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은 크게 여래장사상(如來藏思想)을 근본으로 하며 그 안에 반야(般若), 유식(唯識), 보살계(菩薩戒) 등의 사상이 잘 정리되어 있는 교리 강요 서적의 성격을 가진다.
기본 구성은 크게 귀경술의(歸敬述意: 게송(偈頌) 부분) · 정립론체(正立論體:본문 부분) · 총결회향(總結廻向:전체적으로 결론짓는 부분)으로 나뉜다. 정립론체는 다시 논을 지은 이유를 설명하는 인연분(因緣分), 논의 주제를 제시하는 입의분(立義分), 제시된 주제를 상세하게 풀이하는 해석분(解釋分), 어떻게 믿는 마음을 배양하고 수행할 것인가를 밝힌 수행신심분(修行信心分), 수행을 권하고 그 이익을 말하는 권수이익분(勸修利益分)으로 나뉜다. 해석분은 다시 중심되는 주장의 올바른 뜻을 해석한 현시정의(顯示正義), 잘못된 견해를 시정하는 대치사집(對治邪執),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를 분석적으로 설명한 분별발취도상(分別發趣道相)으로 구분하였다.
이 논이 함축하고 있는 내용은 한마디로 단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오하고 풍부하다. 일반적으로 논서라고 할 때는 어떤 특정한 경(經)을 대상으로 논술하는 것이 통례이나, 이 『기신론』은 일정한 경을 대상으로 하지 않으므로 이론이나 용어가 독창적이며, 불교의 여러 가지 교리가 종합적으로 정리되어 있다. 주제는 전통적으로 일심(一心)· 이문(二門) · 삼대(三大) · 사신(四信) · 오행(五行)으로 그 사상적인 내용을 분류하여 파악하는 경향이 있다. 곧 이 논의 가장 중요한 내용은 일심에 대한 설명이고, 이 일심을 진여문(眞如門)과 생멸문(生滅門)의 이문(二門)을 통하여 설명한다. 이러한 이론적인 전개를 거쳐 궁극에는 믿음으로 이끌고, 믿음은 나아가 실천적인 행위로까지 나아가도록 하는 것을 천명하고 있다.
『대승기신론』은 근대 이전부터 위찬 문제가 제기되었던 논서이다. 수(隋) 나라 시대에 작성된 법경록인 『중경목록(衆經目錄)』(594 찬술)에서는 이 논이 진제의 번역이라는 점이 의문시되고 있으며 백제의 혜균(慧均)이 지은 『대승사론현의기(大乘四論玄義記)』(7세기 초엽)에는 북조 지론종(地論宗)에서 만든 위작이라는 설이 전해지고 있다. 실제 저자로 전하는 마명(馬鳴, Aśvaghoṣa)은 기원 후 1-2세기의 인물이며 그의 글 중 대승불교를 언급한 것은 없다. 또한 이 논은 진제가 사용하던 역어보다는 북조에서 활동했던 보리유지(菩提流支, ?-508-535-?)의 역어에 더 가깝다는 것도 근래의 연구에 의해 밝혀졌으며 2권본 실차난타 역 또한 기존의 『대승기신론』을 활용한 위찬 논서이다. 범본도 확인된 바가 없다.
이와 관련해 근대의 많은 학자들이 인도인 찬술설, 중국으로 건너온 역경승 찬술설, 북조인 찬술설 등 다양한 이론을 펼쳤으나, 최근 연구에 의해서 6세기 중엽 북조에서 찬술된 논서라는 것이 정설이 되었다. 이것을 논증한 오오타케 스스무[大竹晋]는 『대승기신론』을 6세기 초중엽까지 북조에서 유통되었던 한역경론, 위경, 인도인 강의록 등의 설을 북조에서 활동한 모종의 인물(들)이 종합한 논서로 규정하고 있다.
원효(元曉, 617-686)의 주요 사상 중 하나인 일심(一心)이 바로 이 논을 기반으로 했다는 것에서도 볼 수 있듯이, 『대승기신론』은 등장 이후 수백 년간 동아시아 불교 교학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는 170여 종에 달하는 주석서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가장 최초기의 주석서로는 돈황사본 羽333V(찬술년 미상, 6세기 중엽)와 이에 기반해 저술된 담연(曇延)의 『기신론의소(起信論義疏)』가 있으며, 가장 널리 영향력을 끼친 주석서로는 원효의 『기신론소(起信論疏)』와 『기신론별기(起信論別記)』, 법장(法藏, 643-712)의 『대승기신론의기(大乘起信論義記)』를 꼽을 수 있다. 일본에서는 원효소와 법장소를 정영사 혜원(淨影寺 慧遠, 523-592)의 『대승기신론의소(大乘起信論義疏)』와 함께 기신론삼소(起信論三疏)로 존숭하였다. 또한 원효의 『기신론소』는 중국에도 전해져 여러 화엄 승려들이 참조하였고 근래에는 돈황에서도 그 일문이 발견되는 등 그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