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서종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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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교회는 한국천주교회 창설 시기부터 현대까지 충청도 내포지방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온 지역교회이다. 조선 후기 내포는 가야산 주변 12개 현을 포괄했다. 권일신을 통해 입교한 여사울 출신 이존창이 1784년 말에 처음 이 지역에 천주교를 전했다. 곧이어 점차 다른 곳으로 퍼져나가 각지에 신앙공동체가 형성되었다. 이후 내포교회는 다른 도로까지 복음을 전파했다. 박해 시대에 활동하던 신부들은 대부분 내포 지방에서 활동했다. 박해가 끝난 뒤 각지에 본당이 설립되고 교회가 본당과 교구 단위로 운영되면서 내포교회의 의미는 축소되었다.
내포교회 (內浦敎會)
내포교회는 한국천주교회 창설 시기부터 현대까지 충청도 내포지방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온 지역교회이다. 조선 후기 내포는 가야산 주변 12개 현을 포괄했다. 권일신을 통해 입교한 여사울 출신 이존창이 1784년 말에 처음 이 지역에 천주교를 전했다. 곧이어 점차 다른 곳으로 퍼져나가 각지에 신앙공동체가 형성되었다. 이후 내포교회는 다른 도로까지 복음을 전파했다. 박해 시대에 활동하던 신부들은 대부분 내포 지방에서 활동했다. 박해가 끝난 뒤 각지에 본당이 설립되고 교회가 본당과 교구 단위로 운영되면서 내포교회의 의미는 축소되었다.
신해박해는 1791년(정조 15) 전라도 진산에서 조상 제사 문제로 발생한 박해로, 신해사옥 또는 진산사건이라고도 한다. 진산의 윤지충이 모친의 상을 당해 외종형 권상연과 함께 신주를 불태우고 제사를 지내지 않아 체포되었고, 신앙을 증거하며 순교했다. 이로 인해 서울과 충청도에서도 박해가 일어났으나, 대부분의 신자들은 배교하고 풀려났다. 이 박해를 계기로 양반 신자들이 교회를 떠나고 중인 이하 신분층이 그들을 대신하게 되었으며, 천주교와 서양 과학기술에 대한 배척이 심화되었다.
신해박해 (辛亥迫害)
신해박해는 1791년(정조 15) 전라도 진산에서 조상 제사 문제로 발생한 박해로, 신해사옥 또는 진산사건이라고도 한다. 진산의 윤지충이 모친의 상을 당해 외종형 권상연과 함께 신주를 불태우고 제사를 지내지 않아 체포되었고, 신앙을 증거하며 순교했다. 이로 인해 서울과 충청도에서도 박해가 일어났으나, 대부분의 신자들은 배교하고 풀려났다. 이 박해를 계기로 양반 신자들이 교회를 떠나고 중인 이하 신분층이 그들을 대신하게 되었으며, 천주교와 서양 과학기술에 대한 배척이 심화되었다.
정사박해는 정사년인 1797년(정조 21)에, 충청도 남부 지역의 천주교 신자들을 대상으로 일어난 박해이다. 1795년부터 주문모 신부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1797년에 박해가 발생했다. 또 1790년대 충청도 지역 기근 책임을 신자들에게 돌린 것도 박해의 원인이 되었다. 박해로 100여 명이 희생됐으나, 8명만 그 사적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대부분 매를 맞고 순교했다. 정조의 교화주의 정책에 따라 관장들이 배교를 강요하면서 고문을 강화한 탓이다. 그들은 재산을 가난한 이웃들과 나누었고, 그들의 확고한 믿음은 끝내 순교로 이어졌다.
정사박해 (丁巳迫害)
정사박해는 정사년인 1797년(정조 21)에, 충청도 남부 지역의 천주교 신자들을 대상으로 일어난 박해이다. 1795년부터 주문모 신부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1797년에 박해가 발생했다. 또 1790년대 충청도 지역 기근 책임을 신자들에게 돌린 것도 박해의 원인이 되었다. 박해로 100여 명이 희생됐으나, 8명만 그 사적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대부분 매를 맞고 순교했다. 정조의 교화주의 정책에 따라 관장들이 배교를 강요하면서 고문을 강화한 탓이다. 그들은 재산을 가난한 이웃들과 나누었고, 그들의 확고한 믿음은 끝내 순교로 이어졌다.
