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정병모"
검색결과 총 28건
감모여재도는 유교의 제사 공간인 사당을 그려 놓은 그림이다. ‘감모여재’란 ‘조상을 사모하는 마음이 지극하여 그분들이 살아 계시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뜻이다. 이 그림은 대개 지방 제사를 위해 지방을 붙일 수 있는 위패가 그려져 있다. 형식은 크게 전각에 담장까지 둘러쳐져 있는 담장 전각형, 전각만 있는 전각형, 제단이 차려져 있는 전각 제단형이 있다. 19세기 말∼20세기 초에는 감모여재도와 화조화, 감모여재도와 산수화 등 다른 제재와 조합하는 형식이 유행하기도 하였다. 감모여재도는 유교식 제사를 서민들에게 퍼지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감모여재도 (感慕如在圖)
감모여재도는 유교의 제사 공간인 사당을 그려 놓은 그림이다. ‘감모여재’란 ‘조상을 사모하는 마음이 지극하여 그분들이 살아 계시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뜻이다. 이 그림은 대개 지방 제사를 위해 지방을 붙일 수 있는 위패가 그려져 있다. 형식은 크게 전각에 담장까지 둘러쳐져 있는 담장 전각형, 전각만 있는 전각형, 제단이 차려져 있는 전각 제단형이 있다. 19세기 말∼20세기 초에는 감모여재도와 화조화, 감모여재도와 산수화 등 다른 제재와 조합하는 형식이 유행하기도 하였다. 감모여재도는 유교식 제사를 서민들에게 퍼지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호렵도는 오랑캐의 수렵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궁중에서 청 황제의 가을 사냥에 대한 관심 속에서 제작되었다. 호렵도의 호자는 오랑캐라는 뜻으로 청나라에 대한 증오와 열망이 담겨 있다. 청을 증오하면서도 청을 배울 수밖에 없는 이중적인 의식이 이 그림을 탄생시켰다. 조선 정조 때 김홍도가 제작한 것이 호렵도의 시작이다. 궁중 화풍의 호렵도와 민화풍의 호렵도는 많은 수가 알려졌다. 「호렵도병풍」, 「수렵도병풍」, 「호렵도병풍」 등이 대표적이다. 원래 군사적 목적으로 제작되던 호렵도는 민간에 전해지며 액막이와 길상의 이미지로 바뀌었다.
호렵도 (胡獵圖)
호렵도는 오랑캐의 수렵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궁중에서 청 황제의 가을 사냥에 대한 관심 속에서 제작되었다. 호렵도의 호자는 오랑캐라는 뜻으로 청나라에 대한 증오와 열망이 담겨 있다. 청을 증오하면서도 청을 배울 수밖에 없는 이중적인 의식이 이 그림을 탄생시켰다. 조선 정조 때 김홍도가 제작한 것이 호렵도의 시작이다. 궁중 화풍의 호렵도와 민화풍의 호렵도는 많은 수가 알려졌다. 「호렵도병풍」, 「수렵도병풍」, 「호렵도병풍」 등이 대표적이다. 원래 군사적 목적으로 제작되던 호렵도는 민간에 전해지며 액막이와 길상의 이미지로 바뀌었다.
가죽이나 질긴 천에 여러가지 색의 안료를 묻혀서 그리는 그림. 비백서.
혁필화 (革筆畵)
가죽이나 질긴 천에 여러가지 색의 안료를 묻혀서 그리는 그림. 비백서.
호랑이와 까치를 소재로 하여 그린 그림을 말한다. 우리말로 ‘까치호랑이 그림’이라고도 한다. 호랑이는 탐관오리와 같이 힘과 권력있는 사람을 상징하고, 까치는 민초를 대표하는데, 호랑이는 바보스럽게 표현되고 까치는 당당하게 묘사되면서 호랑이가 까치에게 쩔쩔매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이는 신분간의 갈등문제를 우화적이고 풍자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작호도는 원래 중국에서 연원한 주제이지만, 다른 무엇보다도 조선화하고 서민화하여 오히려 한국 민화를 대표하는 주제로 탈바꿈했다.
