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산 관음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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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 관음사 전경
개성 관음사 전경
불교
유적
북한 황해북도 개성시 천마산(天摩山)에 있는 고려전기 승려 법인국사가 창건한 사찰.
이칭
이칭
개성금강, 관음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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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북한 황해북도 개성시 천마산(天摩山)에 있는 고려전기 승려 법인국사가 창건한 사찰.
내용

대흥산성 북문을 지나 약 1㎞를 가면 천마산 기슭 큰 바위 밑에 있다. 970년(광종 21) 법인국사(法印國師)가 창건하였고, 태조가 1393년(태조 2) 크게 확장하였으며, 1395년에는 태조가 수륙재(水陸齋)를 열었다.

1398년 정종이 능엄법회(楞嚴法會)를, 1400년 태종이 수륙재를 열었으며, 1418년(태종 18) 나라에서 조계종에 소속시켰다.

1477년(성종 8) 산사태로 무너진 뒤 중건하였고 1646년 정명(正明)이, 1797년 성훈(成訓)이 중수하였으며, 1935년 주지 이근식(李根植)이 법당과 요사채를 중건하였다. 당시에는 다섯 채의 건물이 있었다고 전하나 지금은 대웅전과 승방, 칠층석탑과 관음굴만 남아 있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건물로 흥미 있는 것은 장여와 장여 사이의 간격을 배수로 하여 두공(枓栱)을 배열하고 평면을 이루었다는 점이다. 두공 사이는 장여 간격의 3배씩이며 앞면에는 10개의 두공이 있는데, 그 넓이는 장여 간격의 27배이고, 옆면에는 8개의 두공이 있는데, 그 넓이는 장여 간격의 21배이다.

흘림기둥은 굵기 43㎝, 높이 2.83m이고, 모서리 기둥은 밑굵기가 45㎝로서 가운데 기둥보다 굵으며, 높이도 더 높게 하고 대각선 방향으로 조금씩 기울여 세웠다. 평판 방위에는 바깥 7포, 안 9포로 된 화려한 포식두공(包式枓栱)을 놓았다.

두공은 각 기둥 위마다 1개씩 놓는 한편, 앞면과 옆면 가운데 칸에서는 기둥 사이마다 2개씩, 옆면 두 가장자리 기둥 사이에는 1개씩 놓아 모두 32개이다.

네 모서리와 앞면 가운데 기둥들의 두공 위에는 봉의 머리 조각을 얹었는데, 조각이 섬세하고 부드러우면서도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내부에는 9포 가운데 7포까지는 끝에 치레를 하지 않았으나, 그 위부터는 덩굴과 연꽃무늬를 장식하였다.

대들보 위에서 중보를 떠받드는 동자 기둥은 연꽃을 묶은 모양으로 돌려 새긴 매우 아름다운 기둥이다. 불단 위에는 이층짜리 닫집이 있는데, 17포로 섬세하게 짜올리고 붉은 색을 칠하였으며 매우 화려하다.

또한 지붕은 겹처마를 댄 우진각 지붕으로 매우 희귀한 것이다. 지붕의 용마루는 짧게 하면서도 마루들과 지붕면, 처마에 이르기까지 완만한 곡선을 주어 몸체에 잘 어울리며 건물 전체에 입힌 금단청은 매우 은근한 감을 준다. 대웅전 앞 서쪽에는 높이 4.5m의 칠층석탑이 있고 승방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ㄴ자형 집이다.

절 뒤의 관음굴은 이 절을 창건하기 전부터 있던 것으로 그 안에는 관음보살좌상이 있다. 유백색 대리석으로 조각하였고 높이는 1.2m이며, 머리에는 화려한 보관을 쓰고 있고 부드럽게 드리운 옷주름은 섬세하고 아름답다. 이 절 주위의 경치는 매우 빼어나서 예로부터 ‘개성금강’이라고 불렸다.

참고문헌

『한국사찰전서』 상(권상로, 동국대학교 출판부, 1979)
집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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