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해인사_국일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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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언(煕彥, 1561~1647)은 부휴 선수의 제자이며 벽암 각성과 친분이 두터웠던 승려이다. 큰스님으로 자신을 떠받들면 존경받을 만한 행적이 없다며 거절하였지만, 간절하게 법을 구하는 사람에게는 ‘법성원융’의 뜻을 자세히 설명하여 주었다. 희언은 법주사와 해인사에서 수행했다. 해인사 국일암 옆에는 부휴 선수, 고한 희언, 벽암 각성의 승탑 세 개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
희언 (熙彦)
희언(煕彥, 1561~1647)은 부휴 선수의 제자이며 벽암 각성과 친분이 두터웠던 승려이다. 큰스님으로 자신을 떠받들면 존경받을 만한 행적이 없다며 거절하였지만, 간절하게 법을 구하는 사람에게는 ‘법성원융’의 뜻을 자세히 설명하여 주었다. 희언은 법주사와 해인사에서 수행했다. 해인사 국일암 옆에는 부휴 선수, 고한 희언, 벽암 각성의 승탑 세 개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
해인사 국일암 벽암선사 진영은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소재 해인사 산내 암자인 국일암에 있는 벽암선사의 진영이다. 벽암은 1588년에 출가하여 임진왜란 때 승병으로 이름을 날렸고 병자호란 때는 승병장을 맡았다. 그 후 송광사, 해인사 등으로 옮겨 다니며 교화 활동을 펼치다가 1660년에 입적하였다. 이 진영은 벽암선사가 오른쪽을 향하여 의자에 앉아 있는 전형적인 전신 의자상이다. 입고 있는 장삼에는 전체적으로 모란문을 시문하였는데 매우 특이한 사례이다. 18세기 후반의 고승 진영의 양식적 특징을 보여 주는 작품으로 연구 자료적 가치가 크다.
해인사 국일암 벽암선사 진영 (海印寺 國一庵 碧巖禪師 眞影)
해인사 국일암 벽암선사 진영은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소재 해인사 산내 암자인 국일암에 있는 벽암선사의 진영이다. 벽암은 1588년에 출가하여 임진왜란 때 승병으로 이름을 날렸고 병자호란 때는 승병장을 맡았다. 그 후 송광사, 해인사 등으로 옮겨 다니며 교화 활동을 펼치다가 1660년에 입적하였다. 이 진영은 벽암선사가 오른쪽을 향하여 의자에 앉아 있는 전형적인 전신 의자상이다. 입고 있는 장삼에는 전체적으로 모란문을 시문하였는데 매우 특이한 사례이다. 18세기 후반의 고승 진영의 양식적 특징을 보여 주는 작품으로 연구 자료적 가치가 크다.
합천 해인사 국일암 「구품도」는 1885년 화승 기전 등이 그린 불화이다. 2층으로 쌓은 단에 담을 쌓고, 상단에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한 설법 장면을 배치하였다. 하단과 단 외곽에는 외호신중이 자리하고 있다. 조선 후기 석가불회도와 달리 독특한 화면 구성과 도상을 보여주는 이례적인 불화이다. 2012년에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합천 해인사 국일암 구품도 (陜川 海印寺 國一庵 九品圖)
합천 해인사 국일암 「구품도」는 1885년 화승 기전 등이 그린 불화이다. 2층으로 쌓은 단에 담을 쌓고, 상단에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한 설법 장면을 배치하였다. 하단과 단 외곽에는 외호신중이 자리하고 있다. 조선 후기 석가불회도와 달리 독특한 화면 구성과 도상을 보여주는 이례적인 불화이다. 2012년에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합천 해인사 국일암 「신중도」는 1885년 화승 기전 등이 그린 신중도이다. 화면 크기는 세로 112.7㎝, 가로 121.2㎝이며, 폭 57㎝의 비단 2매를 이어 바탕을 마련하였다. 화면 상단에 제석천과 범천, 위태천을 일렬로 배치하고, 하단에는 권속들을 다소 작게 배치한 구도로, 조선 후기 신중도 형식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2012년 7월 26일에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합천 해인사 국일암 신중도 (陜川 海印寺 國一庵 神衆圖)
합천 해인사 국일암 「신중도」는 1885년 화승 기전 등이 그린 신중도이다. 화면 크기는 세로 112.7㎝, 가로 121.2㎝이며, 폭 57㎝의 비단 2매를 이어 바탕을 마련하였다. 화면 상단에 제석천과 범천, 위태천을 일렬로 배치하고, 하단에는 권속들을 다소 작게 배치한 구도로, 조선 후기 신중도 형식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2012년 7월 26일에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