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판본. 『동인지문오칠(東人之文五七)』 9권, 『천백(千百)』 1권, 『사륙(四六)』 15권, 합 25권.
『동인지문』의 편찬 연대 등을 알아볼 수 있는 자료로는 최해의 문집인 『졸고천백(拙藁千百)』에 수록되어 있는 「동인지문서(東人之文序)」와 「동인사륙서(東人四六序)」, 그리고 이곡(李穀)이 쓴 「최군묘지(崔君墓誌)」 등이다.
「동인지문서」에 의하면, “내가 원나라 과거에 급제하였을 때 원나라 선비들이 우리 나라 시문을 보기를 원하였으나, 내가 시문선집이 없어 부응하지 못하여 수치를 느꼈다.”라고 편찬 동기를 적고 이어서 “신라 최고운에서 충렬왕 때까지 명가로부터 시 약간 수를 얻어 ‘오칠(五七)’이라 제명하고, 문 약간 수를 얻어 ‘천백(千百)’이라 제명하고 변려문(騈儢文) 약간 수를 얻어 ‘사륙(四六)’이라 제명하고, 총괄하여 ‘동인지문’이라 제명하였다.” 하여 그 편제를 밝혔다.
「동인사륙서」에서는 “후지원(後至元) 무인(1338) 여름에 내가 「동문사륙」의 편집을 마쳤다.” 하여 사륙의 편집 시기를 밝혔다. 그리고 이곡의 「최군묘지」에는 “본국 명현의 저술을 찬집하고 그 제명을 ‘동인지문’이라 하였는데, 모두 25권이다.” 하였다.
이를 미루어 보면, 『동인지문』의 편차는 오칠·천백·사륙의 순으로 구성되었고, 총 권수는 25권이며, 또한 그 편찬 시기는 1331년(충혜왕 복위 1)에서 1338년(충숙왕 복위 7)까지임을 알 수 있다.
『동인지문』의 권차(수)는 동인지문사륙(보물, 1981년 지정)과 동인지문오칠 권7~9(보물, 1991년 지정)에서 확인되었다. 사륙은 소장처는 각각 다르나 전질 15권이 밝혀졌고, 오칠은 권 7∼9의 잔본이기는 하나 전질 9권임이 확인되었으며, 나머지 1권은 천백으로 추정된다. 사륙은 고려대하교 도서관 소장본과 이겸로(李謙魯) 소장본이 보물로 지정되었다.
고려대학교 소장본은 12권 4책(권1∼6, 10∼15), 6권 2책(권1∼6), 3권 1책(10∼12), 3권 1책(권7∼9)이 모두 1981년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이겸로 소장본 3권 1책(권13∼15)도 1981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보물로 지정된 동인지문사륙 복주판(福州板)은 고려대학교 소장 권13·46·1012·1315, 권16, 권79(보물, 1981년 지정),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권1012(보물, 1981년 지정), 현담문고 소장 권1315(보물, 1981년 지정), 계명대학교 소장 권7~9(보물, 2001년 지정)이다. 이 중 고려대학교 소장본인 권12와 권15의 끝에 “지정(至正) 15년 을미(1355) 복주(福州) 개판(開板)”이라는 간기가 있어 그 간행지(刊行地)가 확인되었으며, 따라서 판각도 1355년(공민왕 4)에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고려대학교 소장 권7~9(보물, 1981년 지정)는 진주판인데, 권7의 마지막에 “진주목 개판(晉州牧開板)”이란 간기가 있어 그 간행지가 확인되었다. 복주판과는 판식이 다소 다르며 간기가 없어 확인할 길이 없다. 단 동인지문 편자 최해의 문집 『졸고천백』 간기를 보면 “지정 14년 갑오(1354) 진주(晉州) 개판(開板)”이란 간기가 있고, 이어서 관여한 사람의 관직, 각수(刻手)등이 열기(列記)되었으며, 판식이 이 책과 일치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졸고천백』을 개판할 때에 같은 사람의 손에 의하여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간년은 1354년이나 그 다음해인 1355년 경으로 추정된다.
『동인지문』은 우리나라에서 현재 전존(傳存)하는 것으로는 최초의 시문선집이다. ‘사륙’은 소장처는 다르나 전질 15권이 나타났고 ‘오칠’은 3권 1책(권7∼9)이 나타나 그 편집 체재만이라도 알 수 있으나 ‘천백’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미 나타난 사륙과 오칠에서 시문학 및 서지학 연구에 귀중한 자료임은 물론이려니와, ‘오칠’ 제목 아래의 각 인물의 소전(小傳)은 전기 자료로서의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동인지문사륙, 동인지문오칠