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홍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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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홍문관에 소속된 정1품 관직.
영홍문관사 (領弘文館事)
조선시대 홍문관에 소속된 정1품 관직.
조선시대 좌석의 서열과 위치에 따른 관직의 별칭.
동벽 (東壁)
조선시대 좌석의 서열과 위치에 따른 관직의 별칭.
조선시대 성균관·홍문관·승문원·교서관 등의 정7품 관직.
박사 (博士)
조선시대 성균관·홍문관·승문원·교서관 등의 정7품 관직.
조선시대 중요관서의 관원을 임명할 때 시행되던 제도.
권점 (圈點)
조선시대 중요관서의 관원을 임명할 때 시행되던 제도.
관각문학은 조선시대 관각인 홍문관(弘文館)·예문관(藝文館) 등에서 제작된 한문 문장이다. 당·송 고문을 존중하며 전아한 수사와 유창한 서술이 특징이다. 장식미에 치중하여 변려문이 쓰이기도 한다. 조선 전기에 관각문학을 대표하는 인물로 권근, 변계량, 서거정이 있다. 조선 중기에는 한문 4대가인 신흠, 이정구, 장유, 이식이 있다.
관각문학 (館閣文學)
관각문학은 조선시대 관각인 홍문관(弘文館)·예문관(藝文館) 등에서 제작된 한문 문장이다. 당·송 고문을 존중하며 전아한 수사와 유창한 서술이 특징이다. 장식미에 치중하여 변려문이 쓰이기도 한다. 조선 전기에 관각문학을 대표하는 인물로 권근, 변계량, 서거정이 있다. 조선 중기에는 한문 4대가인 신흠, 이정구, 장유, 이식이 있다.
검토관(檢討官)은 조선시대 경연청(經筵廳)에 속한 정6품 관직이다. 경연청에서 경사(經史)의 강론과 토론 등 진강(進講)의 업무를 담당하였다. 검토관은 태조 대에 정4품으로 2명을 두었으며, 세종 대에는 집현전 직전(直殿) · 응교(應敎) 1~2명이 겸직하였다. 예종 대에 경연관이 시강관으로 통합되어 불리게 되면서 관직명이 사라졌다가 성종 대에 다시 설치되어 홍문관 수찬(修撰)과 부수찬(副修撰) 각 2명씩, 모두 4명이 겸직하였다. 정조 대에 규장각이 설치된 뒤 규장각 직각이 겸직하였다.
검토관 (檢討官)
검토관(檢討官)은 조선시대 경연청(經筵廳)에 속한 정6품 관직이다. 경연청에서 경사(經史)의 강론과 토론 등 진강(進講)의 업무를 담당하였다. 검토관은 태조 대에 정4품으로 2명을 두었으며, 세종 대에는 집현전 직전(直殿) · 응교(應敎) 1~2명이 겸직하였다. 예종 대에 경연관이 시강관으로 통합되어 불리게 되면서 관직명이 사라졌다가 성종 대에 다시 설치되어 홍문관 수찬(修撰)과 부수찬(副修撰) 각 2명씩, 모두 4명이 겸직하였다. 정조 대에 규장각이 설치된 뒤 규장각 직각이 겸직하였다.
조선시대 삼사(三司)의 하나인 홍문관의 서고(書庫).
등영각 (登瀛閣)
조선시대 삼사(三司)의 하나인 홍문관의 서고(書庫).
경연원은 갑오개혁(甲午改革) 때 궁내부(宮內府) 산하에 설치되어 경적(經籍)과 문한(文翰)을 보관하고, 경연과 대찬(代撰)에 관한 업무를 관장하던 관서이다. 1894년 7월 22일, 궁내부관제를 제정할 때 홍문관과 예문관을 합하여 경연청(經筵廳)이 설치되었으나, 1895년 4월 2일, 경연청이 폐지되어 시종원(侍從院)에서 해당 업무를 담당하다가, 같은 해 11월 10일, 다시 궁내부관제가 개정되어 경연원이 설치되었다. 1897년 1월, 홍문관(弘文館)으로 개칭하였다.
