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한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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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회동 한씨 가옥은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있는 절충식 한옥으로, 일제강점기에 일본의 중낭하형(中廊下型) 주택에서 영향을 받아 공간을 구성한 근대 한옥이다. 이 집은 동서로 긴 경사지 부지에 서쪽의 낮은 곳부터 행랑채(대문채), 본채, 정원 등 세 영역을 담 또는 건물과 뚜렷이 구분해 차례로 배치하였다. 본채는 대문에서 바로 보이는 중앙에 현관이 덧달려 나 있고 현관의 안쪽으로 복도를 설치해 사랑채와 안채를 하나의 건물로 구성하였다. 그리고 이 집은 유리와 벽돌 등 새로운 재료를 사용해 근대 한옥의 외관을 갖추었다.
가회동 한씨 가옥 (嘉會洞 韓氏 家屋)
가회동 한씨 가옥은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있는 절충식 한옥으로, 일제강점기에 일본의 중낭하형(中廊下型) 주택에서 영향을 받아 공간을 구성한 근대 한옥이다. 이 집은 동서로 긴 경사지 부지에 서쪽의 낮은 곳부터 행랑채(대문채), 본채, 정원 등 세 영역을 담 또는 건물과 뚜렷이 구분해 차례로 배치하였다. 본채는 대문에서 바로 보이는 중앙에 현관이 덧달려 나 있고 현관의 안쪽으로 복도를 설치해 사랑채와 안채를 하나의 건물로 구성하였다. 그리고 이 집은 유리와 벽돌 등 새로운 재료를 사용해 근대 한옥의 외관을 갖추었다.
구례 운조루 고택은 조선 후기에 건립된, 전라남도 구례군에 있는 한옥이다. 1776년(영조 52)에 유이주가 지었다고 하는데 그 터가 금환락지(金環落地)라는 명당자리이다. 행랑채, 사랑채, 튼ㅁ자형을 이룬 안채 · 안 행랑채 · 중간 사랑채, 그리고 사당채로 이루어졌는데 모든 채는 앞에 마당을 두고 있다. 이 집은 조선 후기 양반집의 건축 형식을 잘 보여 주는데 사랑채와 중간 사랑채에 누마루를 설치하는 등 생활 양식에 잘 대응하도록 공간을 독특하게 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구례 운조루 고택 (求禮 雲鳥樓 古宅)
구례 운조루 고택은 조선 후기에 건립된, 전라남도 구례군에 있는 한옥이다. 1776년(영조 52)에 유이주가 지었다고 하는데 그 터가 금환락지(金環落地)라는 명당자리이다. 행랑채, 사랑채, 튼ㅁ자형을 이룬 안채 · 안 행랑채 · 중간 사랑채, 그리고 사당채로 이루어졌는데 모든 채는 앞에 마당을 두고 있다. 이 집은 조선 후기 양반집의 건축 형식을 잘 보여 주는데 사랑채와 중간 사랑채에 누마루를 설치하는 등 생활 양식에 잘 대응하도록 공간을 독특하게 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명성황후 생가는 조선 후기에 지어져서 경기도 여주시에 남아 있는 한옥이다. 이 집은 1687년에 지어졌으며, 본래 묘막으로 사용되었다. 이 집에서 명성황후가 태어나 8세 때까지 살았다. 앞에 긴 일자형 행랑채가 있고 그 뒤로 ㄱ자형 안채와 ㄴ자형 사랑채가 튼 ㅁ자형 배치를 이룬다. 안채의 뒤란에는 장독대와 변소가 있고 사랑채 옆에 초가인 별당채가 있다. 이 집은 조선 후기 일반적인 양반 가옥의 배치와 건축 양식을 보여 준다. 그러나 안채의 몸채와 날개채에 각각 큰 저장 공간을 마련한 것에서 애초의 용도인 묘막의 특징을 볼 수 있다.
