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특급시는 우리나라의 중부 서해안에 있는 북한의 시다. 북동쪽은 북한 강원도 철원군, 북쪽은 황해북도 토산군·금천군, 서쪽은 예성강을 사이에 두고 황해남도 배천군, 동남쪽은 군사분계선을 경계로 경기도 연천군·파주군과 접해 있다. 본래 경기도 개성부·장단군·개풍군에 속했다. 1945년 8월 15일 분단되면서 이북 지역인 개풍군의 일부 면과 장단군의 일부 면이 합쳐져 장풍군이 되었다. 2003년 황해북도로 편입하고, 개성특급시로 명칭을 변경했다. 개성은 고려시대의 도읍지로 고려자기를 비롯한 수공업과 상업의 중심지이자 중부 지역의 교통 요지이다.
북동쪽은 강원도(북한) 철원군, 북쪽은 황해북도 토산군 · 금천군, 서쪽은 예성강을 사이에 두고 황해남도 배천군, 동남쪽은 군사분계선을 경계로 경기도 연천군 · 파주군과 접하여 있다.
동경 126°23′∼126°58′, 북위 37°46′∼38°14′에 위치하며, 면적은 11,211㎢, 인구 44만여 명(1996년 현재)이다. 본래 경기도 개성부 · 장단군 · 개풍군에 속하였으나, 1945년 8월 15일 국토가 분단되면서 38선 이북지역인 개풍군의 영북면 · 영남면 · 북면과 장단군의 강상면 · 대남면 · 소남면 · 대강면 · 장도면 등이 합쳐져 장풍군이 되었다.
삼국시대 초기에는 백제의 영역, 이후 고구려 지역을 거쳐 신라의 영역이 되었다. 따라서 행정구역 변천과정이 매우 복잡하고 그에 따라 명칭도 다양하다. 백제 시기에 개성지방은 청목산, 청목령으로 불리었다. 개성이 송악산을 의미하는 청목산, 청목령과 같이 산 이름으로 알려진 것이었다. 그 이유로는 이 지역이 삼국시대 고구려와 백제의 접경지대로서 군사작전이 많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성(城)과 같은 군사시설이 설치된 지점의 이름들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된다. 개성의 고구려 때 지명은 ‘부소갑’과 ‘동비홀’이다. 개성의 지명이 이처럼 두 가지로 불린 것은 삼국시대에 개성이 두 개의 다른 지역으로 갈라져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부소갑’은 ‘부소압’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모두 ‘송악산’을 의미한다. ‘동비홀’은 ‘도비구루’, ‘두비구루’에 대해 음역(音譯)한 것으로 ‘개성’을 의미한다. 후기 신라 시기에 ‘부소압’은 ‘송악산’, ‘동비홀’은 ‘개성군’으로 불렀다.
시의 북부 경계에는 아호비령산맥의 말단부인 천마산맥이 뻗어 있고, 여기에 수용산(716m) · 천마산(762m) · 화장산(558m) 등이 솟아 있다.
지형은 남서부쪽으로 갈수록 낮아져 시의 서부 및 남부지역에는 풍덕 · 삼성 · 신광평야 등 넓은 평야들이 펼쳐져 있으며, 북쪽 외곽에는 송악산(489m)이 있고, 그 남쪽에는 개성분지가 놓여 있다.
시의 남부경계에는 한강 · 임진강 · 예성강이 합류하고, 시내에는 임진강의 지류인 사천강과 사미천 등이 흐른다. 기반암은 시생대 · 하부원생대 · 하부고생대 지층과 중생대 관입암인 화강암이며, 금 · 납 · 아연 · 형석 · 석회석 · 고령토 등의 지하자원이 있다. 토양의 대부분은 적갈색 산림토이며, 하천유역에는 충적토와 염류토가 분포한다.
기후는 대체로 온난 습윤하며, 기온은 연평균기온 10.3℃, 1월 평균기온 -5.9℃, 8월 평균기온 24.7℃이다. 첫서리는 10월 중순에, 마감서리는 4월 중순에 내리며, 연평균 강우량은 1,300∼1,400㎜이다. 산림은 군 넓이의 55%이며, 그 중 소나무림이 80%를 차지한다.
여기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개성백송(북한 천연기념물 제390호)이 있다. 이 일대는 북방 및 남방계의 동물들이 혼생하는 곳으로 그 종류가 다양하여 포유류는 30여 종, 조류는 250여 종이 넘는다. 크낙새와 개풍학은 천연기념물로 보호되고 있다.
