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허인욱"
검색결과 총 22건
문공원은 고려 전기, 수사공·서경유수사·문하시랑동평장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본관은 남평(南平)이고 좌산기상시(左散騎常侍) 문익(文翼)의 아들이다. 예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수사공·서경유수사·문하시랑동평장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의종 묘정(廟庭)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정경(貞敬)이다.
문공원 (文公元)
문공원은 고려 전기, 수사공·서경유수사·문하시랑동평장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본관은 남평(南平)이고 좌산기상시(左散騎常侍) 문익(文翼)의 아들이다. 예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수사공·서경유수사·문하시랑동평장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의종 묘정(廟庭)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정경(貞敬)이다.
문관은 고려 전기, 이부상서 수사공 참지정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본관은 정선(旌善)이고 태자소부(太子少傅)를 지낸 문임간(文林幹)의 아들이다. 청렴, 정직하고 관후하였으며 관직에 있을 때는 절도를 지켜 칭송받았다. 시호는 장경(章敬)이다.
문관 (文冠)
문관은 고려 전기, 이부상서 수사공 참지정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본관은 정선(旌善)이고 태자소부(太子少傅)를 지낸 문임간(文林幹)의 아들이다. 청렴, 정직하고 관후하였으며 관직에 있을 때는 절도를 지켜 칭송받았다. 시호는 장경(章敬)이다.
문정은 고려 전기, 동여진을 정벌한 공신이자 사학 십이도의 하나인 정헌공도를 세운 문신이다. 고려 전기에 추충찬화탕구정새공신에 책록된 공신으로, 형부상서·참지정사를 역임하였고 중서시랑평장사를 거쳐 수태위 문하시중으로 치사하였다. 사학(私學)을 일으켜서 십이도(十二徒)의 하나인 정헌공도(貞獻公徒)를 세웠다. 선종 묘정에 배향되었으며, 시호는 정헌(貞獻)이다.
문정 (文正)
문정은 고려 전기, 동여진을 정벌한 공신이자 사학 십이도의 하나인 정헌공도를 세운 문신이다. 고려 전기에 추충찬화탕구정새공신에 책록된 공신으로, 형부상서·참지정사를 역임하였고 중서시랑평장사를 거쳐 수태위 문하시중으로 치사하였다. 사학(私學)을 일으켜서 십이도(十二徒)의 하나인 정헌공도(貞獻公徒)를 세웠다. 선종 묘정에 배향되었으며, 시호는 정헌(貞獻)이다.
박경인은 고려 전기에 서북면병마사·상서좌복야·참지정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본관은 평산(平山), 초명은 박경작이며, 아버지는 참지정사를 지낸 박인량이다. 어려서부터 학문에 힘써 경적에 두루 통달하였으며, 과거에 급제한 뒤에 주로 간쟁과 문한의 직을 맡아 이름을 떨쳤다. 시호는 장간(章簡)이다.
박경인 (朴景仁)
박경인은 고려 전기에 서북면병마사·상서좌복야·참지정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본관은 평산(平山), 초명은 박경작이며, 아버지는 참지정사를 지낸 박인량이다. 어려서부터 학문에 힘써 경적에 두루 통달하였으며, 과거에 급제한 뒤에 주로 간쟁과 문한의 직을 맡아 이름을 떨쳤다. 시호는 장간(章簡)이다.
박승중은 고려 전기에 『해동비록』, 『시정책요』 등을 편찬한 문신이다. 본관은 무안(務安)이며, 현종 때 남행호종공신(南幸扈從功臣)인 박섬의 증손이다. 이자겸의 당여가 되어 참지정사를 거쳐 수태위·중서시랑평장사를 역임하였으나, 1126년(인종 4) 이자겸이 몰락하자 간관의 탄핵을 받고 울진으로 유배되었다.
