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남 ()

현대음악
인물
일제강점기로부터 대한민국 건국 초기에 활동한 월북 작곡가. 피아니스트. 지휘자. 음악이론가.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17년 5월 28일
사망 연도
1983년
출생지
서울 낙원동
주요 작품
「건국행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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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김순남은 일제강점기로부터 대한민국 건국 초기에 활동한 월북 작곡가이다. 서울 낙원동에서 태어났으며, 경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하여 1938년 동경고등음악학원 본과 작곡부에서 공부하였다. 일본 프롤레타리아 음악의 정신적 지주격인 하라 타로를 만나 음악을 민중의 삶 속에서 찾고자 하는 사상적 영향을 깊게 받았다. 해방 직후 조선음악건설본부를 결성하고 첫 해방가요 「건국행진곡」을 작곡하였고, 일제 잔재 청산과 진보적 민족 음악 건설을 주장하였다. 월북으로 남한에서 오랫동안 잊혀졌으나 1988년 해금 조치로 연구가 활성화되었다.

정의
일제강점기로부터 대한민국 건국 초기에 활동한 월북 작곡가. 피아니스트. 지휘자. 음악이론가.
인적사항

김순남은 1917년 5월 28일 서울 낙원동에서 태어났다. 서울에서 경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하여 1938년 동경고등음악학원 본과 작곡부에서 공부하였다. 일본 주15 음악의 정신적 지주격인 하라 타로[原太郎]를 만나 음악을 민중의 삶 속에서 찾고자 하는 사상적 영향을 깊게 받았으며, 1942년 동경제국고등음악학교를 졸업하였다. 해방 직후 조선음악건설본부를 결성하고 첫 해방가요 「건국행진곡」을 작곡하였으며, 일제 잔재 청산과 진보적 민족 주3 건설을 주장하였다. 1983년 함경남도 신포에서 타계하였다.

주요 활동과 작품

비화성적인 조 체계를 이루는 비조성(非調性) 음악에 심취하였으며, 1943년 당시 일본의 급진 작곡가 그룹인 신흥작곡가연맹의 5주년 기념 음악제에서 피아노 소나타(piano 주4를 발표하면서 데뷔하였다.

1945년 이전까지의 작품은 바르토크, 스트라빈스키(Stravinsky, Igor 주5의 무조적 경향과 무소르크스키 등의 영향이 강한 사실적 작품이 주종을 이루는 작품들을 발표하였으며, 피아노 소나타 제2번과 피아노 3중주 제1번, 자신의 결혼식 때 반주 음악으로 쓴 피아노 3중주 「결혼」, 가곡 「철공소」 등이 대표적이다.

해방 이후에는 해방가요 외에도 2권의 가곡집과 주6 제1번, 피아노 주7 제1번, 합창이 붙은 교향곡 「태양없는 땅」 같은 본격적인 관현악 작품들도 작곡하였고, 교향곡과 협주곡의 경우는 해당 장르에서 한반도 최초의 작품들로 기록되고 있다. 민족 음계에 바탕을 둔 가곡 김소월(金素月) 시의 「산유화(山有花)」 · 「초혼」 · 「진달래꽃」 등 다섯 편의 가곡을 『산유화』라는 이름으로 출간하였으며, 「산유화」는 서정 가곡으로 1948년 방송 매체 등을 통하여 소개되면서 민족 정서가 어린 대중 가곡의 표본을 이루고 민속조가 짙은 가곡 창작의 유형을 정립하였으며, 민족 음계 구사 기법 등을 개발하였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정식으로 수립되면서 좌익 인사들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가 시작되었고, 이를 피해 김순남도 대구 10·1 사건을 노래한 「인민항쟁가」의 작곡이 결정적 계기가 되어 월북하였다. 그 뒤 평양에서 조선음악가동맹 부위원장과 평양음악대학 작곡과 교수를 역임하였으며, 주9 「인민유격대」와 주8 「승리」, 주10 「영웅 김창걸」 등의 작품을 남겼다.

1952년에는 북한 정부의 후원으로 소련에 유학했고, 모스크바 차이콥스키 음악원에서 아람 하차투리안에게 배웠다. 불행하게도 유학 생활은 종전과 동시에 북한에서 소환 명령이 내려져 급히 귀국하였고, 남로당 일파로 간주되어 심한 비판을 받고 1958년에 모든 창작 권리를 빼앗기고 함경남도 신포의 조선소 주11으로 숙청당했다. 1960년대 중반에 주14 다시 창작 권리를 되찾았고, 이후 몇 년 동안 작품 활동을 계속하여 주12 「남녘의 원한을 잊지 말아라」와 바이올린 독주곡 「이른 봄」과 함경남도 일대의 민요를 주13 기록물 등을 발표하였다.

