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도지도(黃海道地圖)
지도의 내용은 사창(社倉)과 훼철된 서원(書院)이 그려지는 등 당시 흥선대원군 정권 아래에서 새롭게 시행된 정책들을 반영하고 있으며 읍치(邑治), 사찰, 면(面), 리(里), 동(洞), 산성, 령(領), 치(峙), 봉대(烽臺), 진(津), 포(浦), 창(倉), 장시(場市), 역(驛), 향교 등 지역에 대한 정보가 회화적 요소로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지금까지 1872년에 작성된 황해도지도의 제작 경위를 알 수 있는 사료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1871년(고종 8)에 시행된 전국 읍지(邑誌)의 편찬 경위와 읍지도의 비교를 통해서 그 관련성을 살펴볼 수 있다. 황해도지도는 사실상 1871년 『해서읍지(海西邑誌)』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으며, 1872년에 황해도지도를 다시 제작하면서 지면이 확대되었으나 지도의 절반이 『해서읍지』에 수록된 지도와 구도, 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