박승중 (朴昇中)
박승중은 고려 전기에 『해동비록』, 『시정책요』 등을 편찬한 문신이다. 본관은 무안(務安)이며, 현종 때 남행호종공신(南幸扈從功臣)인 박섬의 증손이다. 이자겸의 당여가 되어 참지정사를 거쳐 수태위·중서시랑평장사를 역임하였으나, 1126년(인종 4) 이자겸이 몰락하자 간관의 탄핵을 받고 울진으로 유배되었다.
박인량은 고려 전기에 『고금록』, 『수이전』 등을 저술한 문신이다. 개국공신인 박수경의 현손(玄孫)이다. 문종 때 과거에 급제하여 문한의 여러 벼슬을 거쳤다. 그가 저술한 천독(天牘)·표(表)·장(狀)·시 등은 동행하였던 김근의 시문과 함께 『소화집』이라는 이름으로 송에서 간행되어 중국에까지 그 문명을 날리었다. 시호는 문열(文烈)이다.
박인량 (朴寅亮)
박인량은 고려 전기에 『고금록』, 『수이전』 등을 저술한 문신이다. 개국공신인 박수경의 현손(玄孫)이다. 문종 때 과거에 급제하여 문한의 여러 벼슬을 거쳤다. 그가 저술한 천독(天牘)·표(表)·장(狀)·시 등은 동행하였던 김근의 시문과 함께 『소화집』이라는 이름으로 송에서 간행되어 중국에까지 그 문명을 날리었다. 시호는 문열(文烈)이다.
신숙은 고려 전기에 우간의대부, 지문하성사, 참지정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고려 인종과 의종대의 문신으로, 경서를 널리 배웠으며 청렴하고 충직한 것으로 이름이 났다. 우간의대부, 지문하성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참지정사로 치사하였다가 1160년(의종 14) 7월에 사망하였다.
신숙 (申淑)
신숙은 고려 전기에 우간의대부, 지문하성사, 참지정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고려 인종과 의종대의 문신으로, 경서를 널리 배웠으며 청렴하고 충직한 것으로 이름이 났다. 우간의대부, 지문하성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참지정사로 치사하였다가 1160년(의종 14) 7월에 사망하였다.
『왕대종록』은 고려 의종 때 검교군기감을 역임한 김관의가 고려 왕실에 관해 서술한 역사서이다. 모두 두 권으로 되어 있었다고 하나 현재 전하지 않는다. 단편적인 기록들을 통해 『왕대종록』에는 왕실의 혼인·생자(生子)·즉위 등에 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왕대종록 (王代宗錄)
『왕대종록』은 고려 의종 때 검교군기감을 역임한 김관의가 고려 왕실에 관해 서술한 역사서이다. 모두 두 권으로 되어 있었다고 하나 현재 전하지 않는다. 단편적인 기록들을 통해 『왕대종록』에는 왕실의 혼인·생자(生子)·즉위 등에 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의종은 고려 전기 제18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1146~1170년이며 인종의 맏아들이다. 1170년 서경에서 신령을 반포하여 실추된 왕실의 권위를 회복하고 왕조를 중흥시키고자 했다. 하지만 유교적 정치이념보다는 불교·음양설·선풍 등을 중요시하여 문신세력들의 심한 제약 속에 구체적인 성과를 낳지 못했다. 왕권과 문신세력의 대립·갈등은 정치·사회적 혼란을 초래했고 종국에는 무신정변을 발생시켰다. 1170년 정중부 등의 정변으로 폐위되어 거제현에 유배되었다. 1173년(명종 3)에 김보당의 거병이 실패하자 이의민에 의해 살해되었다.
의종 (毅宗)
의종은 고려 전기 제18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1146~1170년이며 인종의 맏아들이다. 1170년 서경에서 신령을 반포하여 실추된 왕실의 권위를 회복하고 왕조를 중흥시키고자 했다. 하지만 유교적 정치이념보다는 불교·음양설·선풍 등을 중요시하여 문신세력들의 심한 제약 속에 구체적인 성과를 낳지 못했다. 왕권과 문신세력의 대립·갈등은 정치·사회적 혼란을 초래했고 종국에는 무신정변을 발생시켰다. 1170년 정중부 등의 정변으로 폐위되어 거제현에 유배되었다. 1173년(명종 3)에 김보당의 거병이 실패하자 이의민에 의해 살해되었다.
