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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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업전관수역은 연안국이 자국 연해의 수산자원을 자국민이 배타적·독점적으로 이용하기 위하여 설정한 어업수역이다. 우리나라에서 사용되었던 어업전관수역의 개념은 협의의 어업전관수역으로서 1965년에 체결된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어업에 관한 협정’[약칭하여 ‘한일어업협정’이라고 부른다]의 제1조의 규정에 의하여 한일 양 체약국이 설정한 어업수역을 말한다. 어업전관수역은 이후 배타적 경제수역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어업전관수역 (漁業專管水域)
어업전관수역은 연안국이 자국 연해의 수산자원을 자국민이 배타적·독점적으로 이용하기 위하여 설정한 어업수역이다. 우리나라에서 사용되었던 어업전관수역의 개념은 협의의 어업전관수역으로서 1965년에 체결된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어업에 관한 협정’[약칭하여 ‘한일어업협정’이라고 부른다]의 제1조의 규정에 의하여 한일 양 체약국이 설정한 어업수역을 말한다. 어업전관수역은 이후 배타적 경제수역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6·3항쟁은 1964년 6월 3일에 일어난 한일회담 반대시위와 관련된 일련의 항쟁이다. 이승만과 달리 의욕에 찬 경제건설을 구상했던 박정희는 한일국교정상화를 위해 1964년 3월 한일회담 재개를 결정했다. 야당과 사회단체는 매국외교 중지, 일본의 경제적 식민지화 반대 등을 주장하며 회담을 반대했다. 3월 24일 서울시내 각 대학에서 시작된 반대시위는 6월 3일에 이르러 절정에 달했다. 정부 탄압으로 계엄이 선포된 55일 동안 구속된 수는 총 348명에 이르렀다. 6·3항쟁은 이후 한일협정비준서 조인 때까지 한일협정반대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6·3항쟁 (六三抗爭)
6·3항쟁은 1964년 6월 3일에 일어난 한일회담 반대시위와 관련된 일련의 항쟁이다. 이승만과 달리 의욕에 찬 경제건설을 구상했던 박정희는 한일국교정상화를 위해 1964년 3월 한일회담 재개를 결정했다. 야당과 사회단체는 매국외교 중지, 일본의 경제적 식민지화 반대 등을 주장하며 회담을 반대했다. 3월 24일 서울시내 각 대학에서 시작된 반대시위는 6월 3일에 이르러 절정에 달했다. 정부 탄압으로 계엄이 선포된 55일 동안 구속된 수는 총 348명에 이르렀다. 6·3항쟁은 이후 한일협정비준서 조인 때까지 한일협정반대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정치학은 정치현상을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분석·비판하는 학문이다. 전통적으로 정치학은 국가와 국가의 기능을 담당하는 기관과 제도에 관한 연구로 생각되었다. 정치학의 기원은 고대 플라톤의 『공화국』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에서 찾을 수 있다. 19세기까지 정치학은 도덕과 윤리학의 성격을 띠었으나, 19세기 이후 실증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과학의 한 분야가 되었다. 현대 정치학은 과학적 분석방법의 응용에 의한 정치현상의 체계적 연구를 의미한다. 한국에서 정치학은 일본 정치학을 전통을 수용해 그 토대로 삼았고 점차 미국 정치학을 수용하며 전개되었다.
정치학 (政治學)
정치학은 정치현상을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분석·비판하는 학문이다. 전통적으로 정치학은 국가와 국가의 기능을 담당하는 기관과 제도에 관한 연구로 생각되었다. 정치학의 기원은 고대 플라톤의 『공화국』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에서 찾을 수 있다. 19세기까지 정치학은 도덕과 윤리학의 성격을 띠었으나, 19세기 이후 실증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과학의 한 분야가 되었다. 현대 정치학은 과학적 분석방법의 응용에 의한 정치현상의 체계적 연구를 의미한다. 한국에서 정치학은 일본 정치학을 전통을 수용해 그 토대로 삼았고 점차 미국 정치학을 수용하며 전개되었다.
제네바회담은 1954년 19개국 외상들이 스위스 제네바에서 한국의 평화적인 통일방안 모색을 위해 개최했던 국제정치회담이다.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휴전협정이 체결되었으나 이는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에 1954년 4월 26일 제네바회담이 개최되었다. 두 달 동안에 걸쳐 한반도 통일을 위한 선거 범위, 국제감독, 외국군 철수, 유엔 권위 문제 등에 관한 토의를 벌였다. 그러나 회담의 결렬로 한반도는 휴전체제 아래 분단상태로 남아 있게 되었다. 제네바회담은 남북한이 최초로 통일방안을 공개적인 장에서 논의한 회의였다.
제네바회담 (Geneva會談)
제네바회담은 1954년 19개국 외상들이 스위스 제네바에서 한국의 평화적인 통일방안 모색을 위해 개최했던 국제정치회담이다.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휴전협정이 체결되었으나 이는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에 1954년 4월 26일 제네바회담이 개최되었다. 두 달 동안에 걸쳐 한반도 통일을 위한 선거 범위, 국제감독, 외국군 철수, 유엔 권위 문제 등에 관한 토의를 벌였다. 그러나 회담의 결렬로 한반도는 휴전체제 아래 분단상태로 남아 있게 되었다. 제네바회담은 남북한이 최초로 통일방안을 공개적인 장에서 논의한 회의였다.
