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당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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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제도
조선 후기, 공인(貢人)과 시전 상인에 관한 업무를 전담하던 비변사(備邊司) 당상.
이칭
이칭
공시폐막이정당상(貢市弊瘼釐正堂上), 공시인이정당상(貢市人釐正堂上), 공시수정당상(貢市修整堂上), 공시구관당상(貢市句管堂上)
제도/관직
설치 시기
1752년(영조 28)
소속
비변사
내용 요약

공시당상(貢市堂上)은 조선 후기, 공인(貢人)과 시전 상인에 관한 업무를 전담하던 비변사(備邊司) 당상이다. 1752년(영조 28) 무렵 공시인순막(貢市人詢瘼)이 정례화 · 제도화될 때 함께 만들어진 직임으로, 공인과 시전인을 불러 모아 왕 앞에 대령하고 그들이 호소하는 내용을 전달 · 정리 · 처리하는 역할을 하였다.

목차
정의
조선 후기, 공인(貢人)과 시전 상인에 관한 업무를 전담하던 비변사(備邊司) 당상.
내용

조선 후기에 공인과 시전 상인은 도성민의 주된 구성원이자 도성 경제의 근간으로 여겨졌다. 18세기 도성에서는 난전(亂廛) 문제가 발생하면서 전통적인 주1의 국역 부담이 커졌고, 왕실 · 군각사 · 군문의 침탈 등으로 인하여 각종 폐단을 겪었다. 1752년(영조 28)에 공시인에 대한 침탈을 막고,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공시당상이라는 직책을 두었다.

공시당상은 사료에서 공시폐막이정당상(貢市弊瘼釐正堂上), 공시인이정당상(貢市人釐正堂上), 공시수정당상(貢市修整堂上), 공시 구관당상(貢市句管堂上) 등으로도 지칭된다. ‘영조대왕행장’에 따르면, 1752년 12월에 공시당상 3명을 두어 공시(貢市)의 폐해를 바로잡게 하였다. 한편, 1753년(영조 29) 1월 ‘계유절목’을 제정한 후의 기록에 따르면, 주2 2명을 공시구관당상으로 사무를 맡기하고 있다.

공시당상은 박문수조영국이 임명된 것을 시작으로 고종 때까지 지속되었다. 공시당상 자리에 결원이 생기면 팔도 구관당상(八道句管堂上)의 예에 따라 후임을 차출하여 업무에 공백이 없게 하였으며, 다른 직무를 겸임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해당 업무에 집중하도록 하였다.

이전에도 비변사낭청(郞廳)을 뽑아 공시인이 겪는 주3을 조사하고 공시인폐막 별단을 작성하였다. 그러나 1753년(영조 29)에 공시당상이 설치된 것은 당시 공시인순막(貢市人詢瘼)의 정례화 · 제도화 조치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1752년 연말 영조는 직접 궐 밖으로 나가 공시인들에게 공시의 폐막을 들었고, 이후 왕이 직접 주도하는 공시인순막이 연례행사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때 공시당상은 공인과 시전 상인을 불러 모아 왕 앞에 대령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정리 · 처리하는 역할을 하였다. 1753년에 설치된 공시당상이 활동한 결과를 기록하였는데, 이 기록이 규장각에 남아 있는 『공폐(貢弊)』와 『시폐(市弊)』이다.

의의/평가

공시당상은 공인과 시전 상인을 보호하여 공적 상업 체제를 안정시키려는 정책 속에서 그 전담 직임으로 설치되었다. 기존에 공시인 관련 업무를 관할하는 선혜청, 호조, 평시서 등의 관서가 있었음에도, 상위 기구로서 비변사 당상을 따로 설정하였다는 점에서 공시인을 보호하고자 하는 의지가 뚜렷하였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원전

『만기요람(萬機要覽)』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영조실록(英祖實錄)』

단행본

이태진 외, 『서울상업사』(태학사, 2000)

논문

노혜경, 「공시당상을 통해서 본 조선후기의 비변사와 이정 행정」(『역사와 실학』 71, 역사실학회, 2020)
김미성, 「조선후기 시전인과 공인의 병존 관계」(『서울학연구』 73,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 2018)
김정자, 「조선후기 정조대의 정국과 시전정책」(『한국학논총』 39,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2013)
주석
주1

공인(貢人)과 시전 상인을 아울러 이르던 말.    우리말샘

주2

조선 시대에, 비변사의 당상관을 이르던 말. 통정대부 이상의 벼슬아치를 이른다.    우리말샘

주3

고치기 어려운 폐단.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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