조선 후기에, 『정산잡저』, 『심해』, 『정산고』 등을 저술한 학자.
이병휴 (李秉休)
조선 후기에, 『정산잡저』, 『심해』, 『정산고』 등을 저술한 학자.
교우촌은 박해 시기에 천주교인들이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위하여 산간벽지에 조성한 천주교 공동체이다. 교우촌이 형성되기 시작한 시기는 1791년 신해박해 이후이다. 교우촌들은 박해를 피하기 위해 여러 고을의 경계가 접한 깊은 산골에 자리 잡았다. 1836년 이후 선교사들은 교우촌을 공소로 설정하고 회장을 임명하거나 승인하였다. 1886년 한불조약 체결로 종교 자유가 묵인된 후, 신자들이 평야 지역이나 도시 지역에 본당을 설립하였다. 그리고 신자들이 성당 주변으로 이주해 감에 따라, 산간벽지의 교우촌들은 점차 그 의미나 기능을 상실하였다.
교우촌 (敎友村)
교우촌은 박해 시기에 천주교인들이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위하여 산간벽지에 조성한 천주교 공동체이다. 교우촌이 형성되기 시작한 시기는 1791년 신해박해 이후이다. 교우촌들은 박해를 피하기 위해 여러 고을의 경계가 접한 깊은 산골에 자리 잡았다. 1836년 이후 선교사들은 교우촌을 공소로 설정하고 회장을 임명하거나 승인하였다. 1886년 한불조약 체결로 종교 자유가 묵인된 후, 신자들이 평야 지역이나 도시 지역에 본당을 설립하였다. 그리고 신자들이 성당 주변으로 이주해 감에 따라, 산간벽지의 교우촌들은 점차 그 의미나 기능을 상실하였다.
청나라의 천주교 신자 선비 진광형(陳光瑩)이 천주교의 교리에 따라 성서·십자가·기도 등에 대해 서술한 천주교서.
부혹지언 (剖惑至言)
청나라의 천주교 신자 선비 진광형(陳光瑩)이 천주교의 교리에 따라 성서·십자가·기도 등에 대해 서술한 천주교서.
15세기 라틴어로 저술된 그리스도를 본받고자 하는 신심에 관한 천주교서.
준주성범 (遵主聖範)
15세기 라틴어로 저술된 그리스도를 본받고자 하는 신심에 관한 천주교서.
중국에서 활동하던 예수회 선교사 페르비스트가 주요 교리와 십계에 관해 설명한 교리서. 천주교교리서.
교요서론 (敎要序論)
중국에서 활동하던 예수회 선교사 페르비스트가 주요 교리와 십계에 관해 설명한 교리서. 천주교교리서.
조선후기부터 대한제국기까지 생존한 천주교인 김기호가 천주교 교리를 체계적이고 일상적인 예를 들어 비유, 설명한 강론조의 서술식 교리서. 천주교교리서.
구령요의 (救靈要義)
조선후기부터 대한제국기까지 생존한 천주교인 김기호가 천주교 교리를 체계적이고 일상적인 예를 들어 비유, 설명한 강론조의 서술식 교리서. 천주교교리서.
개항기 서울 용산 예수 성심학교에서 신학생들의 자기 성찰과 영성 교육을 위해 편찬한 한글 규칙서. 천주교 신심서.
사성찰 (私省察)
개항기 서울 용산 예수 성심학교에서 신학생들의 자기 성찰과 영성 교육을 위해 편찬한 한글 규칙서. 천주교 신심서.
중국에서 활동한 이탈리아 출신의 예수회 선교사 알레니(Giulio Aleni, 艾儒略, 1582~1649)가 한문으로 저술한 교리서. 천주교교리서.
삼산논학기 (三山論學記)
중국에서 활동한 이탈리아 출신의 예수회 선교사 알레니(Giulio Aleni, 艾儒略, 1582~1649)가 한문으로 저술한 교리서. 천주교교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