구(金九)가 주도하는 한인애국단(韓人愛國團)의 특무활동을 비밀리에 후원하고, 의거 후 사후대책 마련 과정에도 자금을 지원해 주었다.
한중항일대동맹 (韓中抗日大同盟)
한중항일대동맹은 1932년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중국의 실지 회복과 한국의 독립을 목적으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이다. 김구(金九)가 주도하는 한인애국단(韓人愛國團)의 특무활동을 비밀리에 후원하고, 의거 후 사후대책 마련 과정에도 자금을 지원해 주었다.
일제강점기 때, 하와이에서 대한인국민회 총회장,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의사부 위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조병요 (趙炳堯)
일제강점기 때, 하와이에서 대한인국민회 총회장,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의사부 위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