명성황후 생가 (明成皇后 生家)
명성황후 생가는 조선 후기에 지어져서 경기도 여주시에 남아 있는 한옥이다. 이 집은 1687년에 지어졌으며, 본래 묘막으로 사용되었다. 이 집에서 명성황후가 태어나 8세 때까지 살았다. 앞에 긴 일자형 행랑채가 있고 그 뒤로 ㄱ자형 안채와 ㄴ자형 사랑채가 튼 ㅁ자형 배치를 이룬다. 안채의 뒤란에는 장독대와 변소가 있고 사랑채 옆에 초가인 별당채가 있다. 이 집은 조선 후기 일반적인 양반 가옥의 배치와 건축 양식을 보여 준다. 그러나 안채의 몸채와 날개채에 각각 큰 저장 공간을 마련한 것에서 애초의 용도인 묘막의 특징을 볼 수 있다.
영동 영모재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충청북도 영동군에 있는 재실이다. 1826년 남주한이 지은 고성 남씨의 재실이다. 마을길에 면한 곳에 대문채와 재실이 앞뒤로 나란히 북서향으로 배치되었다. 앞에 대문채를 두고 옆(남쪽)에 협문을 설치했으며 한식 토석담으로 부지 주변을 둘렀다. 대문채는 세 칸 집인데 가운데 칸에 솟을대문을 설치했다. 재실은 낮은 자연석 기단 위에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로 지어졌다. 가운데 2칸 대청을 중심으로 양쪽에 각 한 칸의 온돌방으로 구성되었다. 영모재는 전통 온돌의 구조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
영동 영모재 (永同 永慕齋)
영동 영모재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충청북도 영동군에 있는 재실이다. 1826년 남주한이 지은 고성 남씨의 재실이다. 마을길에 면한 곳에 대문채와 재실이 앞뒤로 나란히 북서향으로 배치되었다. 앞에 대문채를 두고 옆(남쪽)에 협문을 설치했으며 한식 토석담으로 부지 주변을 둘렀다. 대문채는 세 칸 집인데 가운데 칸에 솟을대문을 설치했다. 재실은 낮은 자연석 기단 위에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로 지어졌다. 가운데 2칸 대청을 중심으로 양쪽에 각 한 칸의 온돌방으로 구성되었다. 영모재는 전통 온돌의 구조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
음성 공산정 고택은 조선 후기에 건립된 충청북도 음성군에 있는 한옥이다. 각각 ㄱ자형인 안채와 사랑채가 안마당을 둘러싸는 튼ㅁ자형 배치를 이루는데, 실들 앞에는 툇마루를 설치해서 실과 마당이 긴밀히 연결되도록 하였다. 생활의 필요에 따라서 툇간을 반침, 골방 등 수납 공간이나 함실 등 부속 공간으로 조성하기도 하였다. 높은 툇마루와 부엌 위 다락에서 볼 수 있듯이 공간을 입체적으로 구성해 효율적으로 활용한 것도 이 주택의 특징이다.
음성 공산정 고택 (陰城 公山亭 古宅)
음성 공산정 고택은 조선 후기에 건립된 충청북도 음성군에 있는 한옥이다. 각각 ㄱ자형인 안채와 사랑채가 안마당을 둘러싸는 튼ㅁ자형 배치를 이루는데, 실들 앞에는 툇마루를 설치해서 실과 마당이 긴밀히 연결되도록 하였다. 생활의 필요에 따라서 툇간을 반침, 골방 등 수납 공간이나 함실 등 부속 공간으로 조성하기도 하였다. 높은 툇마루와 부엌 위 다락에서 볼 수 있듯이 공간을 입체적으로 구성해 효율적으로 활용한 것도 이 주택의 특징이다.
논산 백일헌 종택(論山 白日軒 宗宅)은 조선 후기에 건축된 충청남도 논산시에 있는 백일헌 이삼 장군의 주택이다. 이 주택은 1728년(영조 4)에 일어난 이인좌의 난을 평정하는 데 기여한 이삼 장군의 공에 대해 영조가 내린 하사금으로 지은 것이라고 전한다. 논산 백일헌 종택은 경사지의 부정형 대지에 안채와 두 채의 사랑채, 그리고 광채를 ㅁ자형으로 구성한, 긴장감 있는 변격(變格)의 한옥으로 국가 민속 문화재(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어 있다.