경연원 (經筵院)
경연원은 갑오개혁(甲午改革) 때 궁내부(宮內府) 산하에 설치되어 경적(經籍)과 문한(文翰)을 보관하고, 경연과 대찬(代撰)에 관한 업무를 관장하던 관서이다. 1894년 7월 22일, 궁내부관제를 제정할 때 홍문관과 예문관을 합하여 경연청(經筵廳)이 설치되었으나, 1895년 4월 2일, 경연청이 폐지되어 시종원(侍從院)에서 해당 업무를 담당하다가, 같은 해 11월 10일, 다시 궁내부관제가 개정되어 경연원이 설치되었다. 1897년 1월, 홍문관(弘文館)으로 개칭하였다.
조선시대 집현전·홍문관·승문원·교서관 등의 정·종5품의 관직.
교리 (校理)
조선시대 집현전·홍문관·승문원·교서관 등의 정·종5품의 관직.
부수찬은 조선시대, 집현전과 홍문관에 설치된 종6품의 관직이다. 집현전과 홍문관의 다른 관원들처럼 경연 참여와 실록 편찬, 왕명 제작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홍문관 설치 이후 홍문관이 언관화되면서 언론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1456년(세조 2) 집현전 혁파, 1505년(연산군 11) 홍문관 혁파 당시 폐지되기도 하였으나, 성종 대와 중종 대에 다시 복구되었다.
부수찬 (副修撰)
부수찬은 조선시대, 집현전과 홍문관에 설치된 종6품의 관직이다. 집현전과 홍문관의 다른 관원들처럼 경연 참여와 실록 편찬, 왕명 제작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홍문관 설치 이후 홍문관이 언관화되면서 언론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1456년(세조 2) 집현전 혁파, 1505년(연산군 11) 홍문관 혁파 당시 폐지되기도 하였으나, 성종 대와 중종 대에 다시 복구되었다.
수찬은 조선시대에 집현전과 홍문관에 설치된 정6품의 관직이다. 경연, 실록 편찬, 왕명 제작 등에 참여하였으며, 왕명을 전달하는 등 시종신으로서도 활동하였다. 성종 대에는 경차관으로 차정되거나 부정 적발을 위해 지방에 파견되기도 하였다. 홍문관 설치 이후 홍문관이 언관화되어가며 언론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1456년(세조 2) 집현전 혁파, 1505년(연산군 11) 홍문관 혁파 당시 폐지되기도 하였으나, 성종 대와 중종 대에 다시 복구되었다.
수찬 (修撰)
수찬은 조선시대에 집현전과 홍문관에 설치된 정6품의 관직이다. 경연, 실록 편찬, 왕명 제작 등에 참여하였으며, 왕명을 전달하는 등 시종신으로서도 활동하였다. 성종 대에는 경차관으로 차정되거나 부정 적발을 위해 지방에 파견되기도 하였다. 홍문관 설치 이후 홍문관이 언관화되어가며 언론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1456년(세조 2) 집현전 혁파, 1505년(연산군 11) 홍문관 혁파 당시 폐지되기도 하였으나, 성종 대와 중종 대에 다시 복구되었다.
수찬관은 조선시대에 춘추관 소속의 정3품 관직의 겸관이다. 조선시대에 춘추관 직제는 주요 관직을 중심으로 한 겸임사관제로 운영되었다. 『경국대전』에 수찬관은 정3품 당상관이 맡도록 규정되어 있는데, 보통 승정원의 여섯 승지와 홍문관의 부제학이 담당하였다. 다만 승지는 실록 부록의 편찬관 명단에는 빠져 있는데, 평상시 기사 사관만을 담당하고 실록 편찬 작업에는 빠졌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있다.
수찬관 (修撰官)
수찬관은 조선시대에 춘추관 소속의 정3품 관직의 겸관이다. 조선시대에 춘추관 직제는 주요 관직을 중심으로 한 겸임사관제로 운영되었다. 『경국대전』에 수찬관은 정3품 당상관이 맡도록 규정되어 있는데, 보통 승정원의 여섯 승지와 홍문관의 부제학이 담당하였다. 다만 승지는 실록 부록의 편찬관 명단에는 빠져 있는데, 평상시 기사 사관만을 담당하고 실록 편찬 작업에는 빠졌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있다.