7·4남북공동성명은 1972년 7월 4일 남북 간 정치적 대화통로와 한반도 평화정착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발표한 남북한 당사자 간의 최초의 합의 문서이다. 1971년 박정희 정부가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회담을 제안하면서 개시되었다. 공동성명의 조국통일원칙은 자주적 통일, 평화적 방법에 의한 통일, 사상과 이념을 초월한 민족 대단결 도모였다. 그러나 1973년에 들어와 대화의 동력을 상실하였고, 같은 해 8월 북한이 남북조절위원회 회의를 거부하면서 종료됐다. 그 역사적 의의에도 불구하고 공동성명 이후 한국에서는 유신체제가, 북한에서는 유일체제가 등장하였다.
7·4남북공동성명 (七四南北共同聲明)
7·4남북공동성명은 1972년 7월 4일 남북 간 정치적 대화통로와 한반도 평화정착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발표한 남북한 당사자 간의 최초의 합의 문서이다. 1971년 박정희 정부가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회담을 제안하면서 개시되었다. 공동성명의 조국통일원칙은 자주적 통일, 평화적 방법에 의한 통일, 사상과 이념을 초월한 민족 대단결 도모였다. 그러나 1973년에 들어와 대화의 동력을 상실하였고, 같은 해 8월 북한이 남북조절위원회 회의를 거부하면서 종료됐다. 그 역사적 의의에도 불구하고 공동성명 이후 한국에서는 유신체제가, 북한에서는 유일체제가 등장하였다.
경남대학교 박물관은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있는 박물관이다. 1976년 문과대학 1층에 개관하였다. 2008년 대학 개교 60주년 기념관(한마미래관)을 지어 이전하였다. 최신의 시설을 갖춰 국가유산의 안전한 관리와 보관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3,963건 4,979점의 유물과 2010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데라우치문고를 소장하고 있다. 그중 『기원유한지예서첩』은 2010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경남지역의 역사문화를 연구하고 각종 국가유산을 수집·보관·조사·전시함으로써 대학과 지역사회를 위한 교육과 봉사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경남대학교 박물관 (慶南大學校 博物館)
경남대학교 박물관은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있는 박물관이다. 1976년 문과대학 1층에 개관하였다. 2008년 대학 개교 60주년 기념관(한마미래관)을 지어 이전하였다. 최신의 시설을 갖춰 국가유산의 안전한 관리와 보관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3,963건 4,979점의 유물과 2010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데라우치문고를 소장하고 있다. 그중 『기원유한지예서첩』은 2010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경남지역의 역사문화를 연구하고 각종 국가유산을 수집·보관·조사·전시함으로써 대학과 지역사회를 위한 교육과 봉사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고고학 연구를 위한 한국의 대표적 학술단체.
한국고고학회 (韓國考古學會)
고고학 연구를 위한 한국의 대표적 학술단체.
충청남도 천안시에 있는 청동기시대 돌도끼·민무늬토기 등이 출토된 유물산포지.
봉명동 유적 (鳳鳴洞 遺蹟)
충청남도 천안시에 있는 청동기시대 돌도끼·민무늬토기 등이 출토된 유물산포지.
경기도 여주시 점동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쌀·보리·수수·조 등의 곡물이 발견된 집터.
여주 흔암리 선사유적 (驪州 欣巖里 先史遺蹟)
경기도 여주시 점동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쌀·보리·수수·조 등의 곡물이 발견된 집터.
충청북도 영동군 매곡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남방식 고인돌. 지석묘.
영동 유전리 고인돌 (永同 楡田里 고인돌)
충청북도 영동군 매곡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남방식 고인돌. 지석묘.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이후 민무늬토기·홈자귀 등이 출토된 유물산포지.
영암 월송리 유적 (靈巖 月松里 遺蹟)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이후 민무늬토기·홈자귀 등이 출토된 유물산포지.
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토기조각이 출토된 가마터.
월성 망성리 요지 (月城 望星里 窯址)
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토기조각이 출토된 가마터.
