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민주당은 1988년 3월부터 1991년 3월까지 3년간 존속한 진보적 대중 정당이다. 1988년 4월 26일 실시된 제13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1970 · 1980년대 민주화운동을 해오던 재야 인사들과 학생운동 · 사회운동의 중심에서 활동했던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결성하였다.
1988년 4월 26일 실시된 제13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1970년대와 1980년대 민주화운동을 해오던 재야 인사들과 학생운동 · 사회운동의 중심에서 활동했던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3월 말 결성하여 1991년 3월까지 3년간 존속한 진보적 대중 정당이다.
1987년 12월 16일 치러진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양김’ [김영삼 28%, 김대중 27%] 분열로 민주정의당 노태우 후보가 36.6%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이에 범 진보 진영은 3김[김대중, 김영삼, 김종필]의 지역 할거 정치 및 민주정의당의 관권 정치에 저항하는 제3당을 구상한 결과 한겨레민주당이 탄생하였다.
1988년 2월 18일 치러진 창당 발기인 대회에는 출신별로 (재야) 예춘호, 김재훈, 문병란, 김승균, (정계) 조순형, 김도현, 홍성표, (법조계) 고영구, 정성철, (학계) 장을병, 이수인, 차상훈, (노동 · 농민 운동) 최병욱, 김병구, (지역 운동) 이강철, 임구호, 강구철, (학생운동) 유인태, 원혜영, 이근성을 포함해 각계 280여 명이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대표최고위원에는 예춘호가 선출되었다. 창당 전당 대회에서 '자주, 민주, 통일'을 핵심으로 하는 10대 강령과 5대 기본 정책을 채택하였다.
한겨레민주당의 주요 강령은 군부 독재 종식과 자주적인 민주 정부 수립, 독재 악법 철폐와 국민기본권 전면 보장, 자주 · 평화 · 민족 대단결 원칙에 입각한 남북 관계 개선 및 자주적 평화 통일, 민족 자립 경제 건설과 경제적 민주화, 분배의 불공평 해소 및 근로 대중의 생존권 보장, 주택 · 의료 · 보건 · 사회보장 등을 통한 국민의 생활 조건 개선, 민족 정기 함양을 위한 민족 교육 실시 및 교육제도의 민주화, 민족 문화 창달 및 문화 활동 보장, 평화 · 호혜 · 평등의 대외 정책 시행 및 자주적인 외교 노선 견지, 남녀 간 평등 실현 및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권익 신장 등이었다.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정당별 득표율과 의석 수[괄호 안은 지역구 의석 수]는 다음과 같다. 민주정의당 33.96% 127(87)석, 통일민주당 23.83% 59(46)석, 평화민주당 19.26% 70(54), 신민주공화당 15.59% 35(27), 한겨레민주당 1.28% 1(1), 민중의 당 0.33% 0으로 집계되었다.
1988년 4월 26일 치러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여당인 민주정의당 148석, 평화민주당 70석, 통일민주당 59석, 신민주공화당 35석을 얻었다. 민정당이 대선에서는 이겼지만 총선에서 패배하여 여소 야대 국면이 펼쳐지게 되었다. 한겨레민주당은 한 석을 얻었지만 당선되자마자 평민당에 입당하였다.
한겨레민주당은 민주화 이후 제도 정치권에 본격적으로 도전한 최초의 진보 지향 대중 정당이다. 체계적인 정강과 정책 구축 그리고 인적 구성을 통해 선거 공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그리하여 사회운동 세력의 정치 세력화와 진보 정당 형성의 가능성을 타진하였다. 그렇지만 앞의 총선 결과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제13대 총선 결과를 통해 드러난 득표 수와 의석 수라는 현실적인 지표를 볼 때 성공한 도전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1990년 1월 3당 합당[민주정의당 · 통일민주당 · 신민주공화당]으로 민주자유당이 탄생하였다. 여소 야대 국면이 거대 여당 대 소수 야당 구도로 바뀐 것이다. 총선 후 민중 정당 건설과 민주 연합 결성이라는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추구하던 범진보 진영은 급변한 정세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놓고 분열하였다.
범진보 진영은 반민자당 민주 세력 연합 정당을 주장하는 세력[선통합파]과 노동자 계급 중심의 계급 연합 정당을 주장하는 세력[선창당파]으로 나뉜 것이다. 두 입장은 정치적 대립 전선, 제도 야당과의 관계 설정, 추진할 정당의 성격과 중심 세력 등 여러 사안에 대해 견해가 달랐다.
선통합파는 대립 전선을 ‘민주 대 반민주’ 구도로 보고 '민주 연합 정당론'을 주장한 반면, 선창당파는 ‘보수 대 혁신’ 구도로 보고 '독자 정당론'을 주장하였다. 전자는 야당과의 연합으로 역량을 강화하고자 했지만, 후자는 독자적 정치 세력화가 우선이라고 보았다. 민주대연합의 통일 전선체를 추구하는 정치 세력과 진보 정당 중심의 계급연합 세력 구축을 주장하는 입장으로 나뉜 것이다.
한겨레민주당의 좌절은 사회 구조적으로 볼 때 확장된 정치 기회 구조와 미성숙한 시민 사회 사이의 괴리에서 기인한다. 다른 한편, 정치 사회 참여 전략을 놓고 재야 정치권, 사회 운동권, 그리고 노동 운동권이 분열하여 대립함으로써 진보 정치 세력의 역량을 결집하지 못한 것도 간과할 수 없는 실패 요인이다. 비록 한겨레민주당이 총선에서 실패하고 소멸했지만, 이후 전개된 사회 운동의 정치 세력화와 진보 정치 운동의 출발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