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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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특별자치도 화천군 화천읍 아리에 있는 공립초등학교.
화천초등학교 (華川初等學敎)
강원특별자치도 화천군 화천읍 아리에 있는 공립초등학교.
강원특별자치도 화천군 화천읍 동촌리 일대에 있는 황쏘가리 서식지.
화천 황쏘가리 서식지 (華川 黃쏘가리 棲息地)
강원특별자치도 화천군 화천읍 동촌리 일대에 있는 황쏘가리 서식지.
『화천군읍지』는 1910년대 초반 강원도 낭천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1898년에 편찬한 읍지를 베껴 쓴 책이다. 1책의 필사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낭천군의 자연, 역사, 문화, 경제 등에 관한 기록으로 구성하였으며, 19세기 말 제도의 변화상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화천군읍지 (華川郡邑誌)
『화천군읍지』는 1910년대 초반 강원도 낭천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1898년에 편찬한 읍지를 베껴 쓴 책이다. 1책의 필사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낭천군의 자연, 역사, 문화, 경제 등에 관한 기록으로 구성하였으며, 19세기 말 제도의 변화상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낭천현읍지』는 1910년대 강원도 낭천 지역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18세기에 편찬한 읍지를 베껴 쓴 책이다. 1책의 필사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지도는 첨부하지 않았다. 다양한 항목을 수록하였으나 기록한 내용은 적다.
낭천현읍지 (狼川縣邑誌)
『낭천현읍지』는 1910년대 강원도 낭천 지역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18세기에 편찬한 읍지를 베껴 쓴 책이다. 1책의 필사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지도는 첨부하지 않았다. 다양한 항목을 수록하였으나 기록한 내용은 적다.
안동 하회마을은 고려 말 풍산류씨가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 조성한 씨족 마을이다. 고려 말 전서공 류종혜가 입향 이후 임암 류중영과 두 아들 겸암 류운룡, 서애 류성룡에 이르러 번성하게 되었다. 사면이 경사진 곳에 마을 길과 가옥의 자리를 조성했는데, 마을 입구에서 양진당, 충효당으로 통하는 중심 안길에서 사방으로 뻗어 있으며, 마을은 중심 안길을 경계로 북촌 지역과 남촌 지역으로 나뉜다. 이 마을은 주생활 공간, 의식 공간, 생산 활동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특히 민속 신앙 관련 시설이 잘 보존, 전승되고 있다.
안동 하회마을 (安東 河回마을)
안동 하회마을은 고려 말 풍산류씨가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 조성한 씨족 마을이다. 고려 말 전서공 류종혜가 입향 이후 임암 류중영과 두 아들 겸암 류운룡, 서애 류성룡에 이르러 번성하게 되었다. 사면이 경사진 곳에 마을 길과 가옥의 자리를 조성했는데, 마을 입구에서 양진당, 충효당으로 통하는 중심 안길에서 사방으로 뻗어 있으며, 마을은 중심 안길을 경계로 북촌 지역과 남촌 지역으로 나뉜다. 이 마을은 주생활 공간, 의식 공간, 생산 활동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특히 민속 신앙 관련 시설이 잘 보존, 전승되고 있다.
이채(李采)는 조선 후기에 상주목사, 황주목사, 경주부윤, 승지 등을 지낸 문신이다. 본관은 우봉(牛峯). 자는 계량(季亮), 호는 화천(華泉)이며, 도암(陶菴) 이재(李縡)의 손자이다. 이재는 여흥민씨 민유중의 딸인 인현왕후의 조카로서, 노론의 핵심 집안으로 분류된다. 이채는 진사시에 합격한 이후 1780년까지 호조정랑, 돈녕부 주부, 음죽현감으로 활동하였으나, 1780년 이후로는 주로 향리에 머물며 학문 연구에 주력하면서 조부 이재의 문집인 『도암집(陶菴集)』을 편찬하고 간행하는 데 힘을 쏟았다.
이채 (李采)
이채(李采)는 조선 후기에 상주목사, 황주목사, 경주부윤, 승지 등을 지낸 문신이다. 본관은 우봉(牛峯). 자는 계량(季亮), 호는 화천(華泉)이며, 도암(陶菴) 이재(李縡)의 손자이다. 이재는 여흥민씨 민유중의 딸인 인현왕후의 조카로서, 노론의 핵심 집안으로 분류된다. 이채는 진사시에 합격한 이후 1780년까지 호조정랑, 돈녕부 주부, 음죽현감으로 활동하였으나, 1780년 이후로는 주로 향리에 머물며 학문 연구에 주력하면서 조부 이재의 문집인 『도암집(陶菴集)』을 편찬하고 간행하는 데 힘을 쏟았다.
조선 후기의 승려, 홍유의 시·서(書)·서(序)·잡저 등을 수록한 시문집.
추파집 (秋波集)
조선 후기의 승려, 홍유의 시·서(書)·서(序)·잡저 등을 수록한 시문집.
안동 하회마을 겸암정사는 1567년(명종 22) 겸암 유운룡이 건립한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광덕리에 있는 정자이다. 이 정자는 유운룡이 학문 정진과 제자 양성을 목적으로 지었다. 정사는 하회마을 북쪽 화천을 끼고 우뚝 솟은 부용대의 서쪽, 옥연정사 맞은편에 있으며, 정사는 화천 건너 북서측 절벽 위 숲속에 터를 잡고 강물과 강 건너 모래사장, 만송정의 소나무 숲, 하회마을을 보며 동남향을 하였다. 정사는 一자형 정사와 ㄱ자형의 살림채, 一자형 방앗간채로 구성되어 있다.
