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정일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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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신당은 1997년 10월 10일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급조된 정당이다. 1998년 9월 28일 새정치국민회의와 통합하였다. 신한국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이회창에게 패한 이인제를 중심으로 창당하였다. 대선 패배 후 새정치국민회의와 합당했는데, 일부는 자유민주연합에 개별 입당하였다.
국민신당 (國民新黨)
국민신당은 1997년 10월 10일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급조된 정당이다. 1998년 9월 28일 새정치국민회의와 통합하였다. 신한국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이회창에게 패한 이인제를 중심으로 창당하였다. 대선 패배 후 새정치국민회의와 합당했는데, 일부는 자유민주연합에 개별 입당하였다.
새천년민주당은 2000년 1월 20일 김대중 대통령이 16대 총선에 대비해 국민회의를 확대 개편해 만든 정당이다. 2002년 16대 대선에서 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대통령 당선으로 집권 여당 재집권에 성공하였다. 그렇지만 2003년 ‘열린우리당’이 분열해 나가면서 야당이 되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인해 17대 총선에서 크게 패배하였다.
새천년민주당 (새千年民主黨)
새천년민주당은 2000년 1월 20일 김대중 대통령이 16대 총선에 대비해 국민회의를 확대 개편해 만든 정당이다. 2002년 16대 대선에서 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대통령 당선으로 집권 여당 재집권에 성공하였다. 그렇지만 2003년 ‘열린우리당’이 분열해 나가면서 야당이 되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인해 17대 총선에서 크게 패배하였다.
통합민주당은 1995년 12월 21일 민주당이 개혁신당과 통합하여 만든 정당이다. 1992년 제14대 대통령선거 낙선 직후 정계를 은퇴했던 김대중 아시아태평양평화재단 이사장은 정계에 복귀한 뒤 자신과 가까운 인사들을 민주당에서 탈당시켜 1995년 9월 5일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였다. 같은 해 12월 21일 민주당 잔류 인사들은 시민단체 계열의 개혁 신당과 합당하여 통합민주당을 창당하였다. 이후 제15대 대선을 앞둔 1997년 11월 24일 신한국당과 합당하여 한나라당을 창당하였다.
통합민주당 (統合民主黨)
통합민주당은 1995년 12월 21일 민주당이 개혁신당과 통합하여 만든 정당이다. 1992년 제14대 대통령선거 낙선 직후 정계를 은퇴했던 김대중 아시아태평양평화재단 이사장은 정계에 복귀한 뒤 자신과 가까운 인사들을 민주당에서 탈당시켜 1995년 9월 5일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였다. 같은 해 12월 21일 민주당 잔류 인사들은 시민단체 계열의 개혁 신당과 합당하여 통합민주당을 창당하였다. 이후 제15대 대선을 앞둔 1997년 11월 24일 신한국당과 합당하여 한나라당을 창당하였다.
개혁국민정당은 2002년 10월부터 2004년 9월까지 존속한 민주당 계열의 사회자유주의 성향 정당이다. 2002년 10월 20일 창당 발기인 대회를 개최하고 11월 16일 창당대회를 개최하였다. 범개혁 단일 세력 정당 추진과 정당 개혁이라는 장기 과제를 추구하며, 영호남 지역 구도 극복으로 한국 정치 지형을 바꾸고자 하였다. 2003년 11월 1일 당원들이 인터넷 투표를 통해 해산을 결의하고, 같은 달 11일 많은 당원들이 열린우리당에 입당하였다.
개혁국민정당 (改革國民政黨)
개혁국민정당은 2002년 10월부터 2004년 9월까지 존속한 민주당 계열의 사회자유주의 성향 정당이다. 2002년 10월 20일 창당 발기인 대회를 개최하고 11월 16일 창당대회를 개최하였다. 범개혁 단일 세력 정당 추진과 정당 개혁이라는 장기 과제를 추구하며, 영호남 지역 구도 극복으로 한국 정치 지형을 바꾸고자 하였다. 2003년 11월 1일 당원들이 인터넷 투표를 통해 해산을 결의하고, 같은 달 11일 많은 당원들이 열린우리당에 입당하였다.
열린우리당은 2003년 11월부터 2007년 8월까지 활동한 새천년민주당 계승 정당이다. 2003년 새천년민주당과 한나라당 탈당파들이 개혁국민정당과 합당하여 지역주의 타파, 깨끗한 정치, 정당 민주주의 실현을 내걸고 창당하였다.
열린우리당 (열린우리黨)
열린우리당은 2003년 11월부터 2007년 8월까지 활동한 새천년민주당 계승 정당이다. 2003년 새천년민주당과 한나라당 탈당파들이 개혁국민정당과 합당하여 지역주의 타파, 깨끗한 정치, 정당 민주주의 실현을 내걸고 창당하였다.
한겨레민주당은 1988년 3월부터 1991년 3월까지 3년간 존속한 진보적 대중 정당이다. 1988년 4월 26일 실시된 제13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1970 · 1980년대 민주화운동을 해오던 재야 인사들과 학생운동 · 사회운동의 중심에서 활동했던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결성하였다.
한겨레민주당 (한겨레民主黨)
한겨레민주당은 1988년 3월부터 1991년 3월까지 3년간 존속한 진보적 대중 정당이다. 1988년 4월 26일 실시된 제13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1970 · 1980년대 민주화운동을 해오던 재야 인사들과 학생운동 · 사회운동의 중심에서 활동했던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결성하였다.
친박연대는 2008년 3월 21일 친박근혜 세력들이 급조한 정당이다. 같은 해 4월 9일 치러질 제18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 공천에서 떨어진 정치인들은 박근혜와의 친분을 강조하면서 친박연대를 창당하였다. “박근혜 의원과 친하다”라는 뜻을 가진 당명을 사용하는 정당이 탄생한 것은 한국 정치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속칭 ‘박근혜당’이라 불릴 정도로 박근혜에 기댄 정당이었다.
친박연대 (親朴連帶)
친박연대는 2008년 3월 21일 친박근혜 세력들이 급조한 정당이다. 같은 해 4월 9일 치러질 제18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 공천에서 떨어진 정치인들은 박근혜와의 친분을 강조하면서 친박연대를 창당하였다. “박근혜 의원과 친하다”라는 뜻을 가진 당명을 사용하는 정당이 탄생한 것은 한국 정치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속칭 ‘박근혜당’이라 불릴 정도로 박근혜에 기댄 정당이었다.
노무현은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이다. 인권변호사로 활약하다가 정계에 입문하여 제13대, 제15대 국회의원직, 김대중 정부에서 제6대 해양수산부 장관직을 지냈다. 대통령 취임 후 '참여정부'로 명명하고 ‘국민과 함께하는 민주주의’, ‘더불어 사는 균형 발전 사회’,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 시대’를 추구하였다. 한·미 FTA와 이라크 파병 등 국익 중심 외교통상 정책을 펼쳤다.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열었다.
노무현 (盧武鉉)
노무현은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이다. 인권변호사로 활약하다가 정계에 입문하여 제13대, 제15대 국회의원직, 김대중 정부에서 제6대 해양수산부 장관직을 지냈다. 대통령 취임 후 '참여정부'로 명명하고 ‘국민과 함께하는 민주주의’, ‘더불어 사는 균형 발전 사회’,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 시대’를 추구하였다. 한·미 FTA와 이라크 파병 등 국익 중심 외교통상 정책을 펼쳤다.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