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안재석"
검색결과 총 15건
해방 이후 「진짜 진짜 좋아해」·「우리들의 고교시대」·「진짜 진짜 미안해」 등의 작품에 관여한 영화인. 영화감독.
문여송 (文如松)
해방 이후 「진짜 진짜 좋아해」·「우리들의 고교시대」·「진짜 진짜 미안해」 등의 작품에 관여한 영화인. 영화감독.
일제강점기 때, 「새출발」, 「조선해협」, 「병정님」 등에 출연한 배우·미술인·친일반민족행위자.
김인규 (金仁圭)
일제강점기 때, 「새출발」, 「조선해협」, 「병정님」 등에 출연한 배우·미술인·친일반민족행위자.
해방 이후 「인생역마차」를 시작으로 1,000여 편의 라디오드라마를 연출한 연출가. 라디오드라마연출가·음향효과기사.
이상만 (李相萬)
해방 이후 「인생역마차」를 시작으로 1,000여 편의 라디오드라마를 연출한 연출가. 라디오드라마연출가·음향효과기사.
해방 이후 국방부 군영화과 녹음실에서 책임자로 활동한 영화인. 녹음기사.
최칠복 (崔七福)
해방 이후 국방부 군영화과 녹음실에서 책임자로 활동한 영화인. 녹음기사.
일제강점기 충정로에 동양극장을 설립한 기업인.
홍순언 (洪淳彥)
일제강점기 충정로에 동양극장을 설립한 기업인.
백결(白潔) 시나리오, 이만희(李晩熙) 감독의 극영화.
휴일 (休日)
백결(白潔) 시나리오, 이만희(李晩熙) 감독의 극영화.
김영수(金永壽) 시나리오, 한형모(韓灐模) 감독의 극영화.
성벽을 뚫고 (城壁을 뚫고)
김영수(金永壽) 시나리오, 한형모(韓灐模) 감독의 극영화.
한우정(韓佑政) 시나리오, 이만희(李晩熙) 감독의 극영화.
칠인의 여포로 (七人의 女捕虜)
한우정(韓佑政) 시나리오, 이만희(李晩熙) 감독의 극영화.
안양촬영소는 수도영화사의 홍찬이 1957년 경기도 안양의 3만 3500평 대지에 건설한 촬영 스튜디오이다. 1950년대 후반 영화 제작 편수가 늘어남에 따라 기술 수준 개선이 필요하게 되어 건립하였다. 당시 동양 최대 규모였다. 스튜디오는 물론 식당, 변전실 등의 부대시설을 갖추었고 카메라 및 녹음시스템 등 다양한 최신식 기재들을 구비하였다. 그러나 홍찬은 첫 번째와 두 번째 영화의 흥행 실패로 부채를 떠안게 되었고 촬영소는 1959년 부도 처리되었다. 이후 신필름에 인수되어 1960년대 후반 연간 30여 편의 영화를 제작하였다.
안양촬영소 (安養撮影所)
안양촬영소는 수도영화사의 홍찬이 1957년 경기도 안양의 3만 3500평 대지에 건설한 촬영 스튜디오이다. 1950년대 후반 영화 제작 편수가 늘어남에 따라 기술 수준 개선이 필요하게 되어 건립하였다. 당시 동양 최대 규모였다. 스튜디오는 물론 식당, 변전실 등의 부대시설을 갖추었고 카메라 및 녹음시스템 등 다양한 최신식 기재들을 구비하였다. 그러나 홍찬은 첫 번째와 두 번째 영화의 흥행 실패로 부채를 떠안게 되었고 촬영소는 1959년 부도 처리되었다. 이후 신필름에 인수되어 1960년대 후반 연간 30여 편의 영화를 제작하였다.
영상시대는 영화 관련 인사들이 주축이 되어 결성된 단체로 1975년부터 약 3년간 진행한 ‘청년영화 운동’이다. 영화평론가 변인식, 영화감독 김호선, 이장호, 하길종, 홍파, 이원세가 주축이 되었다. 영화 제작은 물론 새로운 영화 인력의 발굴과 양성, 정기 영화 세미나 개최, 영화전문잡지 《영상시대》 발간 등의 활동을 펼쳤다. 이념보다는 예술을 중심에 둔 운동이며 동시대의 정신을 표현하려는 영화적 시도였다. 그러나 이들의 운동은 동시대 청년 관객들과의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면서 선언적 구호에 머물렀다.
영상시대 (映像時代)
영상시대는 영화 관련 인사들이 주축이 되어 결성된 단체로 1975년부터 약 3년간 진행한 ‘청년영화 운동’이다. 영화평론가 변인식, 영화감독 김호선, 이장호, 하길종, 홍파, 이원세가 주축이 되었다. 영화 제작은 물론 새로운 영화 인력의 발굴과 양성, 정기 영화 세미나 개최, 영화전문잡지 《영상시대》 발간 등의 활동을 펼쳤다. 이념보다는 예술을 중심에 둔 운동이며 동시대의 정신을 표현하려는 영화적 시도였다. 그러나 이들의 운동은 동시대 청년 관객들과의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면서 선언적 구호에 머물렀다.
1940~1990년대 국립영화제작소에서 제작했던 극장 상영용 16㎜ 뉴스 영화.
대한뉴스 (大韓News)
1940~1990년대 국립영화제작소에서 제작했던 극장 상영용 16㎜ 뉴스 영화.
이보라(李保羅) 시나리오, 박남옥(朴南玉) 감독의 극영화.
미망인 (未亡人)
이보라(李保羅) 시나리오, 박남옥(朴南玉) 감독의 극영화.
최독봉 시나리오, 양주남(梁柱南) 감독의 극영화.
미몽 (迷夢)
최독봉 시나리오, 양주남(梁柱南) 감독의 극영화.
해방 이후 『영화개론』·『한국영화전사』·『평전 한국영화인열전』 등을 저술한 작가.
이영일 (李英一)
해방 이후 『영화개론』·『한국영화전사』·『평전 한국영화인열전』 등을 저술한 작가.
해방 이후 「기쁜 우리 젊은 날」·「칠수와 만수」·「8월의 크리스마스」 등의 작품에 관여한 영화인. 촬영감독.
유영길 (劉永吉)
해방 이후 「기쁜 우리 젊은 날」·「칠수와 만수」·「8월의 크리스마스」 등의 작품에 관여한 영화인. 촬영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