논산 백일헌 종택 (論山 白日軒 宗宅)
논산 백일헌 종택(論山 白日軒 宗宅)은 조선 후기에 건축된 충청남도 논산시에 있는 백일헌 이삼 장군의 주택이다. 이 주택은 1728년(영조 4)에 일어난 이인좌의 난을 평정하는 데 기여한 이삼 장군의 공에 대해 영조가 내린 하사금으로 지은 것이라고 전한다. 논산 백일헌 종택은 경사지의 부정형 대지에 안채와 두 채의 사랑채, 그리고 광채를 ㅁ자형으로 구성한, 긴장감 있는 변격(變格)의 한옥으로 국가 민속 문화재(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어 있다.
일산 밤가시 초가는 조선 후기에 지어진, 경기도 고양시 일산 동구에 있는 민가이다. 주로 밤나무를 이용해 건축하였고, 안마당을 중심으로 ㄱ자형 안채와 ㄴ자형 문간채가 연결되어 ㅁ자형 배치를 이루며, 안마당 위를 비우고 초가지붕을 똬리 모양으로 이었다. 안채는 본래는 봉당이었던 대청을 중심으로 안방, 건넌방, 사랑방으로 구성된 몸채에 안방 쪽에서 부엌이 돌출한 ㄱ자형이다. 문간채는 남쪽 중간에 대문간이 있고 그 오른쪽으로 꺾여 창고와 변소가 이어져 ㄴ자를 이룬다. 조선 후기 서민의 생활상과 민가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 주는 집이다.
일산 밤가시 초가 (一山 밤가시 草家)
일산 밤가시 초가는 조선 후기에 지어진, 경기도 고양시 일산 동구에 있는 민가이다. 주로 밤나무를 이용해 건축하였고, 안마당을 중심으로 ㄱ자형 안채와 ㄴ자형 문간채가 연결되어 ㅁ자형 배치를 이루며, 안마당 위를 비우고 초가지붕을 똬리 모양으로 이었다. 안채는 본래는 봉당이었던 대청을 중심으로 안방, 건넌방, 사랑방으로 구성된 몸채에 안방 쪽에서 부엌이 돌출한 ㄱ자형이다. 문간채는 남쪽 중간에 대문간이 있고 그 오른쪽으로 꺾여 창고와 변소가 이어져 ㄴ자를 이룬다. 조선 후기 서민의 생활상과 민가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 주는 집이다.
장흥 존재고택은 조선 후기에 지은 전라남도 장흥군에 있는 한옥이다. 조선의 실학자 존재 위백규의 고택으로 종가이며, 안채, 사랑채, 문간채, 헛간채가 장방형의 안마당을 둘러싸는 튼ㅁ자형의 배치이다. 겹집 구성으로 많은 공간을 확보한 점, 안채와 사랑채를 근접시켜 원활하게 연결되도록 한 점, 그리고 집의 앞뒤에 풍부한 조경을 한 점 등이 이 집의 특징이다.
장흥 존재고택 (長興 存齋古宅)
장흥 존재고택은 조선 후기에 지은 전라남도 장흥군에 있는 한옥이다. 조선의 실학자 존재 위백규의 고택으로 종가이며, 안채, 사랑채, 문간채, 헛간채가 장방형의 안마당을 둘러싸는 튼ㅁ자형의 배치이다. 겹집 구성으로 많은 공간을 확보한 점, 안채와 사랑채를 근접시켜 원활하게 연결되도록 한 점, 그리고 집의 앞뒤에 풍부한 조경을 한 점 등이 이 집의 특징이다.
정선 수고당고택은 조선 후기에 지은 강원도 정선군에 있는 한옥이다. 조선 숙종 때 이조판서를 역임한 이자가 고향으로 돌아와 지은 집으로, 안채는 1677년, 별채는 1683년에 지어졌다. 이 집은 ㄱ자형 안채와 ㄱ자형 행랑채(중문간채), 그리고 일자형 사랑채가 튼ㅁ자형의 배치를 이루며, 사랑채 앞(서쪽)에 별당인 수고당이 위치한다. 이 고택은 겹집 구성과 고미반자 등 영동과 영서 지방의 지역적 특성을 잘 보여주는 양반 주택이다. 이 고택에는 국가민속문화유산인 외재 이단하 내외분의 옷이 보관되어 있다.