인종은 고려 전기 제17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1122~1146년이며, 예종의 장자로 이자겸 등에 의해 15세에 왕위에 올랐다. 국자감의 학제를 정비하고, 각 주현에 향약을 설립해 지방교육을 진작시켰으며, 서적소 설치를 통해 유학의 부흥에 힘썼다. 이자겸, 척준경 등의 모반을 진압하였다. 묘청·정지상·백수한 등이 주장한 서경길지설에 공감하여 한때 서경천도의 뜻을 품었다. 서경천도가 무산되면서 묘청 등이 반란을 일으키자 김부식을 서경정토원수로 삼아 평정하였다. 이후 김부식 등에게 관찬 사서인 『삼국사기』를 편찬하게 하였다.
인종 (仁宗)
인종은 고려 전기 제17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1122~1146년이며, 예종의 장자로 이자겸 등에 의해 15세에 왕위에 올랐다. 국자감의 학제를 정비하고, 각 주현에 향약을 설립해 지방교육을 진작시켰으며, 서적소 설치를 통해 유학의 부흥에 힘썼다. 이자겸, 척준경 등의 모반을 진압하였다. 묘청·정지상·백수한 등이 주장한 서경길지설에 공감하여 한때 서경천도의 뜻을 품었다. 서경천도가 무산되면서 묘청 등이 반란을 일으키자 김부식을 서경정토원수로 삼아 평정하였다. 이후 김부식 등에게 관찬 사서인 『삼국사기』를 편찬하게 하였다.
임원준은 고려 전기에 추밀원사, 참지정사, 평장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재상이다. 본관은 정안이고 예종 때 중서시랑평장사를 지낸 임의의 아들이다. 추밀원사, 참지정사, 평장사 등을 역임하였다. 1122년(예종 17) 한안인의 당여로 지목되어 유배당하기도 하였으며, 1132년(인종 10)에는 어사대부로 과거의 시제에 잘못을 지적하기도 하였다. 평장사로 치사하였다가 1147년(의종 1) 사망하였다.
임원준 (任元濬)
임원준은 고려 전기에 추밀원사, 참지정사, 평장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재상이다. 본관은 정안이고 예종 때 중서시랑평장사를 지낸 임의의 아들이다. 추밀원사, 참지정사, 평장사 등을 역임하였다. 1122년(예종 17) 한안인의 당여로 지목되어 유배당하기도 하였으며, 1132년(인종 10)에는 어사대부로 과거의 시제에 잘못을 지적하기도 하였다. 평장사로 치사하였다가 1147년(의종 1) 사망하였다.
임의는 고려 전기에 문하시랑평장사, 한림원, 지공거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본관은 정안(定安)이며 자는 충공(忠恭)이다. 상서공부원외랑 임호의 아들이다. 학문이 뛰어나 사관과 한림원을 역임하였고, 지공거를 거쳤다. 문하시랑평장사로 치사하였다가 1117년(예종 12) 사망하였다. 시호는 정경(貞敬)이다.
임의 (任懿)
임의는 고려 전기에 문하시랑평장사, 한림원, 지공거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본관은 정안(定安)이며 자는 충공(忠恭)이다. 상서공부원외랑 임호의 아들이다. 학문이 뛰어나 사관과 한림원을 역임하였고, 지공거를 거쳤다. 문하시랑평장사로 치사하였다가 1117년(예종 12) 사망하였다. 시호는 정경(貞敬)이다.
허재는 고려 전기에 참지정사, 중서시랑 동중서문하평장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109년(예종 4) 길주성을 여러 달 지키고 여진족을 물리치는 데 공을 세웠으며, 3차에 걸쳐 동북면·서북면의 병마사를 역임하였다. 인종 초에 이자겸과 척준경의 편에 섰다가 이자겸 실각 후 풍주방어사로 좌천되었다가 호부상서로 치사하였다.