고령 고아리 벽화 고분은 경북 고령군 대가야읍에 있는 연꽃무늬 벽화가 있는 삼국시대 가야의 무덤이다. 이 무덤은 남북으로 긴 장방형의 널방과 널길이 있는 ㄱ자 형태의 굴식 돌방무덤이다. 널방과 널길 천장돌에 연꽃무늬 벽화가 남아 있다. 벽화가 있는 점에서 백제 묘제와의 관련성이 있고 고령에서 무주, 금산, 논산평야를 통하는 가야와 백제의 문화 교류를 보여주고 있다. 벽의 아치형 축조 수법, 바닥의 도량 설치 등 백제의 고분 축조 양식과 공통되는 부분이 존재하여 가야에 미친 백제문화의 영향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고령 고아리 벽화 고분 (高靈 古衛里 壁畵 古墳)
고령 고아리 벽화 고분은 경북 고령군 대가야읍에 있는 연꽃무늬 벽화가 있는 삼국시대 가야의 무덤이다. 이 무덤은 남북으로 긴 장방형의 널방과 널길이 있는 ㄱ자 형태의 굴식 돌방무덤이다. 널방과 널길 천장돌에 연꽃무늬 벽화가 남아 있다. 벽화가 있는 점에서 백제 묘제와의 관련성이 있고 고령에서 무주, 금산, 논산평야를 통하는 가야와 백제의 문화 교류를 보여주고 있다. 벽의 아치형 축조 수법, 바닥의 도량 설치 등 백제의 고분 축조 양식과 공통되는 부분이 존재하여 가야에 미친 백제문화의 영향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북한 평안남도 대안군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인물풍속도·사신도 관련 벽화무덤. 횡혈식석실분.
대안 보산리 벽화 고분 (大安 寶山里 壁畵 古墳)
북한 평안남도 대안군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인물풍속도·사신도 관련 벽화무덤. 횡혈식석실분.
경상남도 김해시 무계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남방식(바둑판식) 고인돌. 지석묘.
무계리 지석묘 (茂溪里 支石墓)
경상남도 김해시 무계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남방식(바둑판식) 고인돌. 지석묘.
미술은 시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건축·회화·조각 등을 포함하는 예술이다. 형태·면·선·색·기호 등 갖가지 요소를 하나의 통일체로 종합하여 작가의 심정을 전달하고 또 미적 쾌감을 준다. 크게 건축·조각·회화 등 미적 쾌감의 표현이 강조되는 순수미술과, 작품의 기능이 우선되는 도자기·금속공예·보석·가구·직물 등의 응용미술로 나뉜다. 한국의 고대 미술은 초기에는 북방 민족의 특성인 추상주의적 경향을 보이다가 농경문화가 정착하면서 남방 민족의 특성인 자연주의적 경향을 보여 왔다. 삼국시대 이후에는 왕조별로 독자의 미술양식을 발전시켰다.
미술 (美術)
미술은 시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건축·회화·조각 등을 포함하는 예술이다. 형태·면·선·색·기호 등 갖가지 요소를 하나의 통일체로 종합하여 작가의 심정을 전달하고 또 미적 쾌감을 준다. 크게 건축·조각·회화 등 미적 쾌감의 표현이 강조되는 순수미술과, 작품의 기능이 우선되는 도자기·금속공예·보석·가구·직물 등의 응용미술로 나뉜다. 한국의 고대 미술은 초기에는 북방 민족의 특성인 추상주의적 경향을 보이다가 농경문화가 정착하면서 남방 민족의 특성인 자연주의적 경향을 보여 왔다. 삼국시대 이후에는 왕조별로 독자의 미술양식을 발전시켰다.
건물이나 무덤의 벽에 그린 그림.
벽화 (壁畵)
건물이나 무덤의 벽에 그린 그림.
병인양요는 1866년(고종 3) 흥선대원군의 천주교 탄압에 대한 보복으로 프랑스군이 강화도에 침입한 사건이다. 1866년 초 대원군은 천주교 금압령을 내려 프랑스 신부와 조선인 천주교신자 수천 명을 학살했다. 이때 프랑스 선교사 12명 중 9명이 처형되어 한국과 프랑스의 군사적 충돌로 이어졌다. 1차 원정에서 군사정보를 수집한 프랑스 군대는 2차 원정에서 막강한 화력을 앞세워 강화부를 점령했다. 이에 조선군은 기병작전으로 강화도를 수복할 계획을 세우고 정족산성에서 프랑스 군대를 격퇴했다. 우리 역사상 최초로 서구 제국주의 침략세력을 격파한 전투이다.
병인양요 (丙寅洋擾)
병인양요는 1866년(고종 3) 흥선대원군의 천주교 탄압에 대한 보복으로 프랑스군이 강화도에 침입한 사건이다. 1866년 초 대원군은 천주교 금압령을 내려 프랑스 신부와 조선인 천주교신자 수천 명을 학살했다. 이때 프랑스 선교사 12명 중 9명이 처형되어 한국과 프랑스의 군사적 충돌로 이어졌다. 1차 원정에서 군사정보를 수집한 프랑스 군대는 2차 원정에서 막강한 화력을 앞세워 강화부를 점령했다. 이에 조선군은 기병작전으로 강화도를 수복할 계획을 세우고 정족산성에서 프랑스 군대를 격퇴했다. 우리 역사상 최초로 서구 제국주의 침략세력을 격파한 전투이다.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철기시대 민무늬토기·목긴항아리·석창 등이 출토된 집터.
남양주 수석리 주거지 (南楊州 水石里 住居址)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철기시대 민무늬토기·목긴항아리·석창 등이 출토된 집터.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말기의 굽다리접시 등이 출토된 돌덧널무덤. 석곽묘.
양평 단석리 고분 (楊平 丹石里 古墳)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말기의 굽다리접시 등이 출토된 돌덧널무덤. 석곽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