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응 보우(1509?~1565)는 별호가 나암(懶庵)으로 금강산 마하연(摩訶衍)의 암자, 춘천 청평사(淸平寺), 서울 인근 봉은사(奉恩寺) 등에서 활동했다. 명종 대인 1550년에는 문정왕후가 선교양종(禪敎兩宗)을 재건하자 본사 봉은사의 주지로서 선종판사가 되어 도첩(度牒) 지급과 승과(僧科) 시행을 비롯해 교단 운영을 주도했다.
당시 승과 출신의 청허 휴정(淸虛休靜, 1520~1604), 사명 유정(四溟惟政, 1544-1610) 등이 판사를 역임하고 이후 임진왜란 때 의승군을 이끄는 등 불교계를 주도했다. 1565년 문정왕후 사후 제주도로 유배되었다가 장살(杖殺)되었고, 다음 해에 선교양종이 폐지되었다.
보우는 선승이었지만 화엄을 비롯한 교학에도 뛰어났으며 선교 일치와 유불 일치를 지향했다. 저술로는 『나암잡저』 외에도 시집인 『허응당집(虛應堂集)』, 『권념요록(勸念要錄)』 등이 있다.
1573년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는 1권 1책의 목판본이다.
『나암잡저』는 법어와 기문 등을 모은 문집으로 「시소사법어(示小師法語)」부터 「회암사중수경찬소(檜巖寺重修慶讃疏)」까지 30편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처음 「시소사법어」는 제자의 7개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제자에게 보이는 시어(示語)는 모두 율문(律文)의 시 형식을 띠고 있다. 발문(跋文)은 3편으로 「화엄경후발(華嚴經後跋)」, 그리고 『금강경(金剛經)』 · 『약사경(藥師經)』 및 도교 경전 『옥추경(玉樞經)』 등을 사경할 때의 「사경발(寫經跋)」이 있다. 중수기(重修記) 4편 가운데 3편은 청평사에 관한 것으로 문정왕후의 명으로 중수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소(疏)는 19편이며 「봉은사중수경찬제상점안법회소(奉恩寺重修慶讃諸像點眼法會疏)」, 「인종대왕기신재소(仁宗大王忌晨齋疏)」, 「회암사대장전존상중수점안법회소(檜巖寺大藏殿尊像重修點眼法會疏)」 등이 있다. 그밖에 권선문(勸善文) 1편, 명(銘) 1편이 있고, 일반 논설문 1편이 있는데, 「경암명(敬庵銘)」에서는 성리설과 심성에 대해 설명하고 「일정(一正)」에서는 성명(性命)과 성의정심(誠意正心)에 대해 언급하고 있어 유학에 대한 보우의 깊은 이해를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