허재 (許載)
허재는 고려 전기에 참지정사, 중서시랑 동중서문하평장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109년(예종 4) 길주성을 여러 달 지키고 여진족을 물리치는 데 공을 세웠으며, 3차에 걸쳐 동북면·서북면의 병마사를 역임하였다. 인종 초에 이자겸과 척준경의 편에 섰다가 이자겸 실각 후 풍주방어사로 좌천되었다가 호부상서로 치사하였다.
헌종은 고려 전기의 제14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1094년부터 1095년까지이다. 즉위 초에는 어려서 태후가 군국대사를 청정하였다. 이자의 난 이후에 계림공 왕희, 즉 숙종에게 폐위되었다. 왕위에서 물러난지 2년 뒤에 사망하였다. 능은 개성에 위치한 온릉이다.
헌종 (獻宗)
헌종은 고려 전기의 제14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1094년부터 1095년까지이다. 즉위 초에는 어려서 태후가 군국대사를 청정하였다. 이자의 난 이후에 계림공 왕희, 즉 숙종에게 폐위되었다. 왕위에서 물러난지 2년 뒤에 사망하였다. 능은 개성에 위치한 온릉이다.
황주량은 고려 전기에 지공거, 상서좌승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한림원과 사관의 요직을 역임하며 3차례나 지공거를 맡았다. 거란과의 전쟁 후에 『칠대실록』 36권을 주관하여 편찬하였다. 귀화한 여진인에 대해 본속법에 의한 처벌을 주장하였다.
황주량 (黃周亮)
황주량은 고려 전기에 지공거, 상서좌승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한림원과 사관의 요직을 역임하며 3차례나 지공거를 맡았다. 거란과의 전쟁 후에 『칠대실록』 36권을 주관하여 편찬하였다. 귀화한 여진인에 대해 본속법에 의한 처벌을 주장하였다.
관오는 고려 전기 자은종 현화사의 승통 상지에게 출가한 후 승계가 수좌에 오른 승려이다. 수주최씨 최계방의 둘째 아들이며, 숙부인 현화사의 승통 상지에게 출가하였다. 천성이 엄숙하면서도 온화하였는데, 혜덕왕사 소현이 체계를 정비한 자은종을 이끌었으며, 예종·인종·의종 세 임금의 우대를 받았다.
관오 (觀奧)
관오는 고려 전기 자은종 현화사의 승통 상지에게 출가한 후 승계가 수좌에 오른 승려이다. 수주최씨 최계방의 둘째 아들이며, 숙부인 현화사의 승통 상지에게 출가하였다. 천성이 엄숙하면서도 온화하였는데, 혜덕왕사 소현이 체계를 정비한 자은종을 이끌었으며, 예종·인종·의종 세 임금의 우대를 받았다.
고영창은 고려 전기 요나라에서 발해 광복운동을 벌인 발해의 유민이다. 1116년(예종 11) 정월에 동경유수 소보선의 학정에 시달리던 발해 유민들과 요양부를 점령하고 대발해국을 세웠다. 10여일 만에 요동의 50여 주를 차지하기도 하였으나, 5월 말 금의 장수가 이끄는 여진군에 의해 요양부가 함락된 후 장송도에서 피해갔다가 금 군사에게 잡혀 살해당했다.
고영창 (高永昌)
고영창은 고려 전기 요나라에서 발해 광복운동을 벌인 발해의 유민이다. 1116년(예종 11) 정월에 동경유수 소보선의 학정에 시달리던 발해 유민들과 요양부를 점령하고 대발해국을 세웠다. 10여일 만에 요동의 50여 주를 차지하기도 하였으나, 5월 말 금의 장수가 이끄는 여진군에 의해 요양부가 함락된 후 장송도에서 피해갔다가 금 군사에게 잡혀 살해당했다.
