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빙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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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정보
조선시대사
제도
조선시대, 종묘 · 사직 이하 국가의 제향(祭享)에 쓸 얼음을 채취 · 보존 · 출납을 맡아보던 관청.
제도/법령·제도
시행 시기
1396년(태조 5)
폐지 시기
1898년(고종 36)
주관 부서
봉상시(奉常寺)
내용 요약

동빙고는 조선시대에 종묘 · 사직 이하 국가의 제향(祭享)에 쓸 얼음을 채취 · 보존 · 출납을 맡아보던 관청이다. 예조의 종5품 속아문으로, 봉상시(奉常寺)에서 주관하였다. 두모포에 있는 것이 동빙고이며, 한강에 있는 것이 서빙고이다.

정의
조선시대, 종묘 · 사직 이하 국가의 제향(祭享)에 쓸 얼음을 채취 · 보존 · 출납을 맡아보던 관청.
제정 목적

조선시대에 종묘 · 사직 이하 국가의 주1에 쓸 얼음을 공납하기 위하여 설치하였다.

내용

관원으로는 예조판서가 겸하는 제조 1인, 그 밑에 별좌별제 · 별검 각 1인이 있었고, 이속(吏屬)으로 서원(書員) · 주2 각 1인과 군사 2인이 있었다. 그 밖에 겨울에 얼음을 채취하는 벌빙군(伐氷軍) · 주3와 같은 노역 인원이 있었다.

빙고에 얼음을 저장할 때는 봉상시(奉常寺)의 주관 아래 두모포(豆毛浦: 지금의 서울 옥수동) 앞에서 저자도(楮子島: 지금의 서울 뚝섬) 사이의 깨끗한 얼음을 두께 4치(1치=3.03㎝) 이상으로 주4하였다. 얼음 두께가 4치 이상이 되어야 채빙하고, 얼음을 저장하는 양은 1만 244정(丁)이다.

이곳에 저장한 얼음은 종묘 · 사직 이하 나라의 각 주5에 사용되었다. 제사 때 동빙고에서 얼음을 공급하는 시기는 음력 3월 1일부터 음력 10월 상강일(霜降日)까지였다.

용재총화』에서 동빙고에 관하여 기록하고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동빙고는 두모포(豆毛浦)에 있는데, 제사지내는 데에만 사용하였다. 얼음을 저장할 때에는 봉상시가 주관하고, 별제 두 사람과 함께 검찰하였다. 또 감역부장(監役部將)과 벌빙군관(伐氷軍官)이 저자도 사이에서 채취하는 것을 감독하였는데, 이는 개천 하류의 더러움을 피하기 위함이다.

군기시 · 군자감 · 예빈시 · 내자시 · 내섬시 · 사담시 · 사재감 · 제용감이 주관하여 별제 두 사람과 같이 검찰하였다. 또 감역부장과 벌빙군관이 있고 그 나머지 각사(各司)는 8경에 나누어 소속시켰는데, 얼음이 얼어서 4치(1치=3.03㎝)가량 된 뒤에 비로소 작업하였다.

그때는 제사(諸司)의 관원들이 서로 다투어 힘쓰므로 군인이 비록 많으나 잘 채취하지 못하고, 촌민들이 얼음을 캐어서 군인들에게 팔았다. 또 칡끈을 얼음에 동여매어서 얼음이 쓰러지거나 미끄러지는 것을 방지하고, 강변에는 땔나무를 쌓아놓아 얼어 죽는 사람을 구제하며, 의약을 항상 갖추어 두어 다친 사람을 구제하는 등 그 질환에 대한 조치를 준비하였다.

8월에는 군인을 빙고에 많이 보냈는데, 고원(庫員)이 군인을 인솔하여 빙고의 천정을 수리하고 썩은 대들보와 서까래를 바꾸고, 허물어진 담을 수리하였다. 또 빙고의 주17 한 사람은 주6에 가서 갈대를 베어다가 빙고의 상하 사방을 덮었는데, 많이 쌓아 두텁게 덮으면 얼음이 녹지 않았다. 관인들은 밤낮으로 마음껏 취하도록 마시고 얼음을 저장하는 일은 하리(下吏)들에게 맡겼다."