고려시대 919년에 수도가 되면서 개성과 송악이 통합되어 개주(開州)로 되었다. 그 후 개성은 개경(開京), 황도(皇都), 황성(皇城), 경도(京都) 등으로 불렸다. 조선시대에는 주로 송도(松都), 송경(松京), 중경(中京), 개성이라고 불렸다. 1396년에 수도가 한양으로 옮겨갔다. 1914년에 경기도 개성군 송도면으로 되었고, 개성군 안의 12개 리가 13개 정으로 고쳐졌다.
1930년에 송도면의 시내 지역은 개성부로 개편되고, 송도면의 나머지 지역과 주변의 면들이 풍덕군이 통합되어 개풍군(開豊郡)이 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경기도 개성부 개풍군, 장단군과 연천군의 일부 지역이 속해 있었다. 1949년 38선 이남인 개성부가 개성시가 되었다. 1950년 6·25전쟁 후 장단군의 장남면 · 진동면 · 군내면 일부를 제외한 전지역이 군사분계선 이북의 북한 관할 하에 들어가면서 개풍군이 개성시에 포함되고, 개풍군과 장풍군의 일부로 판문군이 신설되었다.
1954년 이들 지역이 황해북도에 이관되었다가 1955년 개성시 · 개풍군 · 판문군이 합쳐져 개성직할시가 되었으며, 1960년 황해북도에 속했던 장풍군과 강원도 철원군 일부가 편입되었다. 2003년에는 황해북도로 편입되고 개성특급시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아울러 판문군이 폐지되고, 개풍군과 장풍군(長豊郡)이 분리되었다. 또 개성특급시 일부와 구 판문군 일부를 합쳐, 개성공업지구를 신설하였다.
광복 후 개성은 현대적인 문화 · 관광도시로 발전하였다. 개성에는 한옥 보존거리가 설치되어 있으며, 다양한 형식의 주택과 건물, 통일거리 등을 통해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개성은 농업생산에 유리한 지형 · 기후 · 토양 등의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다. 특히, 농업 발전을 위하여 송도저수지 · 묵산저수지 · 옥련저수지 · 동창저수지 · 선적저수지 등 18개의 저수지와 150여 개의 양수장 외에 수백 개의 보를 축조하여 수리체계를 확립하였다.
농경지는 시 넓이의 27%를 차지하며, 곡물은 쌀 · 옥수수 · 콩 · 밀 · 보리 등이 생산된다. 그 중 쌀은 총 곡물 생산량의 60%를 차지하며, 개풍군 · 판문군에서 70% 이상이 생산된다. 그 밖에 채소 재배 · 축산 · 양잠업을 비롯하여 배 · 복숭아 · 사과 · 감 · 추리 등의 과수 재배가 활발하다. 특히 복숭아는 개성의 특산물로서 흰복숭아가 유명하며, 총 과수생산량의 25% 이상을 차지한다. 고려인삼으로 유명한 인삼은 개풍군 · 판문군을 중심으로 가공되어 해외에 수출되고 있다.
개성은 고려시대 이래로 고려자기를 비롯한 수공업과 상업의 중심지로서, 면방직 · 비날론혼방직 등의 직물을 생산하는 개성방직공장을 비롯하여 개성피복공장 · 개성신발공장 · 개성옥쌀공장 · 개성인삼가공공장 · 개성사이다공장 등이 있다. 이 밖에 개성트랙터수리공장 · 개풍농기계작업소 등이 있으며, 금융기관으로 중앙은행의 지점이 있다.
개성은 중부 지역의 주요 교통 요지이다. 시내로 주요 철길인 평부선(21.9km)이 북서에서 남동 방향으로 통과하고 있다. 여기에는 평부선의 주요 역인 개성역(開城驛), 개풍역(開豊驛), 여현역(礪峴驛)이 설치되어 있다. 도로운수로는 주로 석탄, 광석, 건재, 비료, 과일, 소금 등이 운반된다. 도로운수는 개성시 화물수송량의 81.6%, 여객수송량의 97.6%를 차지하며, 철도가 부설되지 않은 장풍군과 판문군 지역의 최대 운수 수단이다. 도로망은 평양∼개성 간 고속도로, 개성∼해주, 개성∼원산, 개성∼판문∼개풍 간 2급도로, 개성∼석둔, 개성∼풍덕 간 3급도로가 개설되어 있다. 한강과 임진강 등에 수상통로도 개설되어 있는데, 임진강나루, 벽란도 등 여러 개의 나루와 포구가 유명하다.