공예태후는 고려의 제17대 왕이며, 인종의 왕비이다. 그녀는 인종의 후비(后妃)이자, 의종(毅宗)·명종(明宗)·신종(神宗)의 모후이기도 하다. 성씨는 임씨(任氏)이고, 본관은 정안(定安)이며, 아버지는 중서령 임원후(任元厚), 어머니는 문하시중 이위(李瑋)의 딸이다. 1126년(인종 4) 18세의 나이로 인종과 혼인하였는데, 연덕궁주(延德宮主)로 불리다가 1127년(인종 5)에 장남인 의종을 출산하였다. 1129년(인종 7)에 왕비로 책봉되었으며, 1183년(명종 13) 향년 75세로 사망하였다.
공예태후 (恭睿太后)
공예태후는 고려의 제17대 왕이며, 인종의 왕비이다. 그녀는 인종의 후비(后妃)이자, 의종(毅宗)·명종(明宗)·신종(神宗)의 모후이기도 하다. 성씨는 임씨(任氏)이고, 본관은 정안(定安)이며, 아버지는 중서령 임원후(任元厚), 어머니는 문하시중 이위(李瑋)의 딸이다. 1126년(인종 4) 18세의 나이로 인종과 혼인하였는데, 연덕궁주(延德宮主)로 불리다가 1127년(인종 5)에 장남인 의종을 출산하였다. 1129년(인종 7)에 왕비로 책봉되었으며, 1183년(명종 13) 향년 75세로 사망하였다.
묘청의 난은 1135년(인종 13), 묘청 등이 서경(西京: 지금의 평양)에서 일으킨 반란이다. 승려 묘청을 비롯하여 문신 정지상(鄭知常), 일자(日者)인 백수한(白壽翰) 등 서경인들을 주축으로 하는 일군의 세력이 당시 이자겸(李資謙)의 난으로 야기된 정치적 혼란을 틈타 지리 도참설을 근거로 삼아 개경에서 서경으로의 천도를 주장하고 칭제건원(稱帝建元), 금국정벌(金國征伐)까지 주장하였다. 그러나 개경 조정의 반대에 부딪치자 서경을 중심으로 반란을 일으켰다. 묘청 등의 반란은 김부식이 이끄는 개경 토벌군에 의해 진압되었다.
묘청의 난 (妙淸의 亂)
묘청의 난은 1135년(인종 13), 묘청 등이 서경(西京: 지금의 평양)에서 일으킨 반란이다. 승려 묘청을 비롯하여 문신 정지상(鄭知常), 일자(日者)인 백수한(白壽翰) 등 서경인들을 주축으로 하는 일군의 세력이 당시 이자겸(李資謙)의 난으로 야기된 정치적 혼란을 틈타 지리 도참설을 근거로 삼아 개경에서 서경으로의 천도를 주장하고 칭제건원(稱帝建元), 금국정벌(金國征伐)까지 주장하였다. 그러나 개경 조정의 반대에 부딪치자 서경을 중심으로 반란을 일으켰다. 묘청 등의 반란은 김부식이 이끄는 개경 토벌군에 의해 진압되었다.
일리천전투는 936년(태조 19) 지금의 경상북도 구미 지방에서 고려와 후백제 사이에 있었던 대규모 전투이다. 이 전투는 고려와 후백제, 신라 간의 전쟁을 종식시킨 후삼국시대 최후의 전투였다. 936년 일선군(一善郡: 지금의 경상북도 구미시 일대)에서 일리천(一利川)을 사이에 두고 고려군과 후백제군이 전투를 벌여 고려군의 일방적인 압승으로 끝이 났다. 이 전투에서의 승리로 인하여 태조 왕건은 후삼국을 통일할 수 있었다.
일리천전투 (一利川戰鬪)
일리천전투는 936년(태조 19) 지금의 경상북도 구미 지방에서 고려와 후백제 사이에 있었던 대규모 전투이다. 이 전투는 고려와 후백제, 신라 간의 전쟁을 종식시킨 후삼국시대 최후의 전투였다. 936년 일선군(一善郡: 지금의 경상북도 구미시 일대)에서 일리천(一利川)을 사이에 두고 고려군과 후백제군이 전투를 벌여 고려군의 일방적인 압승으로 끝이 났다. 이 전투에서의 승리로 인하여 태조 왕건은 후삼국을 통일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