작호도 (鵲虎圖)
호랑이와 까치를 소재로 하여 그린 그림을 말한다. 우리말로 ‘까치호랑이 그림’이라고도 한다. 호랑이는 탐관오리와 같이 힘과 권력있는 사람을 상징하고, 까치는 민초를 대표하는데, 호랑이는 바보스럽게 표현되고 까치는 당당하게 묘사되면서 호랑이가 까치에게 쩔쩔매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이는 신분간의 갈등문제를 우화적이고 풍자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작호도는 원래 중국에서 연원한 주제이지만, 다른 무엇보다도 조선화하고 서민화하여 오히려 한국 민화를 대표하는 주제로 탈바꿈했다.
책가도는 책을 비롯한 도자기·문방구·향로·청동기 등이 책가 안에 놓인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18세기 책을 통해 문치를 하려는 정조의 구상에서 시작되었다. 김홍도가 이 기법에 뛰어났다고 하는데 그의 책가도는 전하지 않는다. 장한종의 「책가도병풍」은 당시 도입된 서양화법인 선투시도법에 음영법이 사용하였다. 이형록의 「책가도」는 구도가 짜임새 있고 색채가 중후하며 표현이 매우 섬세하였다. 19세기에는 책가가 있는 책거리보다 책가가 없는 책거리가 더 성행했다. 책가도는 서민들에게까지 확산되면서 민화의 핵심적인 주제가 되었다.
책가도 (冊架圖)
책가도는 책을 비롯한 도자기·문방구·향로·청동기 등이 책가 안에 놓인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18세기 책을 통해 문치를 하려는 정조의 구상에서 시작되었다. 김홍도가 이 기법에 뛰어났다고 하는데 그의 책가도는 전하지 않는다. 장한종의 「책가도병풍」은 당시 도입된 서양화법인 선투시도법에 음영법이 사용하였다. 이형록의 「책가도」는 구도가 짜임새 있고 색채가 중후하며 표현이 매우 섬세하였다. 19세기에는 책가가 있는 책거리보다 책가가 없는 책거리가 더 성행했다. 책가도는 서민들에게까지 확산되면서 민화의 핵심적인 주제가 되었다.
궁궐이 아닌 민간의 생활상을 그린 그림. 속화.
풍속화 (風俗畵)
궁궐이 아닌 민간의 생활상을 그린 그림. 속화.
조선 후기의 화가 조영석(趙榮祏,1672-1728)이 그린 조영복의 초상화.
조영복 초상 (趙榮福 肖像)
조선 후기의 화가 조영석(趙榮祏,1672-1728)이 그린 조영복의 초상화.
전라남도 강진군 대구면 구수리 소재 구곡사(龜谷祠)에 있는 이재현과 이항복의 초상화.
강진 구곡사 소장 익재 이재현 상과 백사 이항복 상 (康津 龜谷詞 所藏 益齋 李齊賢 像과 白沙 李恒福 像)
전라남도 강진군 대구면 구수리 소재 구곡사(龜谷祠)에 있는 이재현과 이항복의 초상화.
조선 후기의 화가 이인상(李麟祥)이 검선(劒僊 : 당나라 신선)을 그린 도석인물화(道釋人物畫).
검선도 (劒僊圖)
조선 후기의 화가 이인상(李麟祥)이 검선(劒僊 : 당나라 신선)을 그린 도석인물화(道釋人物畫).
경기도 오산시 궐동 소재 궐리사(闕里祠)에 있는 중국의 철인이자 성인인 공자(孔子)의 행적을 도해한 글과 그림.
궐리사 성적도 (闕里祠 聖蹟圖)
경기도 오산시 궐동 소재 궐리사(闕里祠)에 있는 중국의 철인이자 성인인 공자(孔子)의 행적을 도해한 글과 그림.