정선 수고당고택 (旌善 守孤堂古宅)
정선 수고당고택은 조선 후기에 지은 강원도 정선군에 있는 한옥이다. 조선 숙종 때 이조판서를 역임한 이자가 고향으로 돌아와 지은 집으로, 안채는 1677년, 별채는 1683년에 지어졌다. 이 집은 ㄱ자형 안채와 ㄱ자형 행랑채(중문간채), 그리고 일자형 사랑채가 튼ㅁ자형의 배치를 이루며, 사랑채 앞(서쪽)에 별당인 수고당이 위치한다. 이 고택은 겹집 구성과 고미반자 등 영동과 영서 지방의 지역적 특성을 잘 보여주는 양반 주택이다. 이 고택에는 국가민속문화유산인 외재 이단하 내외분의 옷이 보관되어 있다.
충주 윤양계 고택은 조선 후기에 건립된 충청북도 충주시에 있는 한옥이다. 앞으로는 하천이 흐르고 뒤로는 나지막한 산이 둘러싼 대지에 위치한 이 집은 문간채, 안채, 사랑채, 아래채, 사당채, 광채 등 여러 채로 구성된다. 안채와 사랑채, 아래채 등 주요 채들이 대지의 중앙에 위치하고 사방에 외부 공간을 두었다. 안채와 아래채는 ㄱ자형 집이고 사랑채는 일자형인데, 채와 마당이 잘 대응하도록 각 채의 공간을 구성했다. 이러한 배치와 유연한 공간 구성을 통해 19세기 후반의 생활 방식과 주거 공간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엿볼 수 있다.
충주 윤양계 고택 (忠州 尹養桂 古宅)
충주 윤양계 고택은 조선 후기에 건립된 충청북도 충주시에 있는 한옥이다. 앞으로는 하천이 흐르고 뒤로는 나지막한 산이 둘러싼 대지에 위치한 이 집은 문간채, 안채, 사랑채, 아래채, 사당채, 광채 등 여러 채로 구성된다. 안채와 사랑채, 아래채 등 주요 채들이 대지의 중앙에 위치하고 사방에 외부 공간을 두었다. 안채와 아래채는 ㄱ자형 집이고 사랑채는 일자형인데, 채와 마당이 잘 대응하도록 각 채의 공간을 구성했다. 이러한 배치와 유연한 공간 구성을 통해 19세기 후반의 생활 방식과 주거 공간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엿볼 수 있다.
남양주 동관댁은 조선 후기에 지어진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한옥이다.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일자형 문간채, 일자형 사랑채, T자형 안채와 문간채, 사당채가 각각 그에 대응하는 마당과 함께 이루는 다양한 영역으로 구성되었다. 이 집은 지형에 순응해 안채, 사랑채, 문간채, 사당채 영역을 가급적 횡방향으로 정연하게 구성한 한옥으로, 18세기 한옥 본래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어 국가민속문화재(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남양주 동관댁 (南楊州 東官宅)
남양주 동관댁은 조선 후기에 지어진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한옥이다.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일자형 문간채, 일자형 사랑채, T자형 안채와 문간채, 사당채가 각각 그에 대응하는 마당과 함께 이루는 다양한 영역으로 구성되었다. 이 집은 지형에 순응해 안채, 사랑채, 문간채, 사당채 영역을 가급적 횡방향으로 정연하게 구성한 한옥으로, 18세기 한옥 본래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어 국가민속문화재(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청주 고은리 고택(淸州 高隱里 古宅)은 조선 후기에 지어진 충청북도 청주시에 있는 한옥이다. 1861년에 지어졌는데, 안채를 제외한 건물들은 1930년대에 다시 지어졌다. 마을의 가장 안쪽, 야산으로 둘러싸인 대지에 안채, 사랑채, 행랑채, 곳간채, 광채가 배치되었다. 이 집은 영역 구성과 채의 위계 등이 한옥의 격식을 갖추었으며, 툇간으로 생활 공간을 확대하고 곡물 수납 공간을 여유있게 구비한 부농의 주택으로 가치가 있다.