사상

그의 작품의 배경에는 이상적인 민족성을 추구하는 민족주의적 진취성과 사회주의적 혁명성이 강하게 나타난다. 김순남의 음악은 기존의 음악적 환경과 현실을 부정하였기에 가능하였다고 보는 견해들이 많다. 특히 그가 기독교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는 점, 일본적 경향을 따르지 않고 민족적, 시대적 감성에 예민했던 점, 해방 이후에는 좌익 활동이 왕성했던 점, ‘혁명성과 진취성’을 식민지 시기부터 길러 왔다는 점 등이 부각된다.

월북 때문에 남한에서 오랫동안 잊혀졌으나 1988년 해금 조치 이후 연구 작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참고문헌

단행본

박용구, 『음악과 현실』 (민교사, 1949)
이상만, 『한국가곡전사』 (금성출판사, 1968)
『김순남가곡집』 (1946)

논문

이경분, 「음악과 시문학. 김순남 가곡 「산유화」와 「진달래꽃」」(『음악과 현실』 41, 민족음악학회, 2011) :

인터넷 자료

독일음악대사전(https://www.mgg-online.com/article?id=mgg07210&v=1.0&rs=mgg07210)

기타 자료

박용구, 『조선 가곡의 위치 -김순남 가곡집 「자장가」를 중심으로』 (p. 67)
『문예중앙』 (중앙일보사, 1981. 봄호)
『음악예술(音樂藝術)』 (동경음악지우사(東京音樂之友社), 1982. 2)
'월북 지식인들의 행로/ 작곡가 김순남', 조선일보,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1/01/14/2001011470117.html, (2001. 01. 14.)
주석
주3

세계 여러 민족의 각기 다른 특징이 명확히 표현되어 있는 음악. 민족성이나 민족 심리가 표출되며, 그 민족 고유의 악기로 연주되고 독특한 선율과 리듬을 지닌다. 우리말샘

주4

피아노 독주를 위한 소나타.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등 빈 고전파의 모음곡에서 발전하여 완성되었다. 우리말샘

주5

이고리 페도로비치 스트라빈스키, 제정 러시아 태생의 미국 작곡가(1882~1971). 현대 음악의 새로운 장을 연 신고전주의의 대가로 평가받고 있다. 작품에 발레곡 <불새>, <페트루시카(Petrushka)>, <봄의 제전#GT#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6

관현악을 위하여 작곡한, 소나타 형식의 규모가 큰 곡. 보통 4악장으로 이루어지며, 하이든이 시작하여 모차르트와 베토벤에 의하여 확립되었다. 우리말샘

주7

독주 악기와 관현악이 합주하면서 독주 악기의 기교를 충분히 발휘하도록 작곡한 소나타 형식의 악곡. 우리말샘

주8

16세기 무렵에 로마에서 시작한 종교 음악. 성경의 장면을 음악과 함께 연출한 교회극에서 발달하여 오페라의 요소를 가미한 영창, 중창, 합창, 관현악으로 연주한다. 헨델의 <메시아>, 하이든의 <천지창조>ㆍ<사계>가 특히 유명하다. 우리말샘

주9

배우가 대사의 전부를 노래로 부르는, 음악과 연극과 춤 등을 종합한 무대 예술. 우리말샘

주10

가극, 성극(聖劇), 모음곡 따위의 막을 열기 전이나 주요한 부분을 시작하기 전에 연주하는 기악곡. 그 자체가 완결되어 후속부와 독립된 연주회용 서곡도 있다. 우리말샘

주11

쇠붙이를 녹인 쇳물을 일정한 틀 속에 부어 굳혀서 물건을 만드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 우리말샘

주12

17세기에서 18세기까지 바로크 시대에 발전한 성악곡의 한 형식. 독창ㆍ중창ㆍ합창과 기악 반주로 이루어지며, 이야기를 구성하는 가사의 내용에 따라 세속 칸타타와 교회 칸타타로 나눈다. 우리말샘

주13

곡조를 듣고 그것을 악보로 만들다. 우리말샘

주14

한 번 상실된 권세가 다시 찾아지다. 우리말샘

주15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력 이외에는 생산 수단을 가지지 못한 노동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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