개성에는 천마산 북쪽에 유명한 박연폭포(북한 명승 제11호)가 있고, 고려 500년 도읍지로서 관광자원이 풍부하다. 특히 남쪽에 있는 판문점이 세계적인 관광명소가 되면서 개성은 북한에서 가장 중요한 대외 관광지로 개발되었다. 시의 중심가인 남대문로에서 북부도로에 이르는 1㎞ 구간은 보존거리로 정하여 300여 채의 전통 한옥을 옛날 모습대로 보존하고 있으며, 그 중 20여 개는 민속여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문화재로는 고려시대의 유적지인 개성성과 만월대 · 관음사 · 흥국사 · 남대문 · 선죽교 · 성균관 등이 잘 보존되어 있다. 개성성은 시를 둘러싼 고려의 수도성으로서, 919년∼1029년 경에 쌓은 평산성(平山城)으로 외성(둘레 23㎞) · 내성(둘레 11.7㎞) · 황성(둘레 4.7㎞) · 중성(둘레 2.17㎞)이 있다.
만월대는 송악산 남쪽 기슭에 있는 고려시대의 왕궁터이고, 남대문은 서울의 숭례문보다 3년 앞선 1394년(태조 3)에 축조된 것으로 시의 중앙인 북안동에 있다. 문루에는 우리나라 3대 명종(名鐘)의 하나인 연복사 대범종이 있다.
선죽교(善竹橋)는 가장 오래된 다리 중의 하나로 시의 동쪽 지남산 기슭에 있으며, 정몽주(鄭夢周)가 암살 당한 장소로 알려져 있다. 선죽교로부터 500m 지점에 있는 숭양서원(崧陽書院)은 1573년(선조 6) 정몽주의 옛집에 세워진 것으로, 자남산 중턱에 있다. 정몽주의 영정 · 죽장 · 필적 · 옷 등이 보관되어 있다.
성균관은 1089년(고려 선종 6)문종의 별궁에 국자감을 옮겨와 성균관으로 불리게 되었고, 1602년∼1610년에 개축되었다. 관음사(觀音寺)는 산성리 천마산 기슭에 있으며, 970년(고려 광종 21)에 세워져 1646년(인조 24)에 개축되었다.
흥국사 석탑(興國寺 石塔)은 강감찬(姜邯贊)이 나라의 안녕을 위하여 1021년(고려 현종 12)에 세운 것으로 현재 자남동에 있다. 개풍군 해선리에는 공민왕릉(恭愍王陵)이 있으며, 고려태조의 무덤인 현릉(玄陵)이 있다. 또한, 관통보제선사비는 공민왕릉 정자각터 옆에 있다. 송악동 만월대 서문 밖에는 화강암으로 축조된 높이 2.8m의 첨성대가 있다.
장풍군 월고리에는 현화사 당간지주 · 현화사 칠층탑 · 현화사비가 있다. 현화사비는 1021년 세워진 것으로, 높이 4m의 비문에 현화사의 내력이 총 2,400여 자의 글로 새겨져 있다. 그 밖에 판문군에는 3개의 토성과 고려 정종의 능을 비롯한 9개의 왕릉이 있으며, 산성리에는 대흥산성 · 발어참성 등이 있다.
주요 교육기관으로는 고려성균관(高麗成均館), 송도사범대학(松都師範大學), 개성예술대학(開城藝術大學), 개성공산대학(開城共産大學)을 비롯한 대학들과 여러 개의 전문학교 그리고 중학교, 소학교를 비롯한 각급 학교들이 있다. 개성고려역사박물관 · 학생소년궁전 · 식물원 · 시립극장이 있다.
그 밖에 개성신문사 · 개성방송국 및 개성텔레비젼방송국 등의 언론기관과 판문체육관 · 개성경기장 · 판문경기장 등이 있다.
행정구역은 2010년 현재 27동 2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명칭은 고려동, 관훈동, 남문동, 남산1동, 남산2동, 남안동, 내성동, 덕암동, 동현동, 동흥동, 용산동, 용흥동, 만월동, 방직동, 보선동, 부산동, 북안동, 선죽동, 성남동, 송악동, 승전동, 역전동, 운학1동, 운학2동, 은덕동, 자남동, 해운동, 박연리, 삼거리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