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 상가리 고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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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 상가리 고분군 출토 토기병
금산 상가리 고분군 출토 토기병
고대사
유적
충청남도 금산군 금성면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앞트기식돌방무덤. 횡구식석실분.
정의
충청남도 금산군 금성면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앞트기식돌방무덤. 횡구식석실분.
개설

금산 상가리고분은 1973년 6월에 상가리 예비군 중대에서 참호를 구축하기 위하여 돌출부의 정상을 파다가 김진봉 등에 의해 발견되어 금산군청 공보실을 통해 신고 접수되었다. 현장에서 확인조사한 바로는 고분은 이미 반파되었고 내부는 교란된 후였다고 한다. 유적이 있는 곳은 금성산(錦城山) 서남지맥의 소능선 중턱 남사면으로서 금성초등학교 뒤편에 해당된다.

내용

무덤은 장방형 돌방무덤으로 낙동강 중류 지방인 안동·성주·고령·선산 등지에 흔히 있는 형식이다. 돌방은 지표 아래 1.2m 깊이에서 발견되었는데 사면벽은 할석으로 쌓고 뚜껑돌을 덮은 이른바 앞트기식돌방무덤[橫口式石室墳]이다. 앞트기식돌방무덤이란 추가장(追加葬)을 위해 장방형 돌방의 한 벽에 입구시설을 만든 묘제를 말한다.

벽면 축조상태는 조잡한 편이며, 회를 바르거나 틈을 점토로 메우지도 않았다. 뚜껑돌로 사용한 돌은 크기가 80×45×20㎝ 정도인데 7∼8매를 이어 덮었다. 바닥은 돌을 사용하지 않고 점토를 얇게 깔았을 뿐이다.

유물은 거의 전부가 도굴되고, 단지항아리[土器壺] 1점만이 발굴되었다. 토기는 몸체가 달걀모양에 가까운 둥근 형태이고, 입술은 나팔형으로 약간 벌어졌으며 목은 대단히 짧다. 겉면에는 전혀 문양이 없는 회갈색의 경질토기(硬質土器)인데, 낙동강유역 지방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토기이다. 전체 높이는 41.6㎝, 입지름은 23.6㎝이다.

의의와 평가

상가리고분에서 드러난 구조적 양식을 지닌 돌방은 낙동강유역의 고분에서 다수 발굴되지만 백제지역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들다. 그래서 상가리고분은 그러한 돌방구조 양식을 가진 고분들의 분포권 가운데 최북방한계에 속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상가리고분에서 출토된 단지항아리는 백제양식의 토기로서 경산 북서동고분에서 발견된 단지항아리와 창녕 계남리고분 발견 단지항아리, 달성군 달서면 제50호분에서 발견된 항아리 등과도 근본적으로 그릇모양[器形]을 같이하고 있어서 이들 낙동강유역 가야지역의 토기와 금강유역 백제토기와의 영향관계를 연결짓는 중간지점의 토기로 보인다.

역사적으로 금산지역은 영동, 옥천 등지와 함께 신라와 백제의 국경지대로서 그 소속이 자주 변하는 지역으로 인식돼 왔는데 이번 금산에서 발견된 돌방무덤과 토기로써 본다면 신라적인 요소는 거의 없고 오히려 가야적 요소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는 점에서 금산 상가리의 고분과 토기가 갖는 의의는 자못 크다. 아울러 본 고분의 조성연대는 가야에서 앞트기식돌방무덤이 성행한 서기 5세기 후반 이후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백제고분 발굴이야기』(조유전, 주류성, 2005)
『백제의 고분문화』(이남석, 서경, 2002)
『고분연구』(강인구, 학연문화사, 2000)
「금산의 고분과 토기류」(강인구,『백제고분연구』, 일지사,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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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김선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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