안동 하회마을 겸암정사 (安東 河回마을 謙菴精舍)
안동 하회마을 겸암정사는 1567년(명종 22) 겸암 유운룡이 건립한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광덕리에 있는 정자이다. 이 정자는 유운룡이 학문 정진과 제자 양성을 목적으로 지었다. 정사는 하회마을 북쪽 화천을 끼고 우뚝 솟은 부용대의 서쪽, 옥연정사 맞은편에 있으며, 정사는 화천 건너 북서측 절벽 위 숲속에 터를 잡고 강물과 강 건너 모래사장, 만송정의 소나무 숲, 하회마을을 보며 동남향을 하였다. 정사는 一자형 정사와 ㄱ자형의 살림채, 一자형 방앗간채로 구성되어 있다.
안동 하회마을 빈연정사(安東 河回마을 賓淵精舍)는 1583년(선조 16)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호리 하회마을에 건립된 정사로, 조선 전기 겸암 류운룡이 서재로 사용했다. 빈연정자는 1919년 9월 1일에 풍남국민학교 개교로 현 위치인 학교 서측으로 이건되었다. 정사는 사면에 한식 기와를 올린 토담을 쌓아 경계로 삼았고, 북측에 일각문을 세워 북측에서의 출입하도록 하였다. 빈연정사의 담장 내부는 대청과 온돌방으로 구성된 一자형 정사를 중심으로 정면과 서측에 마당이 있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자 한 성리학자의 원림 공간이다.
안동 하회마을 빈연정사 (安東 河回마을 賓淵精舍)
안동 하회마을 빈연정사(安東 河回마을 賓淵精舍)는 1583년(선조 16)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호리 하회마을에 건립된 정사로, 조선 전기 겸암 류운룡이 서재로 사용했다. 빈연정자는 1919년 9월 1일에 풍남국민학교 개교로 현 위치인 학교 서측으로 이건되었다. 정사는 사면에 한식 기와를 올린 토담을 쌓아 경계로 삼았고, 북측에 일각문을 세워 북측에서의 출입하도록 하였다. 빈연정사의 담장 내부는 대청과 온돌방으로 구성된 一자형 정사를 중심으로 정면과 서측에 마당이 있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자 한 성리학자의 원림 공간이다.
해남군곡리패총(海南郡谷里貝塚)은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에 있는 초기 철기시대 집터와 토기 가마터 등이 발굴된 조개더미 유적이다. 생활유적의 연대 추정은 청동기시대 후기부터 삼국시대로 보고 있다. 이 유적은 14개의 층을 5개의 문화층으로 설정하여 호남 지역 고고학적 편년 연구의 기준이 된다. 토기 가마 등 생산과 관련된 유구도 확인되어 철기시대부터 취락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유적 내 출토된 화천과 현무암 태토의 토기는 영산강 유역-해남반도-제주도의 문화 교류 양상을 추정하게 한다.
해남 군곡리 패총 (海南 郡谷里 貝塚)
해남군곡리패총(海南郡谷里貝塚)은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에 있는 초기 철기시대 집터와 토기 가마터 등이 발굴된 조개더미 유적이다. 생활유적의 연대 추정은 청동기시대 후기부터 삼국시대로 보고 있다. 이 유적은 14개의 층을 5개의 문화층으로 설정하여 호남 지역 고고학적 편년 연구의 기준이 된다. 토기 가마 등 생산과 관련된 유구도 확인되어 철기시대부터 취락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유적 내 출토된 화천과 현무암 태토의 토기는 영산강 유역-해남반도-제주도의 문화 교류 양상을 추정하게 한다.
『관세음보살사십이수진언집』은 조선시대에 『오대진언』의 하나로 간행되거나 개별적으로 간행된 불서이다. 이 불서는 관세음보살의 42가지 수인과 함께 제시된 진언집이다. 조선시대에 성행한 진언집인 『오대진언』의 하나로 간행되었으나, 다른 진언에 비해 분량이 많고 수인도가 들어가는 번거로움 때문에 후대에 간행된 『오대진언』에 수록되지 않거나 '근본다라니'를 비롯한 다른 진언으로 대체되었다. 조선 후기에 『관세음보살사십이수진언집』은 수인도가 함께 수록된 진언집이므로 '화천수'라는 제목으로 단독 간행되는 경우가 많았다.
관세음보살사십이수진언집 (觀世音菩薩四十二手眞言集)
『관세음보살사십이수진언집』은 조선시대에 『오대진언』의 하나로 간행되거나 개별적으로 간행된 불서이다. 이 불서는 관세음보살의 42가지 수인과 함께 제시된 진언집이다. 조선시대에 성행한 진언집인 『오대진언』의 하나로 간행되었으나, 다른 진언에 비해 분량이 많고 수인도가 들어가는 번거로움 때문에 후대에 간행된 『오대진언』에 수록되지 않거나 '근본다라니'를 비롯한 다른 진언으로 대체되었다. 조선 후기에 『관세음보살사십이수진언집』은 수인도가 함께 수록된 진언집이므로 '화천수'라는 제목으로 단독 간행되는 경우가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