얼음을 잘 보관하기 위하여 동빙고를 자주 수리하였으며, 얼음의 관리를 위하여 주7하였다. 또한 빙부나 군인들이 겨울에 얼음을 채취하느라 물에 빠지거나 얼어 죽거나 병이 나는 일이 있었기 때문에 밥이나 주8, 술을 보내주어 병이 난 자를 치료하게 하였다.

날씨가 따뜻하여 얼음이 단단하게 얼지 않을 때에는 얼음을 캐서 창고에 보관하는 일을 멈추고 기다리기도 하였다. 얼음을 저장할 때 날씨가 따뜻하여 얇은 얼음으로 채웠을 경우 강의 얼음이 다시 굳게 얼기를 기다려 채빙하도록 하였다. 1504년(연산군 10)에는 동빙고가 금표 안에 들어가서 군사를 보내 얼음이 얼기 전에 서빙고 왼쪽으로 옮기도록 하였다.

만기요람』에는 ‘매년 12월에 주9하고 이듬해 춘분에 주10하는데, 장빙과 개빙 때에는 주11에게 제향을 지낸다. 제향의 명칭은 사한(司寒)이다. 제향 의식은 주13에 지낼 때와 같으나 오직 예폐와 축문[幣祝]이 없었는데, 주14하는 날에 주15이 조정에 하직하고 얼음이 굳기를 기다려서 채취하여 저장한 뒤에 주16한다.’고 하였다.

변천사항

1396년(태조 5)에 두모포에 처음 설치되었다. 1504년(연산군 10)에 서빙고 남쪽으로 이전되었으며, 1898년(고종 36)에 폐지되었다.

참고문헌

원전

『경국대전(經國大典)』
『동국여지비고(東國輿地備攷)』
『만기요람(萬機要覽)』
『용재총화(慵齋叢話)』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단행본

고동환, 『조선시대 서울 도시사』(태학사, 2007)

논문

김동철, 「18세기 빙계의 창설과 도고활동」(『역사와 세계』 19, 효원사학회, 1995)
고동환, 「조선후기 장빙역(藏氷役)의 변화와 장빙업(藏氷業)의 발달」(『역사와 현실』 14, 한국역사연구회, 1994)
주석
주1

나라에서 지내는 제사.    우리말샘

주2

관아의 창고를 보살피고 지키던 사람.    우리말샘

주3

예전에, 강에서 얼음을 떠내는 일을 직업으로 하던 사람.    우리말샘

주4

얼어붙은 강바닥, 빙벽 따위에서 얼음을 자르거나 쳐서 필요한 만큼 얻어 냄.    우리말샘

주5

나라에서 지내는 제사.    우리말샘

주6

섬 이름. 지금의 경기도 일산시(一山市) 남쪽 한강 가에 있었다.    바로가기

주7

어떠한 사실을 자세히 조사하여 살핌.    우리말샘

주8

약이 되는 음식.    우리말샘

주9

얼음을 떠서 곳간에 저장함. 또는 그 얼음.    우리말샘

주10

봄이 되어 얼음 창고를 처음으로 엶.    우리말샘

주11

오행(五行) 중 수(水)를 다스리고, 겨울과 북쪽을 주관하는 신령.    바로가기

주12

얼음에 관한 일을 관장하는 신.    우리말샘

주13

이름난 산과 큰 내.    우리말샘

주14

제관(祭官)이 제사 지내는 곳으로 가기에 앞서, 임금에게서 향과 제문을 받던 일.    우리말샘

주15

조선시대, 얼음을 떠서 빙고(氷庫)에 저장하는 일을 주관하던 임시 벼슬. 또는 그 벼슬아치.    바로가기

주16

명령을 받고 일을 처리한 사람이 그 결과를 보고함.    우리말샘

주17

관청에서 사무를 돕기 위하여 두는 임시 직원.    우리말샘

집필자
한희숙(숙명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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