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연관(經筵官)
우리나라의 경연관은 고려 초기부터 설치되었던 것으로 생각되나, 1132년(인종 10) 정원(鄭沅)·윤언이(尹彦頤)·정지상(鄭知常) 등이 경연에서 진강한 것이 최초의 기록이다. 인종은 서적소(書籍所)를 설치하고, 유신들을 번갈아 인접하여 강학하기도 하였다. 경연은 몽고 간섭기에 서연(書筵)으로 강등되어 경연관도 서연관으로 개칭되었으나, 1390년(공양왕 2)에 복원되었고, 관제도 재정비되었다. 이때의 경연관은 영경연사(領經筵事) 2인, 지경연사(知經筵事) 2인, 동지경연사(同知經筵事) 2인, 참찬관 4인, 강독관 2인, 검토관 4인이었다. 심덕부(沈德符)가 영경연사, 정몽주(鄭夢周)·정도전(鄭道傳)이 지경연사에 임명되었다. 이는 조선시대 경연 관제의 기초가 되었다. 조선왕조 개창 직후인 1392년(태조 1) 7월의 관제 제정 시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