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노영구"
검색결과 총 3건
북관대첩은 임진왜란 중인 1592년 9월부터 1593년 2월까지 함경도 북평사 정문부가 일본군 가토 기요마사가 점령한 함경도 북부지역을 수복한 전투이다. 가토가 이끄는 일본군이 회령에 오자 국경인 등이 반란을 일으켜 가토에게 투항하고 조선의 왕자를 넘겨주었고 일본군은 이들에게 명천 이북의 8곳을 맡겼다. 당시 경성에 있던 정문부는 군사를 모아 회령에서 국경인 등 반란세력을 처단하고 경성, 장평, 임명, 백탑교 등 네 곳에서 일본군과 싸워 승리했다. 이 전투는 조명연합군의 평양성 전투 승리와 함께 임진왜란의 국면을 조선에게 유리하게 이끌었다.
북관대첩 (北關大捷)
북관대첩은 임진왜란 중인 1592년 9월부터 1593년 2월까지 함경도 북평사 정문부가 일본군 가토 기요마사가 점령한 함경도 북부지역을 수복한 전투이다. 가토가 이끄는 일본군이 회령에 오자 국경인 등이 반란을 일으켜 가토에게 투항하고 조선의 왕자를 넘겨주었고 일본군은 이들에게 명천 이북의 8곳을 맡겼다. 당시 경성에 있던 정문부는 군사를 모아 회령에서 국경인 등 반란세력을 처단하고 경성, 장평, 임명, 백탑교 등 네 곳에서 일본군과 싸워 승리했다. 이 전투는 조명연합군의 평양성 전투 승리와 함께 임진왜란의 국면을 조선에게 유리하게 이끌었다.
『고대일록』은 조선시대 의병장 정경운이 1592년부터 1609년까지 소모관(召募官)으로 참여한 의병 활동 등을 기록한 일기이다. 4권 4책의 초서체 필사본인데 1900년대 해서체로 다시 필사되었다. 일기 형식으로 매해 정월 초하루의 기술에 있어서 『춘추』의 기술 방식을 모방하였다. 기아와 살육, 국토의 황폐 등 전쟁으로 인한 참상과 전쟁 기간 중 이순신, 김덕령 등 여러 장수들의 활동, 명나라 군대의 행패 등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함양 지역을 중심으로 한 경상 우도 지역의 임진왜란 당시의 의병 활동과 남명학파의 동향이 잘 나타나 있는 자료로서 가치가 높다.
고대일록 (孤臺日錄)
『고대일록』은 조선시대 의병장 정경운이 1592년부터 1609년까지 소모관(召募官)으로 참여한 의병 활동 등을 기록한 일기이다. 4권 4책의 초서체 필사본인데 1900년대 해서체로 다시 필사되었다. 일기 형식으로 매해 정월 초하루의 기술에 있어서 『춘추』의 기술 방식을 모방하였다. 기아와 살육, 국토의 황폐 등 전쟁으로 인한 참상과 전쟁 기간 중 이순신, 김덕령 등 여러 장수들의 활동, 명나라 군대의 행패 등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함양 지역을 중심으로 한 경상 우도 지역의 임진왜란 당시의 의병 활동과 남명학파의 동향이 잘 나타나 있는 자료로서 가치가 높다.
『성제도설』은 1794년 정조의 명을 받아 성곽 제도 및 조선과 중국의 성곽 현황에 대해 정리한 관찬서이다. 『성제도설』은 현재 전하지 않는다. 정조는 수원에 화성을 축조하기 전에 축성법, 성곽 제도, 중국과 조선의 성곽 현황을 조사하여 정리하도록 명령하였다. 『홍재전서』에 의하면 『성제도설』은 ‘성제론’ 및 ‘성제도’ 1권, ‘중국성제’ 1권, ‘동국성제’ 1권 등 세 권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성제도설』은 18세기 후반 화성 축조를 위한 기초 자료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 시기 조선의 성곽 제도와 그 수준을 잘 보여주는 자료로 의미가 크다.
성제도설 (城制圖說)
『성제도설』은 1794년 정조의 명을 받아 성곽 제도 및 조선과 중국의 성곽 현황에 대해 정리한 관찬서이다. 『성제도설』은 현재 전하지 않는다. 정조는 수원에 화성을 축조하기 전에 축성법, 성곽 제도, 중국과 조선의 성곽 현황을 조사하여 정리하도록 명령하였다. 『홍재전서』에 의하면 『성제도설』은 ‘성제론’ 및 ‘성제도’ 1권, ‘중국성제’ 1권, ‘동국성제’ 1권 등 세 권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성제도설』은 18세기 후반 화성 축조를 위한 기초 자료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 시기 조선의 성곽 제도와 그 수준을 잘 보여주는 자료로 의미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