조선 후기의 화가 조속(趙涑)이 김알지(金閼智)의 탄생 설화를 그린 고사인물화(故事人物畵).
금궤도 (金櫃圖)
조선 후기의 화가 조속(趙涑)이 김알지(金閼智)의 탄생 설화를 그린 고사인물화(故事人物畵).
효·숙종대의 학자이자 정치가인 박세채(朴世采, 1631-1695)를 그린 영정.
남계 박세채 영정 (南溪 朴世采 影幀)
효·숙종대의 학자이자 정치가인 박세채(朴世采, 1631-1695)를 그린 영정.
조선 후기의 화가 김홍도(金弘道)가 그린 도석인물화(道釋人物畫).
남해관음도 (南海觀音圖)
조선 후기의 화가 김홍도(金弘道)가 그린 도석인물화(道釋人物畫).
새해에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잡귀를 막기 위하여 문에 붙이는 그림.
문배 (門排)
새해에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잡귀를 막기 위하여 문에 붙이는 그림.
밀양의 명소 열두 곳의 경치를 그린 진경 산수화.
밀양 12경도 (密陽 十二景圖)
밀양의 명소 열두 곳의 경치를 그린 진경 산수화.
사명대사(四溟大師) 유정(惟政)이 강화정사로 일본에 상륙하였을 때의 행렬을 그린 기록화.
사명대사 일본상륙행렬도 팔곡병 (四溟大師 日本上陸行列圖 八曲屛)
사명대사(四溟大師) 유정(惟政)이 강화정사로 일본에 상륙하였을 때의 행렬을 그린 기록화.
사제첩은 조선 후기의 화가 조영석이 그린 화첩이다. 화가가 50대에 제작한 작품들을 그의 아들이 모아서 만들었다. 일상적 풍경을 그린 15점이 들어 있는데 풍속화·영모화·초충도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 작품들은 종이의 재질이나 크기가 다양하며 작품의 수준도 일정치 않다. 화첩 표지 왼쪽에 사향노루의 배꼽이라는 뜻의 ‘사제’라는 표제가 있다. 발문은 이병연(1671∼1751)이 썼다. 화첩 수록 그림 중 「새참」과 「목기 깍기」 등의 풍속화가 특히 주목된다. 18세기 전반의 작화 방법 및 풍속화가의 서민 삶에 대한 관심을 엿볼 수 있다.
사제첩 (麝臍帖)
사제첩은 조선 후기의 화가 조영석이 그린 화첩이다. 화가가 50대에 제작한 작품들을 그의 아들이 모아서 만들었다. 일상적 풍경을 그린 15점이 들어 있는데 풍속화·영모화·초충도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 작품들은 종이의 재질이나 크기가 다양하며 작품의 수준도 일정치 않다. 화첩 표지 왼쪽에 사향노루의 배꼽이라는 뜻의 ‘사제’라는 표제가 있다. 발문은 이병연(1671∼1751)이 썼다. 화첩 수록 그림 중 「새참」과 「목기 깍기」 등의 풍속화가 특히 주목된다. 18세기 전반의 작화 방법 및 풍속화가의 서민 삶에 대한 관심을 엿볼 수 있다.
성황신인 순천 김씨의 시조인 김총(金摠)을 그린 초상화.
성황신 김총 영정 (城隍神 金摠 影幀)
성황신인 순천 김씨의 시조인 김총(金摠)을 그린 초상화.
나이 70을 넘은 10인의 아회(雅會)를 그린 그림.
신말주 선생의 십로계첩 (申末舟 先生의 十老契帖)
나이 70을 넘은 10인의 아회(雅會)를 그린 그림.
조선 후기의 화가 김홍도(金弘道)가 그린 도석인물화(道釋人物畫).
염불서승도 (念佛西昇圖)
조선 후기의 화가 김홍도(金弘道)가 그린 도석인물화(道釋人物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