부응교는 조선시대, 홍문관에 설치된 종4품의 관직이다. 집현전과 홍문관의 다른 관원들처럼 경연 참여와 실록 편찬, 왕명 제작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응교직과 함께 국왕의 사명(辭命)을 제작하는 예문관 응교직을 겸대하였으며 그만큼 문장에 능해야 하였다. 1456년(세조 2)에 집현전 혁파, 1505년(연산군 11)에 홍문관 혁파 당시 폐지되기도 하였으나, 성종 대와 중종 대에 다시 복구되었다.
부응교 (副應敎)
부응교는 조선시대, 홍문관에 설치된 종4품의 관직이다. 집현전과 홍문관의 다른 관원들처럼 경연 참여와 실록 편찬, 왕명 제작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응교직과 함께 국왕의 사명(辭命)을 제작하는 예문관 응교직을 겸대하였으며 그만큼 문장에 능해야 하였다. 1456년(세조 2)에 집현전 혁파, 1505년(연산군 11)에 홍문관 혁파 당시 폐지되기도 하였으나, 성종 대와 중종 대에 다시 복구되었다.
조선시대 홍문관과 그 전신이었던 집현전의 정3품 당상관직.
부제학 (副提學)
조선시대 홍문관과 그 전신이었던 집현전의 정3품 당상관직.
조선시대 언론을 담당한 사헌부·사간원·홍문관을 합하여 부른 말.
삼사 (三司)
조선시대 언론을 담당한 사헌부·사간원·홍문관을 합하여 부른 말.
시강관(侍講官)은 조선시대, 경연(經筵)의 정4품 관직이다. 경연에서 진강(進講)하는 업무를 담당하였다. 시강관은 태조 대에 강독관(講讀官) 4명에 속하였으며, 정종 대에 강독관이 시강관과 시독관으로 분화하였다. 세종 대에는 집현전 부제학이 겸직하였고, 성종 대에는 홍문관 관원 4명이 겸직하였다. 정조 대에는 규장각 설치 후 규장각 직각이 겸직하였다.
시강관 (侍講官)
시강관(侍講官)은 조선시대, 경연(經筵)의 정4품 관직이다. 경연에서 진강(進講)하는 업무를 담당하였다. 시강관은 태조 대에 강독관(講讀官) 4명에 속하였으며, 정종 대에 강독관이 시강관과 시독관으로 분화하였다. 세종 대에는 집현전 부제학이 겸직하였고, 성종 대에는 홍문관 관원 4명이 겸직하였다. 정조 대에는 규장각 설치 후 규장각 직각이 겸직하였다.
고려 전기에 설치되었던 시종(侍從) 관서.
연영전 (延英殿)
고려 전기에 설치되었던 시종(侍從) 관서.
조선시대 홍문관의 종5품 관직.
부교리 (副校理)
조선시대 홍문관의 종5품 관직.
사경(司經)은 조선시대, 다른 관사의 관원이 겸임하는 경연의 정7품 관직이다. 성종 때에 홍문관을 설치하고 여기에 소속된 정7품 박사 1인을 경연의 사경으로 임명한 것이 그 유래이다. 홍문관 박사가 본직이고, 경연의 사경은 당연 겸직이다. 『경국대전』의 제도가 큰 변동없이 조선 말까지 이어지다가, 고종 대에 관제 개편 과정에서 혁파되었다.
사경 (司經)
사경(司經)은 조선시대, 다른 관사의 관원이 겸임하는 경연의 정7품 관직이다. 성종 때에 홍문관을 설치하고 여기에 소속된 정7품 박사 1인을 경연의 사경으로 임명한 것이 그 유래이다. 홍문관 박사가 본직이고, 경연의 사경은 당연 겸직이다. 『경국대전』의 제도가 큰 변동없이 조선 말까지 이어지다가, 고종 대에 관제 개편 과정에서 혁파되었다.
조선시대 경연(經筵)의 정8품 관직.
설경 (說經)
조선시대 경연(經筵)의 정8품 관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