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협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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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에, 밀직부사, 판밀직사사, 이조판서 등을 역임하였으며, 조선 건국 후에는 동북면도순문사를 역임한 문신·공신.
강회백 (姜淮伯)
고려 후기에, 밀직부사, 판밀직사사, 이조판서 등을 역임하였으며, 조선 건국 후에는 동북면도순문사를 역임한 문신·공신.
대보(大輔)는 고구려 · 신라 초기에 재상 기능을 수행한 최고위 관직이다. 관직 분화 및 정치 · 행정 · 군사권의 분리가 완성되기 이전에 국정을 총괄하였던 것으로 본다. 고구려의 경우 유리왕 대 협보(陜父)의 사례가 유일하다. 신라의 경우 남해차차웅(南解次次雄) 때 나라 일을 대신(大臣)인 탈해(脫解)에게 위임하면서 설치하였고, 탈해이사금(脫解尼師今) 때의 호공(瓠公) 또한 대보의 관직에 있었다.
대보 (大輔)
대보(大輔)는 고구려 · 신라 초기에 재상 기능을 수행한 최고위 관직이다. 관직 분화 및 정치 · 행정 · 군사권의 분리가 완성되기 이전에 국정을 총괄하였던 것으로 본다. 고구려의 경우 유리왕 대 협보(陜父)의 사례가 유일하다. 신라의 경우 남해차차웅(南解次次雄) 때 나라 일을 대신(大臣)인 탈해(脫解)에게 위임하면서 설치하였고, 탈해이사금(脫解尼師今) 때의 호공(瓠公) 또한 대보의 관직에 있었다.
우보(右輔)는 삼국시대 고구려 초기의 고위 관직이다. 25년(대무신왕 8) 을두지가 우보로 임명되는 기사에 최초로 등장한다. 이후 166년(신대왕 2) 좌보와 우보를 최고위 관직인 국상으로 개편할 때까지 유지되었다. 우보의 성격과 관련하여서는 왕권과 밀접한 측근 세력이 임명된 것으로 보기도 하고, 혹은 계루부와 나부 출신의 대표자가 좌보와 우보를 나눠 맡으면서 공동정치 운영방식을 구현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우보 (右輔)
우보(右輔)는 삼국시대 고구려 초기의 고위 관직이다. 25년(대무신왕 8) 을두지가 우보로 임명되는 기사에 최초로 등장한다. 이후 166년(신대왕 2) 좌보와 우보를 최고위 관직인 국상으로 개편할 때까지 유지되었다. 우보의 성격과 관련하여서는 왕권과 밀접한 측근 세력이 임명된 것으로 보기도 하고, 혹은 계루부와 나부 출신의 대표자가 좌보와 우보를 나눠 맡으면서 공동정치 운영방식을 구현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삼국시대 고구려 건국 초기 마리, 협보와 함께 많은 공적을 세운 관리. 장수.
오이 (烏伊)
삼국시대 고구려 건국 초기 마리, 협보와 함께 많은 공적을 세운 관리. 장수.
좌보는 고구려 초기에 우보와 함께 국정 운영을 주도한 최고위 관직이다. 대무신왕 대에 처음 확인되며, 신대왕 즉위 이후 국상으로 통합되었다. 좌 ‧ 우보제의 시행은 계루부와 나부 지배층이 제가회의를 통해 공동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나부체제를 뒷받침하는 것으로 파악되지만, 이와 다른 견해도 있다.
좌보 (左輔)
좌보는 고구려 초기에 우보와 함께 국정 운영을 주도한 최고위 관직이다. 대무신왕 대에 처음 확인되며, 신대왕 즉위 이후 국상으로 통합되었다. 좌 ‧ 우보제의 시행은 계루부와 나부 지배층이 제가회의를 통해 공동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나부체제를 뒷받침하는 것으로 파악되지만, 이와 다른 견해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