청주 고은리 고택 (淸州 高隱里 古宅)
청주 고은리 고택(淸州 高隱里 古宅)은 조선 후기에 지어진 충청북도 청주시에 있는 한옥이다. 1861년에 지어졌는데, 안채를 제외한 건물들은 1930년대에 다시 지어졌다. 마을의 가장 안쪽, 야산으로 둘러싸인 대지에 안채, 사랑채, 행랑채, 곳간채, 광채가 배치되었다. 이 집은 영역 구성과 채의 위계 등이 한옥의 격식을 갖추었으며, 툇간으로 생활 공간을 확대하고 곡물 수납 공간을 여유있게 구비한 부농의 주택으로 가치가 있다.
남원 죽산박씨 종가는 조선 후기에 지어진,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에 있는 한옥이다. 고려 말의 충신 박문수(朴門壽)의 후손들이 모여 사는 안홈실 마을에 지어진 종가로, 안채는 1841년(헌종 7)에 지어졌고, 사랑채는 18세기 말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경사지에 안채, 사랑채, 문간채가 남서향으로 배치됐고 안채 뒤 높은 곳에 남향의 부조묘(不祧廟)가 있다. 사랑채는 일자형, 안채는 ㄷ자형 건물이다. 남원 죽산박씨 종가는 전통 마을인 안홈실 마을을 대표하는 전통 한옥이며, 박문수의 부조묘가 있어 역사적 의미가 큰 문화 자산이다.
남원 죽산박씨 종가 (南原 竹山朴氏 宗家)
남원 죽산박씨 종가는 조선 후기에 지어진,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에 있는 한옥이다. 고려 말의 충신 박문수(朴門壽)의 후손들이 모여 사는 안홈실 마을에 지어진 종가로, 안채는 1841년(헌종 7)에 지어졌고, 사랑채는 18세기 말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경사지에 안채, 사랑채, 문간채가 남서향으로 배치됐고 안채 뒤 높은 곳에 남향의 부조묘(不祧廟)가 있다. 사랑채는 일자형, 안채는 ㄷ자형 건물이다. 남원 죽산박씨 종가는 전통 마을인 안홈실 마을을 대표하는 전통 한옥이며, 박문수의 부조묘가 있어 역사적 의미가 큰 문화 자산이다.
성주 한개마을은 경상북도 성주군에 있는 조선 전기 진주목사 이우 관련 마을이다. 2007년 국가민속문화재(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한개마을은 조선 세종 때 이우가 1450년경에 입향하였다. 이후 560여 년을 내려오면서 씨족마을로 번성하며 성산이씨 네 파가 모여 살고 있다. 한개마을은 다섯 개의 작은 마을들이 하나의 큰 마을을 이루는 구조이다. 마을은 엄격한 원칙에 따라 조성되었는데 여성의 공간이 폐쇄적인 점이 특징적이다. 마을의 대표적인 전통가옥인 하회댁은 1750년경에 지어졌다. 현재 경상북도 문화재로 지정된 건축물은 9개 동이다.
성주 한개마을 (星州 한개마을)
성주 한개마을은 경상북도 성주군에 있는 조선 전기 진주목사 이우 관련 마을이다. 2007년 국가민속문화재(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한개마을은 조선 세종 때 이우가 1450년경에 입향하였다. 이후 560여 년을 내려오면서 씨족마을로 번성하며 성산이씨 네 파가 모여 살고 있다. 한개마을은 다섯 개의 작은 마을들이 하나의 큰 마을을 이루는 구조이다. 마을은 엄격한 원칙에 따라 조성되었는데 여성의 공간이 폐쇄적인 점이 특징적이다. 마을의 대표적인 전통가옥인 하회댁은 1750년경에 지어졌다. 현재 경상북도 문화재로 지정된 건축물은 9개 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