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락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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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로의 노계집 중 독락당
박인로의 노계집 중 독락당
고전시가
작품
조선 중기에 박인로(朴仁老)가 지은 가사.
내용 요약

「독락당」은 조선 중기에 박인로(朴仁老)가 지은 가사이다. 총 123행으로, 박인로가 지은 가사 가운데 최장편이다. 「독락당」은 회재 이언적 선생의 제사를 받드는 옥산서원 뒤편에 있는 사랑채이다. 박인로는 이언적(李彦迪)의 유적인 옥산서원의 독락당을 찾아가 그를 사모하는 심회와 주변 경치를 읊었다. 박인로의 문집 『노계집』 권3에 실려 있다. 박인로의 가사에는 성현의 치세에 대한 동경이 나타난 것과 현실과 이상이 합치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작자의 고민이 표출되어 있다. 「독락당」은 선현을 사모하고 추앙하는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목차
정의
조선 중기에 박인로(朴仁老)가 지은 가사.
내용

『노계집(蘆溪集)』권3에 실려 있다. 3음보 혹은 4음보를 1행으로 헤아려 총 123행으로, 박인로가 지은 가사 가운데 최장편이다. 주제는 작자가 이언적(李彦迪)의 유적인 경주 옥산서원(玉山書院)의 독락당을 찾아가 그를 사모하는 심회와 주변 경치를 읊은 것이다.

이 작품은 내용상 크게 10단락으로 구분된다. 첫째 단락에서는 임진왜란을 당해 주1로서 여가 없이 분주하다가, 늙어서야 비로소 오랜만에 독락당을 찾으니 산봉우리는 빼어나 주자(朱子)가 살던 무이산(武夷山)과 같고, 흐르는 물은 감돌아 정이(程頤)가 살던 이천(伊川)과 같다고 하였다.

둘째 단락에서는 신라 천년 고려 오백 년 사이에도 성현군자는 많았는데, 이러한 명승지를 하늘이 감추어서 이언적에게 준 것은 주2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셋째 단락에서는 독락당의 유한한 경치와, 한가하고 고요한 가운데 잠겨 생각하고 깨닫던 이언적의 모습을 안증(顔曾: 공자의 제자인 顔回와 曾參)과 유하(游夏: 공자의 제자인 子游와 子夏)를 좌우에 거느린 공자에 비유하였다.

넷째 단락에서는 이황(李滉)의 친필이 담긴 양진암(養眞庵)과 관어대(觀魚臺) 반석(盤石) 위에 남은 이언적의 지팡이와 신발 자국, 손수 심은 큰 소나무를 대하니 마치 지란실(芝蘭室)에 들어간 듯하다고 읊었다.

다섯째 단락에서는 병풍 같은 층암절벽, 하늘과 구름이 비친 백척징담(百尺澄潭), 저녁 안개에 잠긴 청계조기(淸溪釣磯)의 묘사를 통해 벼슬에서 물러나 자연과 더불어 유유자적하던 이언적의 자취를 더듬었다.

여섯째 단락에서는 영귀대(詠歸臺)의 아름다운 경치에 풍영이귀(風詠而歸)한 증석(曾晳: 曾子의 아버지)의 옛일을 생각하고, 자연(紫烟) 비낀 폭포를 보며 여산(廬山)에 비기고, 징심대(澄心臺) 맑은 물에 가슴속이 새로워짐을 느꼈다. 탁영대(濯纓臺)를 보고는 속세에서 부귀공명을 어지럽게 다투는 속인들을 생각하고 개탄하고 있다.

일곱째 단락에서는 사자암(獅子巖)에 올라 도덕산(道德山)을 바라보며, 이언적의 덕망이 구슬이 쌓여 빛을 머금고 있는 듯하다고 추앙하고, 이백(李白)의 시를 빌려 이언적을 봉(鳳)에 비겨 봉새 날아간 빈 산에 두견새만 저녁에 운다고 하여, 그가 가고 없는 쓸쓸함을 노래하였다. 또한, 선생의 자취를 천태산(天台山)과 무릉도원에 비겨 신선으로 받들면서 해질 무렵까지 돌아갈 줄 모르는 간절한 사모의 정을 그렸다.

여덟째 단락에서는 독락당에 다시 올라 이언적의 풍채와 덕행을 다시금 추앙하고 독서 소리가 이어졌던 서원의 번성함을 읊었다. 동방의 군자인 그가 직설(稷契)과 같은 충성으로 주3의 성시를 이루려 했는데 불행히도 을사사화에 연루되어 강계(江界)로 귀양가게 되었음을 슬퍼하고, 적소에서도 끼친 감화가 깊어 선비들의 추앙을 받고 사당까지 세우게 되었다고 말하였다.

아홉째 단락에서는 구인당(求仁堂)에 올라가 체인묘(軆仁廟)의 엄숙함을 보고 동방의 문물을 한(漢) · 당(唐) · 송(宋)에 비유, 주자가 살던 자양운곡(紫陽雲谷)이 바로 여기라고 감탄하였다. 세심대(洗心臺) 물에는 덕택(德澤)이 지금도 이어 흐르는 듯하고, 용추(龍湫) 깊은 곳에는 신물(神物)조차 잠겨 있는 듯, 그의 무궁한 덕화력(德化力)은 기이한 하늘의 조화와 함께 어울린 듯하다는 느낌을 말하였다.

달포를 머물면서 그의 문집을 살펴보고, 그것이 모두 성현의 말이어서 일월같이 밝으므로 밤길에 촛불 잡고 가는 것 같다고 하였다. 끝으로 열 번째 단락에서는 이언적의 주4을 가슴깊이 새겨 그를 오래도록 주5처럼 추앙하고자 하였다.

일반적으로 박인로의 가사에는 성현의 치세에 대한 동경이 나타난 것과, 현실과 이상이 합치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작자의 고민이 함께 표출되어 있다. 이 작품은 전자에 속하는 것으로 선현을 사모하고 추앙하는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참고문헌

『노계집(蘆溪集)』
『조선 전기 사대부 가사』(최현재, 문학동네, 2012)
『노계시가연구』(이상보, 이우출판사, 1978)
『송강·노계·고산의 시가문학』(박성의, 현암사, 1966)
『개고 박노계연구』(이상보, 일지사, 1962)
「박인로론」(정재호, 『한국문학작가론』, 형설출판사, 1977)
주석
주1

용맹스러운 사내. 우리말샘

주2

모든 물건은 제각기 임자가 있다는 뜻으로, 어떤 물건이라도 아무 손에나 되는대로 들어가는 것이 아님을 이르는 말. 우리말샘

주3

중국 고대의 임금인 도당씨(陶唐氏) 요(堯)와 유우씨(有虞氏) 순(舜)을 아울러 이르는 말. 중국 역사에서 이상적인 태평 시대로 꼽힌다. 우리말샘

주4

죽은 사람이 남긴 훈계. 우리말샘

주5

태산(泰山)과 북두칠성을 아울러 이르는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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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최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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