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남풍현"
검색결과 총 12건
한문을 읽을 때 그 뜻이나 독송을 위하여 각 구절 아래에 달아 놓는 표기법. 토·입겿·현결·현토.
구결 (口訣)
한문을 읽을 때 그 뜻이나 독송을 위하여 각 구절 아래에 달아 놓는 표기법. 토·입겿·현결·현토.
1973년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태봉리 문수사에 소장된 불교경전. 복장유물·구결서.
구역인왕경구결 (舊譯仁王經口訣)
1973년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태봉리 문수사에 소장된 불교경전. 복장유물·구결서.
경상북도 예천군 상리면 명봉리 명봉사내의 고려시대 탑비의 음명(陰銘).
명봉사 자적선사 능운탑비 음명 (鳴鳳寺 慈寂禪師 凌雲塔碑 陰銘)
경상북도 예천군 상리면 명봉리 명봉사내의 고려시대 탑비의 음명(陰銘).
조선전기 승려 신미가 고려의 승려 지눌의 『수심결』을 풀이한 언해서.
목우자수심결언해 (牧牛子修心訣諺解)
조선전기 승려 신미가 고려의 승려 지눌의 『수심결』을 풀이한 언해서.
이두는 한자의 음과 훈을 빌려 우리말을 기록하던 표기법이다. 한자의 음이나 새김을 차용할 때 한자 원래의 의미를 살려서 하는 방식과 한자 원래의 의미를 버리고 음과 새김의 발음만을 차용하여 표음문자인 우리말을 기록하는 방식이 있었다. 설총이 창작했다고 하는데, 개인이 창작했다기보다는 그때까지 발달해 온 차자표기법을 설총이 정리하여 경서를 우리말로 주해하고 새겼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훈민정음 창제 후에는 그 존재가치를 상실했으나 일부 서리계층에서 사용하던 이서지체라는 문체에 남아 국한문혼용체로 대체될 때까지 계속 사용되었다.
이두 (吏讀)
이두는 한자의 음과 훈을 빌려 우리말을 기록하던 표기법이다. 한자의 음이나 새김을 차용할 때 한자 원래의 의미를 살려서 하는 방식과 한자 원래의 의미를 버리고 음과 새김의 발음만을 차용하여 표음문자인 우리말을 기록하는 방식이 있었다. 설총이 창작했다고 하는데, 개인이 창작했다기보다는 그때까지 발달해 온 차자표기법을 설총이 정리하여 경서를 우리말로 주해하고 새겼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훈민정음 창제 후에는 그 존재가치를 상실했으나 일부 서리계층에서 사용하던 이서지체라는 문체에 남아 국한문혼용체로 대체될 때까지 계속 사용되었다.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 복성리 정도사에 있었던 고려시대 오층석탑의 조탑기(造塔記).
정도사조탑형지기 (淨兜寺造塔形止記)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 복성리 정도사에 있었던 고려시대 오층석탑의 조탑기(造塔記).
한자의 음과 훈을 빌려 우리말을 기록하던 표기법.
차자표기법 (借字表記法)
한자의 음과 훈을 빌려 우리말을 기록하던 표기법.
대장도감에서 향약으로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과 처방을 모아 간행한 의서. 의약서.
향약구급방 (鄕藥救急方)
대장도감에서 향약으로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과 처방을 모아 간행한 의서. 의약서.
조선전기 의학자 유효통 등이 일반대중의 향약 채취와 활용을 위하여 1431년에 간행한에 간행한 의서. 의약서.
향약채취월령 (鄕藥採取月令)
조선전기 의학자 유효통 등이 일반대중의 향약 채취와 활용을 위하여 1431년에 간행한에 간행한 의서. 의약서.
삼국시대 우리말을 차자로 완전히 기록할 수 있었던 표기법.
향찰 (鄕札)
삼국시대 우리말을 차자로 완전히 기록할 수 있었던 표기법.
1988년 구결(口訣)을 비롯한 차자표기(借字表記) 자료 전반을 연구하기 위하여 설립된 학술단체.
구결학회 (口訣學會)
1988년 구결(口訣)을 비롯한 차자표기(借字表記) 자료 전반을 연구하기 위하여 설립된 학술단체.
제2신라문서는 일본 나라시 도다이사 경내에 있는 쇼소원의 남창에서 나온 신라시대의 행정문서이다. ‘제이신라장적’, ‘신라출납장’, ‘신라공물문서단편’, ‘신라녹봉문서단편’이라고도 한다. 쇼소원 소장의 ‘제1신라문서’는 신라 서원경의 촌락문서이다. 제1신라문서가 755년(경덕왕 14)에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이 문서도 역시 8세기 중엽에 쓰여진 것으로 추측된다. 황갈색의 두터운 닥종이에 앞면에 4행, 뒷면에 4행이 묵서로 곡물 출입을 기록한 듯하다. 현재 신라시대의 행정문서는 이 둘뿐이므로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제2신라문서 (第二薪羅文書)
제2신라문서는 일본 나라시 도다이사 경내에 있는 쇼소원의 남창에서 나온 신라시대의 행정문서이다. ‘제이신라장적’, ‘신라출납장’, ‘신라공물문서단편’, ‘신라녹봉문서단편’이라고도 한다. 쇼소원 소장의 ‘제1신라문서’는 신라 서원경의 촌락문서이다. 제1신라문서가 755년(경덕왕 14)에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이 문서도 역시 8세기 중엽에 쓰여진 것으로 추측된다. 황갈색의 두터운 닥종이에 앞면에 4행, 뒷면에 4행이 묵서로 곡물 출입을 기록한 듯하다. 현재 신라시대의 행정문서는 이 둘뿐이므로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