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이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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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순은 대한제국기 소주방 궁녀이자 1971년 국가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 ‘조선왕조 궁중음식’ 기능 보유자이다. 1901년 덕수궁 주방 나인으로 입궁하여 궁녀로서 고종, 순종에 이어 순정효황후 윤씨까지 모시며 음식을 만들었다. 1955년부터는 궁중음식에 관한 강의와 저술 활동을 하였으며, 1971년에는 국가무형문화재 궁중음식 기능 보유자로 지정되면서 궁중음식 조리법을 세상에 알리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한희순 (韓熙順)
한희순은 대한제국기 소주방 궁녀이자 1971년 국가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 ‘조선왕조 궁중음식’ 기능 보유자이다. 1901년 덕수궁 주방 나인으로 입궁하여 궁녀로서 고종, 순종에 이어 순정효황후 윤씨까지 모시며 음식을 만들었다. 1955년부터는 궁중음식에 관한 강의와 저술 활동을 하였으며, 1971년에는 국가무형문화재 궁중음식 기능 보유자로 지정되면서 궁중음식 조리법을 세상에 알리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김숙년은 해방 이후 서울 반가 음식을 계승해 온 전통 요리 연구가이다. 조선 순조의 둘째 딸인 복온공주의 남편 창녕위 김병주의 후손이다. 조선 왕실과 반가의 친인척들 사이에서 음식을 배우고 익혔다. 40여 년 동안 교직 생활을 한 후 본격적으로 요리책 집필과 강연을 하며 서울 반가 음식 연구가로 활동하였다.
김숙년 (金淑年)
김숙년은 해방 이후 서울 반가 음식을 계승해 온 전통 요리 연구가이다. 조선 순조의 둘째 딸인 복온공주의 남편 창녕위 김병주의 후손이다. 조선 왕실과 반가의 친인척들 사이에서 음식을 배우고 익혔다. 40여 년 동안 교직 생활을 한 후 본격적으로 요리책 집필과 강연을 하며 서울 반가 음식 연구가로 활동하였다.
충북대학교 박물관은 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개신동에 위치한 국립 충북대학교 부속 박물관이다. 고고·미술 등에 관한 자료를 발굴·수집·전시하여 교육 연구자료를 제공하고 역사 문화의 이해를 돕고자 설치되었다. 1970년에 박물관이 설치된 이후 1977년 충북대학교 박물관으로 개칭되었다. 국가 지정 유산, 발굴 매장 유산 등을 포함하여 약 5만여 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김길통좌리공신교서’, ‘청주출토순천김씨의복및간찰’ 등이 있다. 충북대 박물관은 구석기시대 유물을 많이 소장하고 있으며 구석기문화의 성격 규명과 체계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충북대학교 박물관 (忠北大學校 博物館)
충북대학교 박물관은 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개신동에 위치한 국립 충북대학교 부속 박물관이다. 고고·미술 등에 관한 자료를 발굴·수집·전시하여 교육 연구자료를 제공하고 역사 문화의 이해를 돕고자 설치되었다. 1970년에 박물관이 설치된 이후 1977년 충북대학교 박물관으로 개칭되었다. 국가 지정 유산, 발굴 매장 유산 등을 포함하여 약 5만여 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김길통좌리공신교서’, ‘청주출토순천김씨의복및간찰’ 등이 있다. 충북대 박물관은 구석기시대 유물을 많이 소장하고 있으며 구석기문화의 성격 규명과 체계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국가의 음악통제정책의 일환으로 관변단체의 주도하에 창작되어 불려진 노래. 가정가요·국민가요·애국가요·관제가요.
건전가요 (健全歌謠)
국가의 음악통제정책의 일환으로 관변단체의 주도하에 창작되어 불려진 노래. 가정가요·국민가요·애국가요·관제가요.
국악의 장단이나 가락을 살려 대중이 쉽게 부를 수 있도록 만든 민요풍의 창작가요.
국악가요 (國樂歌謠)
국악의 장단이나 가락을 살려 대중이 쉽게 부를 수 있도록 만든 민요풍의 창작가요.
1930년대에 발흥했던 희극적 대중가요. 만곡·넌센스·코믹송·풍자곡.
만요 (漫謠)
1930년대에 발흥했던 희극적 대중가요. 만곡·넌센스·코믹송·풍자곡.
신민요는 조선 후기 이후에 새로 생긴 민요 및 민요풍의 창작가요이다. 이 용어는 1930년대 유성기 음반에서 ‘유행가’와 함께 갈래 용어로 사용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음반 판매 목적으로 만들어진 자본주의적 생산구조에 편입된 대중가요이다. 기존 민요와 달리 작곡가·작사자가 분명하고 특정 가수의 노래라는 인식이 가능하다. 신민요의 전성기는 1930년대 중반이다. 이 시기 대중들에게 널리 사랑받은 노래로는 〈노들강변〉·〈능수버들〉 등 다수가 있다. 해방 이후에는 민요 명창들의 가창 전승을 통해 〈꽃타령〉·〈진도아리랑〉 등이 전승되었다.
신민요 (新民謠)
신민요는 조선 후기 이후에 새로 생긴 민요 및 민요풍의 창작가요이다. 이 용어는 1930년대 유성기 음반에서 ‘유행가’와 함께 갈래 용어로 사용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음반 판매 목적으로 만들어진 자본주의적 생산구조에 편입된 대중가요이다. 기존 민요와 달리 작곡가·작사자가 분명하고 특정 가수의 노래라는 인식이 가능하다. 신민요의 전성기는 1930년대 중반이다. 이 시기 대중들에게 널리 사랑받은 노래로는 〈노들강변〉·〈능수버들〉 등 다수가 있다. 해방 이후에는 민요 명창들의 가창 전승을 통해 〈꽃타령〉·〈진도아리랑〉 등이 전승되었다.
해방의 기쁨과 독립의 감격을 표현한 노래.
해방가요 (解放歌謠)
해방의 기쁨과 독립의 감격을 표현한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