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로 105㎝, 가로 117㎝ 크기의 비단 바탕에 채색으로 불보살을 외호하는 신중들의 모임을 그렸다. 2012년 7월 26일에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합장을 한 범천이 가운데 서 있고 지물을 든 제석천이 향우측에 앉아 있다. 향좌측에는 겨드랑이에 삼지창을 끼고 합장을 한 위태천이 오른쪽을 향해 서있다. 제석천만 앉은 모습으로 한 것은 조선시대 신중도 가운데 가장 먼저 등장했던 제석천도의 형식을 따왔기 때문이다.
한편 범천, 제석천이 나란히 오면 범천이 향우측, 제석천이 향좌측에 와야 하지만, 위태천까지 셋이 나란히 나오니 제일 위인 범천을 가운데에 둔 것으로 봐야 한다. 원래 제석천은 모란꽃을 드는 것이 전형인데, 여기서는 막대기 같은 것으로 변형되었다. 이는 지물의 양식화 현상이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 이들 두 천은 같은 상호와 관, 천의를 입고 있다.
이들 천 아래에는 성군과 신중들이 자리하였다. 제석천 앞에 쟁반에 해과 월을 든 일천자, 월천자 등이 자리하였다. 붉은 색과 녹색을 주로 하였으며 청색의 사용도 눈에 띤다. 특히 뒤 배경을 모두 청색으로 칠하였다.
19세기 후반 다른 신중도와 비교해서 성중의 숫자가 많지 않아 구성이 답답하지 않다. 그리고 범천과 제석천만 정면을 향하고, 나머지는 모두 좌우를 쳐다보고 있어서 시선 방향에서는 기존 신중도 전통을 충실히 이은 작품이기도 하다.
국일암 구품도와 같은 해, 같은 스님들에 의해 그려진 신중도이다. 정월 12일에 봉안하였다. 시주자는 평양외성에 거주하는 최씨 여성이다. 기전이 그린 1882년(고종 19) 범어사 신중도와 비교하면, 성중이 대폭 줄었다. 이는 국일암 신중도가 범어사 신중도 크기의 반으로 줄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